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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괴물로 변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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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괴물로 변했어요"

[민들레] 노벨문학상 수상작 <체르노빌의 목소리>

인류의 새로운 재앙

지난해 스웨덴 한림원은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논픽션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를 선정했다. 의외의 결과였으나, 그 어떤 작가의 수상보다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겪은 이들의 삶과 죽음을 육성으로 담아낸 <체르노빌의 목소리>(김은혜 옮김, 새잎 펴냄)가 바로 그가 쓴 책이기 때문이다. 그는 구소련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민스크에 있는 벨라루스 국립대를 나왔다. 그의 출신지와 대학이 있는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민스크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직접 피해 지역이다.

구(舊) 소련 몰락 후 공개된 KGB 보고서에 따르면, 체르노빌 원전은 1982년에도 사고가 나서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에 방사능이 유출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공산주의 체제는 이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고, 사고가 재발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도 무시했다. 또한 유고슬라비아에서 제작된 체르노빌 원전의 부품은 불량인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경 우크라이나 공화국 수도인 키예프시 남방 130km 지점에 위치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4기의 원자로 중에 마지막 4호가 폭발하고 만다. 이 사고는 총체적 인재였으며 이후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 <체르노빌의 목소리>(김은혜 옮김, 새잎 펴냄). ⓒ새잎
사고 후 체르노빌 원전 반경 30km 100여 개 마을이 거주 불능 및 사용 불가능 지역으로 선포된다. 또, 인근 열두 개 주 2000여 개 마을이 피해를 입었고 방사능 오염은 유럽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직간접적인 인명 피해는 무려 300만 명에 이르렀으며, 그 가운데 어린이가 100만 명이나 된다. 몇 해 뒤 기형아 출산과 사망이 2배 증가했고, 어린이 암 환자는 10배나 늘었으며, 피해 주민의 60%가 갑상선 질환에 걸렸다. 폭발이 일어난 후 소방대원들은 즉각 출동해 화재를 진압했지만, 그들 가운데 제대로 된 방호복을 입은 이는 없었고 대부분 며칠 후 방사선 피폭으로 사망에 이르렀다. 소련 당국은 사건 자체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36시간이 지난 후에야 주민 소개를 명령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소련은 체르노빌의 사후 수습을 위해 수많은 민간인과 군인을 투입했는데, 그것은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었다. 체르노빌 사고는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였다. 이것은 20세기의 대재앙으로 기록된 역사다.

스베틀라나는 자신이 체르노빌의 증인이라며 "무서운 전쟁과 혁명이 20세기를 지나갔지만 체르노빌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단언한다. '미래의 연대기'라는 부제가 붙은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소방대원부터 마을주민, 아이들, 해체 작업자, 군인 등 체르노빌을 겪은 모든 사람들의 경험담이자 증언록이다. 이 책을 읽으며 특히 힘겨웠던 것은 고통을 경험한 이들의 가감 없는 목소리가 담긴 대목을 읽을 때였다.

고통 받는 이들의 목소리

한 과학자와의 대화가 기억난다. "수천 년은 갈 겁니다." 그가 설명했다. "우라늄이 붕괴하려면 238번 반감해야 하는데, 그걸 시간으로 환산하면 10억 년입니다. 토륨의 경우 140만 년입니다." 50, 100, 200년…. 그 이상이라고? 그 이상은 충격이야! 그때부터 나는 시간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어디에 있는 건가?(190쪽)

갓 결혼한 소방대원 바실리 이그나텐코는 그날 새벽 아내에게 "창문 닫고 자. 발전소에 불이 났어, 빨리 들어갈게"라는 말을 남기고 사고 현장에 투입됐다. 방호복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일곱 시, 아내는 남편이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달려갔지만 경찰은 구급차가 피폭됐으니 다가오지 말라는 말뿐이었다. 남편은 곧바로 모스크바로 이송됐고 그 후 14일간 급성 방사능 장애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그 14일은 사람이 처참하게 죽어가는 시간이었다. 괴물처럼 변해 죽어가는 남편 옆을 지키고자 하는 아내 류드밀라에게 누군가 소리친다. "잊지 마세요.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은 남편도, 사랑하는 사람도 아닌, 전염도가 높은 방사능 물질이에요. 죽고 싶어요? 정신 차리세요!"(42쪽)

전(前) '벨라루스 과학 아카데미 핵에너지 연구소' 소장인 바실리 보리소비치 네스테렌코는 4월 27일 발전소에서 불과 수십 킬로 떨어진 우크라이나 경계의 고멜주를 찾아갔다. 시간당 3만 퀴리가 넘는 방사능 오염지역이었지만, 사람들은 씨를 뿌리고 밭을 갈고 있었다. 다가오는 부활절 준비로 케이크를 굽고 시장은 흥정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방사능 구름 아래서…. 1등 서기관 슬륜코프에게 위기 상황을 보고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슬륜코프는 곧 승진을 해서 모스크바로 발령받을 예정이었다. 그는 상부의 지시에 충실해야만 앞날이 보장되는 관료였다.

