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기사 : 일대일로의 사상 ① : 지리 혁명과 공영주의(上) "2020년 세계 최강대국은 바로 중국")
지리 혁명
이병한 : 중국이 '책임 대국'의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일까요.
후안강 : 2008년 이후 확실해진 것은 유럽은 더 이상 세계를 견인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또한 신뢰할 수 없는 패권국입니다. 지난 연말 미국 연방 은행(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을 보십시오. 달러 패권 고수라는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타국의 재정 위기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대국적 견지에서 작은 손실을 감수할 수 있는 나라가 지도국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문제의 해결사가 아니라 문제의 유발자입니다. 금융 조작으로 세계에 기생하면서 패권을 지속하는 꼴입니다. 중국은 더 이상 글로벌 거버넌스의 방관자로 있을 수 없습니다. 적극 참여할 뿐 아니라 선도해 갈 것입니다.
지구적 규칙과 규범을 새로 만드는데 중국의 목소리를 높일 것입니다. 중국적 요소를 더욱 주입시킬 것입니다. 인류와 평화를 위해 더 크게 공헌할 것입니다. 일대일로의 전 과정에서 함께 논의하고, 함께 건설하고, 함께 향유한다, 는 원칙을 고수할 것입니다. 폐쇄적이거나 전횡적이지 않으며 개방적이며 포용적일 것입니다.
이병한 : 초기 호응은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미국의 최고 우방국인 영국마저 AIIB에 참여했으니까요. 이미 60여개 국가에 40억 인구를 아우르는 규모입니다. 발의에서 발족까지 불과 2년이 걸린 셈인데요. 그 동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후안강 :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중국이 이미 세계 경제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세계 제1의 무역 대국입니다. 세계 200여개 국가에서 제1, 제2, 혹은 제3의 무역 파트너가 중국입니다. 미국과 단절된 국가는 없지 않지만, 중국과 담을 쌓고 있는 나라는 세계에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중국은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의 이해 당사국,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이해 당사국이 되었습니다. 이익 공동체이자 운명 공동체가 될 수밖에 없는 물적 토대가 이미 형성된 것이지요. 이로써 세계 경제의 영도 지위로 올라선 것입니다. 일대일로를 발기함으로써 중국은 처음으로 독자적인 세계 질서를 제안하게 되었습니다. 제3세계의 리더에서 전 세계의 리더로 바뀌었습니다. 비서구 국가로서는 처음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병한 : 영국이나 미국이 주도했던 기존의 세계 질서와는 어떤 차별성이 있을까요?
후안강 : 미국의 세계 전략은 미국의 안전 보장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대표적입니다. 가입국들에게 세계무역기구(WTO)보다 더 강도 높은 조건을 요구합니다. 소국과 후진국을 전혀 배려하지 않습니다. 선진국, 더 정확히 말해 미국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기준과 규제로 세계를 표준화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세계화의 취지에도 어긋납니다.
반면 일대일로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의 마셜 플랜과도 질적으로 다릅니다. 마셜 플랜은 기본적으로 (서)유럽의 경제 회복을 원조함으로써 미국의 과잉 생산을 해소하는 전략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유럽 시장을 미국이 장악하여 소련에 대항하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냉전적 사유에 바탕을 둔 것이지요.
그러나 중국의 일대일로는 중국의 발전을 전 세계와 융합시키는 것입니다. 중국의 번영이 세계의 이익과 수혜가 되도록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유럽과 동아시아의 선진국뿐만 아니라 유라시아의 복판을 차지하는 개발도상국들까지도 혜택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국제주의의 합작 모델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중국은 지난 30년간 거의 유일하게 빈부격차를 해소해간 나라입니다. 개혁 개방 초기에는 불균형과 불평등이 심했습니다. 그러나 2005년을 기점으로 점차 축소되고 있습니다. 동남부와 서북부, 도시와 농촌 간 격차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2005년에 75.1%까지 벌어졌다가, 2015년에는 43.5%로 떨어졌습니다. 90년대 중반의 55.4%보다 오히려 더 좋아진 것이지요. 성향(城鄕) 일체화, 도농(都農) 일체화의 정책이 결실을 맺어가고 있습니다.
이병한 : '大同(대동) 사회'라는 말도 등장했더군요.
후안강 : 중국 안에서의 격차 해소형 일체화를 세계 경제의 일체화와 결부시키는 것이 일대일로입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격차도 해소해가는 것이지요. 중국이 주도적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의 기간 산업을 일으키는 한편으로 유럽의 노후화된 시설도 개선해 갈 것입니다. 정치와 경제의 결합, 내정과 외교의 결합, 시간과 공간의 결합, 역사와 미래의 결합에 일대일로의 성패가 달려 있습니다.
이병한 : '天下無外(천하무외)'라는 말을 연상시킵니다.
