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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룩한 농사, 권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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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룩한 농사, 권태기?

[귀농통문] "농사의 중심은 공동체"

도통 영문을 모르겠다. 10년 가까이 텃밭농사를 지어오면서 농사를 짓는 그 순간만큼은 행복하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먹고살기 팍팍해서 머리가 지끈거릴 때 부러 텃밭에 나가면 머리가 맑아진다. 그래서 지금도 머리가 복잡해질라 치면 '에라, 모르겠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텃밭으로 간다. 농기구를 단단히 움켜쥐고 무념무상 아침부터 밤까지 땀으로 목욕을 해가며 흙을 일구다 보면, 무슨 똥배짱인지 '다 잘 될 거야' 하고 뱃속이 편해진다. 그때마다 아내와 딸은 가자미눈을 치켜뜨고 째려보지만 나는 짐짓 모른 척 먼산바라기를 한다.

그런데 지난해 초여름 문득, 농사가 허우룩했다. 아무런 까닭 없이 그냥 시들시들 신명이 나질 않았다. 200평 텃밭에 할 일이 산더미라 일손을 재게 놀리지만, 어쩐 일인지 자꾸만 꾀가 났다. 꾀가 나다 보니, 뭉그적뭉그적 속도는 붙질 않고 영양가 없이 힘만 패였다. 한나절이면 족할 일을 종일 낑낑대며 씨름을 하질 않나, 할 일만 눈에 띄면 덥석덥석 달려들던 전과 달리 엉거주춤 망설이다 '다음에 하지, 뭐' 하고 뒷걸음질치는 일도 심심찮았다. 참 미치고 폴짝 뛸 일이었다.

농사에 흥이 일지 않는 경우는 대개 농사가 잘 안 될 때이다. 사람 마음은 다 거기서 거기라 작황이 안 좋으면 떡심이 풀리게 마련이다. 어느 해인가 나는 극심한 봄 가뭄에 감자농사를 망친 적이 있다. 탄저병이 도는 바람에 고추가 한 방에 훅 가기도 했고, 진딧물이 창궐해서 배추농사를 망친 쓰라린 기억도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쥐들이 득시글거리는 밭에 수박과 참외를 심었다가 녀석들에게 고스란히 상납하거나, 쇠똥 부은 밭에 멋모르고 고구마를 심었다가 굼벵이 좋은 일만 시킨 적도 있다. 그런 일을 겪고 나면 한동안 의욕을 잃고 억지춘향이로 텃밭 주변을 어정거렸다.

▲ 양파를 수확하는 얼굴이 햇살처럼 환하다. ⓒ김한수

그러나 2년 내리 농사는 짓는 족족 풍작이었다. 마늘과 양파는 입이 벌어질 정도로 튼실한 놈들로 수확했고, 감자도 관행농 부럽잖게 씨감자의 스무 배나 나왔다. 봄 당근은 시중 당근과 견주어 밑질 게 없었으며, 수박과 참외는 딸이 '와우!' 감탄하며 손뼉을 칠 만큼 잘됐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뻥 좀 보태서 지게차를 불러야 할 만큼 수확을 하는데도 오리무중 영 뒤가 허전했다. 두 팔이 빠질 정도로 풍성한 수확물을 싸들고 집에 들어가도 내려놓으면 그뿐, 즐겁지가 않았다. 재작년만 해도 나는 수확물 보따리를 여봐란듯이 거실 한가운데 탕 내려놓으며 목에 힘깨나 줬다. 그러나 농사가 시들해지고 나서부터는 수확물이 제아무리 풍성해도 조용히 베란다에 내려놓고 그림자처럼 돌아섰다. 농사뿐만 아니라 수확도 시들해진 것이다. 이전까진 사소한 수확물 하나에도 들떠서 쾌재를 불렀는데 이건 뭐 애기 머리통만 한 파프리카가 달려도 하품을 할 정도로 심드렁할 따름이었다.