이렇게 소련 정부는 정보에 대한 통제 아래, 생명보다 권력을 지켜내는 데 열중한다. 수 킬로미터 떨어진 마을의 주민들은 폭발 당시 화재를 보기 위해 집 옥상에 올라가거나 발전소 주위에 몰려들기도 했는데, 이는 정보가 통제된 사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일화다. 헬기 조종사들은 수천 뢴트켄의 방사능이 흘러나오는 지붕 위에서, 정확한 조준을 위해 헬기 창문을 열고 모래와 납, 흑연 등을 떨어뜨린다. 그들은 훗날 공산당의 영웅으로 묘사되지만, 거의 대부분 피폭으로 사망한다. 만약 그들이 희생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유럽 전체가 영원히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변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체르노빌을 1, 2차 세계대전보다 더 중요한 20세기의 역사로 생각하는 근거다.

이제 모든 것이 바뀌었어요. 다르게 태어나고, 다르게 죽어요. 내가 사랑했던 사람, 내가 그의 엄마였더라도 그보다는 더 사랑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한 사람이 내 눈앞에서 변해갔어요. 괴물로….(397쪽)

▲ 알렉시 야블로코브(Alexey Vladimirovich Yablokov)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 당시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과학 고문이었다. 그는 피폭자의 상황을 20년 넘게 추적 조사해 '체르노빌'이라는 이름으로 출판했다. 위 사진은 야블로코브 박사가 채집한 자료다.

체르노빌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탄도 과거의 일이다. 우리는 그러한 역사를 책을 통해 배웠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옛일로 치부하고, 발생하지 않은 일은 가정일 뿐이라며 위안을 삼는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어리석다는 표증이다.


20세기는 물리와 과학의 세기였다. 인간이 나약한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자연을 이용하고 지배하는 존재로 격상되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는 근본적으로 인간과 과학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체르노빌 사고가 후진적이고 전체주의적 기술과 권력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후쿠시마는 선진적이고 자유주의적이었다. 일본 정부는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자신들의 원전이 세계 최고의 안전성과 기술력을 가진다고 확언했다. 원전 사고는 인간의 힘으로 수습될 수 없다는 것을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는 증언한다.

지나간 일은 사라진 일일까

이제 과거의 일을 붙들고 한국을 살펴보자. 설계 수명 30년을 훌쩍 넘긴 고리 핵발전소 1호기는 어찌 된 영문인지 2017년까지 재가동 승인을 받았다. 환경단체와 시민들의 노력으로 2017년 폐로가 확정됐지만, 이미 이 좁은 한반도에는 23개의 핵발전소가 운용 중이며 여기다 새로 건설 중인 원전 6기를 합치면 30기 가까운 핵발전소를 보유한 나라다. 면적 분포당 세계 최대 밀집률이다. '원전 마피아'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한국 원전은 잦은 고장, 부품 비리, 사고 은폐로 얼룩져 있다. 국가는 원자력을 대신할 에너지에 대한 고민이 없고, 시민들은 방사능은 걱정하면서도 전기 소비에 대해선 무감각하다. 한반도는 이미 핵무기 없는 핵전쟁의 위험 속에서 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데도 말이다. 원자력발전소로 날아오는 적의 미사일이 바로, 핵전쟁의 서막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방사능 사고 후 검출되는 세슘이나 스트론튬 등 수백 가지의 방사능 물질은 자연 상태에선 검출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 물질이다. 인간의 오만이 잠든 지옥의 물질을 현실로 가져온 것이다. 방사성 물질은 인간의 DNA를 변형시켜 암과 기형을 유발한다. 한 번 방사능 물질에 오염된 토양에선 사람이 살 수 없다. 방사성 물질의 반감기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을 넘어선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나는 과거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며 <체르노빌의 목소리> 한국어판 서문을 끝맺는다. 체르노빌은 정말 과거일까? 그저 한낱 교훈이며 역사일까? 인류의 낯익은 현재이자 미래가 아닌가. "두려움만이 우리를 가르칠 수 있다."(5쪽)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바로가기 :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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