후안강 : 일대일로는 일종의 '지리 혁명'입니다. 중국의 경제 지리에서 유라시아 국가들의 경제 지리로, 나아가 세계의 경제 지리를 바꾸어갑니다. 으뜸은 교통 혁명이지요. 고속철 혁명과 고속도로 혁명입니다. 중국의 교통 혁명은 무(無)에서 유(有)로, 소(小)에서 다(多)로, 다(多)에서 세계 최고(高)로 성장했습니다.
2015년 현재 11만 킬로미터의 고속도로와 2만 킬로미터의 고속철이 중국에 깔렸습니다. 점차 유라시아 전체로 확산될 것입니다. 인터넷 혁명도 진행 중입니다.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의 정보망이 깔린 나라입니다. 가장 많은 네티즌을 보유한 국가입니다. 2015년으로 7억 명을 돌파하여 세계 네티즌의 4분의 1을 차지합니다. 미국조차 2억에 그칩니다.
모바일 연결망 또한 세계 최대입니다. 6억 명이 모바일 폰을 사용합니다. 세계의 35%입니다. 모바일화, 디지털화, 네트워크화에 가장 성공한 국가가 중국입니다. 알리바바와 샤오미의 기적은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이 온/오프라인의 지리 혁명으로 세계의 판도를 바꾸어 갈 것입니다.
이병한 : '지리상의 발견'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시공간에 대한 유럽의 지식과 관념이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었는데요. 20세기에는 지정학(Geo-politics), 지역학(Area Studies) 등으로 변주되었고요. 동아시아,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등등의 구획과 범주 자체가 서구, 더 정확하게는 미국의 지배 전략이 투사된 공간-지리 개념이었습니다. 과연 일대일로가 '지리의 발견' 이래 세계 지도를 다시 그려가는 '지리 혁명'이 될 수 있을지 흥미롭습니다.
현재의 세계 지도가 그려진 바탕에는 유럽의 국가 간 체제(Inter-State System)가 있었습니다. 30년 종교 전쟁의 산물이었죠. 종교 개혁 이래 신교와 구교가 뒤엉킨 혼종 상태를 인위적으로 가른 것이었는데요. 즉, 구교 국가와 신교 국가를 나눔으로써 국가 간 체제가 성립된 것이지요.
다시 말해 유럽의 '국민 국가'란 일종의 신앙 공동체였던 셈입니다. 그 종교적 열정이 '민족주의'라는 신념 공동체로 발전한 것이고요. 이 민족주의와 국민국가가 결합하여 유라시아형 제국들을 해체해간 것이 지난 20세기였습니다. 인위적인 국경 설정으로 기층의 생활 세계가 해체됨으로써 분단과 이산(디아스포라)이 만연했고요.
외부의 타자화와 내부의 소수 민족 문제 등 배타성도 심해졌습니다. 우승열패,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논리가 횡행하고 민족주의가 20세기의 시대정신이 된 것 또한 지리-공간의 재편과도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일대일로가 일종의 지리 혁명이라고 한다면, 그 새 공간을 채워가는 새로운 시대정신이란 무엇인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영주의
후안강 : 한 마디로 원윈이즘(Win-Winism)입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인류는 세계화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첫 번째 세계화는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식민주의 시대이고, 그 뒤를 이은 것이 대영제국이 앞장 선 제국주의 시대였습니다. 제국주의 시대는 파시즘을 포함한 양차 세계 대전으로 막을 내리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패권주의 시대가 펼쳐집니다. 처음에는 미소 양패에서 후반기는 미국의 단독 패권기입니다. 패권주의가 세계 냉전의 근원이자 지역 분쟁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이라크 전쟁, 아프간 전쟁, 리비아 내전, 시리아 내전 등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일대일로는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의미합니다. 500년 전의 식민주의, 200년 전의 제국주의, 20세기의 패권주의와 다른 시대의 출발을 알립니다. 앞의 3개의 세계화는 정글의 법칙이 작용했습니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의 말대로 중국은 나라가 부강하면 반드시 패권을 추구한다(國强必覇)는 논리를 믿지 않습니다. 세계는 중국이 주도하는 일대일로를 통하여 윈윈이즘(win-winism)의 시대로 진입할 것입니다. 윈윈이즘은 기존의 서양 사전에는 없는 단어로, 세계의 공동 번영을 의미합니다.
이병한 : 윈윈이즘을 계속 영어로 말씀하시는데요. 한자로 옮기자면 '共榮(공영)주의'가 되지 않을까요? 동아시아인으로서는 곧바로 大東亞共榮圈(대동아공영권)이 떠오릅니다. 大中華共榮圈(대중화공영권)의 우려가 없지 않을 텐데요.
후안강 : 앞서의 세계화는 불공정했지만, 후자는 공정합니다. 전자는 적대성을 바탕으로 했지만, 후자는 평등성에 기반을 둡니다. 전자는 배타적이었지만, 후자는 포용적입니다. 전자는 충돌성을 내장했지만, 후자는 조화성을 강조합니다. 전자는 지속 불가능했지만, 후자는 지속 가능성, 지구(持久)성에 바탕합니다. 일대일로는 시진핑 시대의 10년짜리 국책이 아닙니다. 10년을 단위로 계속해서 계획을 만들어 오랜 세월 지속할 장기 프로젝트입니다.
