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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외길 기관사, 기차 타고 세계사를 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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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외길 기관사, 기차 타고 세계사를 뚫다

<달리는 철도에서 본 세계> 북콘서트

이른바 '3대 덕후'가 있다. 철도 덕후, 밀리터리 덕후, 그리고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역사 덕후가 그것이다.(덕후는 일본어 '오타쿠'의 변형된 표현으로 매니악한 취미를 가진 사람을 말한다.) 이런 전제 하에, 박흥수 기관사는 '덕후 3관왕'이다.

20년 철도 기관사 외길을 걸으면서도, 그 주체할 수 없는 끼를 숨기지 못한 박흥수 기관사는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넘나 들며 '기차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 '기차 이야기'들은 2013년에 <철도의 눈물>(후마니타스)로, 또 지금 소개하려는 '북콘서트'의 주제인 <달리는 기차에서 본 세계>(후마니타스)로 묶여 나왔다. 두 책 모두 <프레시안>에 연재된 글들을 바탕으로 펴낸 것이다. <프레시안>이 자랑하는 필자이자 <프레시안> 협동조합 조합원이기도 한 재치 넘치는 입담꾼, 박흥수 기관사가 지난 1월 6일, 용산역 강의실에서 청중을 대상으로 펼친 철도 이야기를 소개하려 한다.

그의 이야기는 한 가지 질문으로 시작한다. 인류 역사에 철도가 등장한 이래,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가. 낭만적인 구석이 있는 박 기관사는 북콘서트의 시작을 <비포 선라이즈>의 첫 장면으로 택했다. 철도 때문에 만난 미국 남자와 유럽 여자의 사랑 이야기다. 그렇다고 철도가 사랑을 발명해 낸 것은 아니다.

철도가 만든 발명품들을 나열해보자. 주식회사, 피시 앤 칩스, 셔츠의 가슴 주머니, 누구나 들고 다닐 수 있는 핸드북, 그리고 전쟁과 홀로코스트.

엉뚱한가? 혼자 움직이는 그 시커먼 기계 덩어리는 인간에게 즐거움과 비극을 함께 쥐어줬다. 철도는 언제,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 철도 현장이 발견됐습니다. 철도 선로 간격은 1435밀리미터(mm)인데요, 궤도의 간격, 그리고 각 나라별 채택하는 표준은 다르지만, 대개 1435밀리미터를 중간 값으로 볼 수 있죠. 이게 바로 말 엉덩이 두 마리의 폭입니다. 과거 마차가 다니던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있었던 동물 두 마리의 엉덩이의 폭이 철도의 표준궤로 바뀐 것이죠. 고대 그리스에서 철도라는 개념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 여기에서 더 말하면 안되니, 제 책을 읽으면서 경험하도록 놓아 두겠습니다."

▲ 박흥수 기관사 ⓒ후마니타스

이후 인간은 '동력'을 만들게 된다. 인간이나 동물의 힘이 아닌, 제 3의 에너지 기관을 만드는데, 그게 증기기관이다. 증기기관을 발명한 수 많은 사람 중에 역사에 족적을 가장 많이 남긴 인물이 조지 스티븐슨(George Stephenson)이다.

"증기기관을 만든 사람들은 굉장히 많아요. 그런 사람 중에 가장 에너지 넘친 사람이 스티븐슨이었고, 인류 최초의 기관사이기도 한데요, 저의 대 선배입니다. 스티븐슨은 명예, 돈, 이 세상의 시류에 야합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한 길을 갔죠. 정규 교육을 제대로 못 받고 19살 때 돈을 벌어 야학을 통해 글을 깨치고, 기술 서적을 공부해 기관차를 만드는데, 그 발명품은 당시에 최첨단 장치였죠. 굉장한 노력파예요. 영국철도의 산 증인이 스티븐슨입니다. 1825년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열차 운행이 시작되는데 그게 스티븐슨의 열차입니다. 인류 최초의 철도 노선, 영국 리버풀과 멘체스터를 잇는 철길이 놓여지는데, 스티븐슨이 기관사가 되고 그 철도 노선을 운행하게 됩니다."

영국 전체로 철도가 폭발적으로 확장됩니다. 왜? 돈이 되니까. 철도는 잘 몰라도 돈 냄새를 맡은 사람들이 다 몰려 드는데요, 그래서 선로를 여러개를 깔게 됩니다. 경쟁해서 이기면 되니까. 그래서 영국에는 같은 구간인데 선로가 여러개가 생기게 되죠. 그래서 영국 철도가 한번 망합니다.(웃음) 스티븐슨이 그런 얘길 했어요. '철도에서 경쟁만큼 해로운 게 없고, 좋아할 수 있는 것에서는 경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수백년 후에 우리 존경하는 국토부에서는 철도를 경쟁시킨다고 했죠. 그런 이야기가 <철도의 눈물>에 나오는데 시간이 나시면 한번 읽어보세요.(웃음)"

피시 앤 칩스와 철도, 그리고 가슴 주머니

박 기관사는 "과거에는 문자가 귀했다. 책도 아무나 못 봤다. 귀족들이나 읽었던 게 비싼 양장본의 고급 책들이었다. 그런데 철도가 등장하면서 가볍게 들고다니며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기 시작됐다. 책과 문자는 대중의 도구가 된다"고 설명합니다.