새로운 작물을 심어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아스파라거스와 호랑이강낭콩과 바질을 심었다. 그런데 이렇게 무심해도 되나 싶을 만큼 통 관심이 가질 않았다. 새로운 작물을 만날 때마다 호기심으로 두 눈을 빛내가며 내내 설레던 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냥 저희끼리 알아서 잘 자라겠지'라며 무덤덤한 사내 하나가 어깨를 으쓱거리고 서 있을 뿐이었다.

농사 연식이 제법 되다 보니 권태기가 찾아온 것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이해하고 지나가기에는 뭔가 찜찜하고 미흡하다. 도대체 어디에서 나사가 빠져버린 것일까.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머리를 쥐어짜 봤지만, 딱히 '이거다!' 하고 짚이는 게 없었다. 원인을 알아야 마음을 다잡을 텐데, 참으로 답답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예년이면 7월 하순에서 8월 초순 사이에 가을 농사 준비를 말끔히 끝냈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입추가 지나가도록 멍하니 손 놓고 있다. 김장밭은 풀로 뒤덮여 있고 당근과 잎채소들은 파종도 못 했다.

▲ 김장농사공동체가 일하는 모습. ⓒ김한수

그러던 차에 급작스레 사정이 생겨서 의도치 않게 농장을 얻게 됐다. 오랫동안 함께 농사를 지어온 선배들이 갑자기 땅을 떼이게 된 것이다. 하루아침에 땅을 떼이게 된 선배들은 술자리에서 비분강개하면서도 다음해 농사를 막막해했다. '이를 어쩐다' 한숨을 내쉬어가며 답답해하던 우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참에 우리만의 농장을 얻기로 의기투합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알음알음 수소문한 끝에 꽤 괜찮은 농장이 얻어걸렸다. 교통의 요지에 시설이 다 갖춰져 있는 데다 임대료도 적당해서 우리는 단박 계약을 했다. 이듬 해 봄부터 농장을 쓰기로 계약하면서 우리는 마늘과 양파 농사를 지어야 하니 농장의 일부를 가을부터 쓸 수 있도록 해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땅 주인은 선선히 '그러마' 했다. 우리는 자축을 하는 자리에서 마늘과 양파공동체 열 명을 모집해서 150평 농사를 짓기로 작전을 짰다. 그런 뒤 우리가 아지트로 쓰고 있는 '자유청소년도서관'의 이름을 따서 농장 이름도 '자유'로 정했다.

다음 날 밀린 밭일을 하러 농장으로 가는데 전에 없이 발걸음이 가벼웠다. '묘하다' 생각하면서 낫을 드는데, 손잡이가 손에 착 붙고 사각사각 풀을 베는 낫질에 흥이 실렸다.

나는 잠시 낫질을 멈추고 '이건, 뭐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무룩했던 농사가 왜 갑자기 즐거워진 걸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이 모든 게 그대로이다. 도대체 뭘까? 그러다 퍼뜩 마늘과 양파공동체에 생각이 미쳤다. 나도 모르게 '아…' 탄식이 새어나왔다.

농장을 얻은 뒤 가을부터 마늘과 양파공동체를 꾸리기로 한 그 순간부터 '이야, 재밌겠는데?' 하고 신바람을 냈던 기억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아하, 이거였구나! 나는 무릎을 쳤다. 농사에 흥을 잃은 영문을 몰라 밤마다 자반을 뒤집어가며 끙끙거렸는데, 일순간 안개가 확 걷히는 기분이었다.

▲ 도시농업에 잔뼈가 굵은 선수들이 손발을 맞춰 돌보고 있는 울금밭. ⓒ김한수

해마다 나는 공동체를 꾸려서 농사를 지어왔다. 개인 농사도 병행했지만, 농사의 중심은 언제나 공동체에 있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농장을 옮겨 다니고 공동체의 구성원도 새로운 얼굴들로 채워졌지만, 공동체 농사를 거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감자공동체를 시작으로 생강공동체, 고구마공동체, 김장농사공동체, 고추공동체, 수박과 참외공동체, 마늘과 양파공동체를 비롯해서 울금과 여주공동체까지 참으로 다양한 작물공동체를 꾸려왔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이리저리 엮인 일이 많은 탓에 공동체에 발을 담그지 못했다. 봄 농사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나는 공동체 농사를 걸렀다고 농사짓는 즐거움이 손바닥에 고인 물처럼 스르르 빠져나가리라곤 짐작도 하지 못했다.