이병한 : 百年大計(백년대계)인가요?
후안강 :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롭게, 적대하지 않고 합작으로, 제로섬이 아니라 윈윈으로. 인류 사회의 항구적인 주제입니다. 기존의 양자, 다자적 자유무역협정이란 대내적으로는 개방적이지만 불평등합니다. 선진국이 후진국을, 대국이 소국을 배려하지 않습니다. 대외적으로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이지요. 봉쇄 전략과 항상 연동되어 있습니다.
환태평양은 중국을, 환대서양은 러시아를 봉쇄하려는 전략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중국은 이러한 배타성을 배격합니다. 일대일로는 전면 개방적인 '신형국제합작'의 모델입니다. 참여국 모두에게 개방적이고 평등합니다. 또 포용적입니다. 국가의 대소, 인구의 다소, 국가의 빈부, 종교와 문화를 막론하고 최대 공약수를 찾아서 상호 이익을 누리는 방법을 찾습니다.
이병한 : 어떻게 찾습니까?
후안강 : 공동 건설과 互聯互通(호련호통)을 통해서입니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의 연결망을 재구축합니다. 화물 무역, 서비스 무역, 직접 투자를 비롯하여 온라인-오프라인을 통합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합니다. 휴먼 네트워크에 사물 네트워크까지 포함한 전 방위적, 다층적, 복합형 호련호통입니다. 마음을 얻는 자, 천하를 얻는다(得衆心者, 嬴得天下)고 했습니다.
게다가 일대일로는 국가 간 합작에도 그치지 않습니다.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대륙 간 합작'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동아시아와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유럽에 중간의 광활한 중동,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남아시아까지 포함합니다. 3대륙 2대양을 통합하는 인류사적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병한 : 베이징에 오기 전에 반둥에 다녀왔습니다. 반둥 회의 60주년 기념행사를 지켜보았는데요. 반둥 정신과 일대일로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후안강 : 중국은 대외 개방과 세계화의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큰 수혜자입니다. 중국은 점점 더 세계가 필요하고, 세계 또한 갈수록 중국이 필요합니다. 대국이든 소국이든, 부국이든 빈국이든, 아시아든 유럽이든, 아프리카든, 모두가 중국의 미래 향방에 주목합니다. 중국의 목소리를 경청합니다.
반둥 회의 60년 만에 남반구 국가와 북반구 국가의 몫이 비슷해졌습니다. 북반구와 남반구의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윈윈 게임으로, 지속 가능하고 신뢰 가능한 비제로섬 합작 체제로 전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적기입니다. 중국은 그러한 의지가 있고, 그럴만한 조건이 있고, 또 능력이 있습니다. 지구의 남북이 공동으로 '조화 세계'를 건설하고, '공부(共富) 세계'를 건설하고, '녹색 세계'를 건설하는 공영주의 시대를 열어갈 수 있습니다.
그는 첫인상만큼이나 여전히 자신만만하고 야심이 넘쳤다. 지나치게 국가에 친화적이라는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을 성 싶다. 아니 그런 비판 자체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인지도 모른다. 애당초 본인이 깊이 관여하여 만든 청사진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半信半疑(반신반의)다.
국가 간 공존, 문명 간 연대에는 어느 정도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다. 화이변태와 호한융합으로 작동했던 중화제국의 반만 년사를 돌아보면 전혀 허황한 야망이라고만은 보지 않는다.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자체가 내부로 수많은 국가를 품고 있는 다국가 연합이자 다문명 제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건은 역시나 환경이고 생태일 것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조화와 포용은 중화문명의 오래된 장기였다. 天主(천주)를 섬기지 않고, 天下(천하)를 염려했던 오래된 저력을 높이 산다. 그러나 인간과 자연 사이의 조화, 天地人(천지인)의 조화는 좀처럼 낙관하기 힘들다. 중국의 사방팔방으로 깔린 고속철과 고속도로가 굉장하다가도, 과연 그 장거리 기차와 자동차들이 2050년에도 순탄하게 달릴 수 있을 것인지 의아스럽기도 하다. 땅 속의 석탄과 석유, 가스가 얼마나 남아 있을까. 남았다 하더라도, 뜨거워지는 지구는 또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인류의 살림살이를 지하자원에 의존했던 근대문명의 수명이 얼마나 더 연장될 수 있는 것일까.
마침 후안강은 '녹색 고양이'를 주창하고 나섰다. 덩샤오핑의 '흑묘백묘(黑猫白猫)'를 빗대어 살짝 비튼 것이다. '홍색중국'에서 '녹색중국'으로 이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베이징의 우중충한 겨울 스모그를 유라시아의 초원까지 확산시킬 작정이 아니라면, '일대일로의 녹색화'는 필수적이고 사활적이다. '녹색중국'에 대한 그의 전망을 계속 들어보기로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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