도시의 탄생 배경도 철도를 중심으로 이뤄졌고, 그 도시에서 철도 노동자들과 철도를 타고 도시로 모여든 또 다른 노동자들이 새로운 세계를 탄생시키게 된다. 셔츠의 가슴 주머니가 생긴 것도 철도와 관련이 있다.

"옛날에는 여행을 하려면 굉장히 큰 권력자의 은혜가 있어야 했어요. 즉 여행 증명서가 있어야 했죠. 그런데 철도가 생긴 이후, 많은 이들이 이 쪽에서 저 쪽으로 이동하는 게 편리해졌어요.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시대에 철도가 등장하면서, 철도 티켓, 즉 승차권이 곧 여행 증명서가 됩니다. 그런게 가끔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죠. 그래서 당시 옷 앞에 주머니가 생긴 겁니다. 티켓 넣는 주머니로 고안됐죠. 철도가 우리의 옷 스타일을 바꿔 놓은 거예요."

▲ 박흥수 기관사가 '이벤트'의 일환으로 자신의 애장품인 시베리아 횡단철도 기차 모형을 설명하고 있다. ⓒ후마니타스
피시 앤 칩스 이야기도 흥미롭다.

"영국 런던에서는 생선을 먹을 수가 없었어요. 상하니까요. 그런데 철도가 등장하면서 드디어, 몇 시간만에 싱싱한 생선이 배달되게 됩니다. 그 때부터 식당에 생선이 들어와요. 당시 노동자들의 원래 주식이 감자인데, 감자에 생선을 곁들이면서 피쉬 앤 칩스를 만들었더니 이게 대박이 납니다. 노동자들에게 훌륭한 영양분을 공급하게 됐죠."

주식회사의 탄생 설화도 전해 온다.

"저는 '자본주의 모든 것을 철도가 만들었다'고 우깁니다. 그런데 제가 우겨도 아마 설득당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과거에 공장, 방앗간, 정미소를 만든다고 할 때, 그냥 돈 많은 부자가 만들면 됐어요. 그런데 철도는 리버풀에서 맨체스터까지 땅을 사야 하고, 엄청난 공사비를 들여야 하죠. 미국 대륙 철도를 만들려고 한다면 수천킬로미터 선로를 놓아야 하는데, 돈 많은 사람 한 사람이 만들 수 있을까요? 여러 사람들이 돈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낸 돈에 상응하는 배당금을 받아들도록 시스템을 만듭니다. 그래서 주식회사가 만들어진 거죠. 거대한 자본이 필요한 산업이기 때문입니다.

또 미국이 대륙 횡단철도를 건설하면서 많은 자본가들이 철도 건설에 뛰어듭니다. 그러다보니 약삭빠른 사업가들은 정치인들에게 돈을 주면서 자신의 잇권을 지켜달라고 합니다. 정경 유착이 탄생하게 되고, 그것을 위해 워싱턴 정가 호텔의 '로비'가 북적입니다. 그게 '로비스트'가 된 거죠."

철도가 만든 것은 이 외에도 많다. 특히 대형 참사, 그리고 대량 학살이 벌어지는 전쟁에는 철도가 만든 풍경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이를테면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입지는, 철도 연결이 편한 곳을 골랐기 때문에 결정됐다. 장기전과 현대전이 가능한 것도, 철도를 통한 획기적인 '보급로'의 개선 때문이었다.

그런 철도를 다시 평화롭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남북을 이을 수 있는 것도 철도다.

"지금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대결과 갈등 구조를 없애는데, 철도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한반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남북관계까 갈수록 더 악화되는데 안타까워요. 기차 타고 평양 가서 평양 냉면에 대동강 맥주를 먹고 싶은데…."

철도가 평화와 소통의 길이 됐으면 한다는 말로 박 기관사는 말을 맺었다. 철도를 타고 세계 역사를 여행하고 싶은 분은 박흥수 기관차가 운전하는 기차를 타고, 고대 피라미드의 여명에서, 한국 전쟁의 한복판까지 쌩쌩 달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20년 철도 외길의 경력에서 뿜어져 나오는 구수한 그의 입담과 함께.

▲ 서울 용산역에서 열린 박흥수 기관사의 북콘서트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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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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