물론 타짜 대접 받는 선수 넷이 공동체를 구성해서 가공과 판매를 목표로 울금과 여주농사 120평을 짓기는 했다. 술자리에서 우스갯소리로 여주와 울금에 목매단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여울목'이라는 이름을 짓기도 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 농사는 즐겁지가 않았다. 농사도 더할 나위 없이 잘 됐지만, 즐겁기는커녕 그냥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히기 일쑤였다.

농사 자체를 즐기기보단 생산 목표를 세우고 가공과 판매에 주안점을 둔 탓인지 잘 키워야 한다는 압박감이 은연중 따라붙었고, 다 함께 모여서 일을 해도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여유보다는 후다닥 해치워야 한다는 중압감에 등을 떠밀리기 일쑤였다. 과정 자체를 즐기려고 애도 써보았으나, 한번 잃어버린 흥은 좀체 돌아오지 않았다. 목표가 중심에 놓이니 100미터 달리기처럼 결승점만 바라보고 죽어라 달리는 형국이랄까? 여타의 과정은 그다지 중요치 않았다.

그간 몸을 담갔던 공동체에서는 함께 일을 하고, 밥을 먹고, 막걸릿잔을 돌려가며 풍성한 이야기꽃을 피우는 자체가 목적이고 목표였다. 수확은 중요치 않았다. 열심히 농사는 짓되 결과는 하늘에 맡긴 채 빙그레 둘러앉아 서로의 삶을 나누고 함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싱긋, 웃으면 모든 게 족했다. 그러다 보니 모이는 날을 눈 빠지게 기다리게 되고, 행복한 기다림으로 일상의 무게를 견딜 수 있었다. 이전엔 미처 몰랐지만 도시농업은 하늘과 함께 생명을 키우면서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는 데 참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그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행복할 수 있었던 것도 자연스레 그 가치를 몸에 새겼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니 혼자서 지어온 지난해 농사가 즐겁지 않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 농사짓는 가장 큰 즐거움은 뭐니뭐니해도 한 식구가 되어 음식을 나누는 일이다. ⓒ김한수

새로 얻은 농장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알 수는 없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북적북적 어울리면서 어깨를 들썩이는 그림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린다. 상상만으로도 신명이 난다.

나는 낫을 든 손에 불끈 힘을 주었다. 그러곤 콧노래를 흥얼거려가며 20평 김장밭의 풀을 잡아나갔다. 한여름 불볕더위에 숨이 컥컥 막히고 땀이 줄줄 흘러내려도 어쩐지 힘이 난다.

나는 한 번도 쉬지 않고 내리 두 시간 남짓 풀을 맸다. 온몸이 땀에 절고 낫 쥔 손아귀가 뻐근했지만 금방이라도 붕 떠오를 것처럼 몸은 가볍고 기분이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다. 나는 그윽한 눈으로 깔끔하게 이발한 밭을 눌러봤다. 문득 밭 너머로 사람에게로 가는 길이 환히 열린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아무래도 좋다. 농사는 이 맛에 짓는 게 분명하니까.

귀농통문은 1996년부터 발행되어 2016년 1월 현재 75호까지 발행된 전국귀농운동본부의 계간지입니다. 귀농과 생태적 삶을 위한 시대적 고민이 담긴 글, 귀농을 준비하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귀농일기, 농사∙적정기술∙집짓기 등 농촌생활을 위해 익혀야 할 기술 등 귀농본부의 가치와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긴 따뜻한 글모음입니다. (☞바로가기 : 전국귀농운동본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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