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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션>은 <로빈슨 크루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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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션>은 <로빈슨 크루소>가 아니다

[프레시안 books] 강양구의 '2015 올해의 책'

1년간 외국에서 생활하다 3월에 귀국했다. 정작 외국어 공부를 힘써야 할 외국에서는 어찌나 우리나라 책이 읽고 싶은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 신간을 챙겨서 읽었다. 책 일기를 훑어보니 어떨 때는 1주일에 두세 권씩 독파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읽은 책들의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군대에서 읽은 책들이 딱 그랬다.)

3월에 한국에 돌아와서부터는 책 읽기가 뜸해졌다. 그나마 <시사통>과 <프레시안>이 함께하는 '독서통' 덕분에 1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어야 할 의무가 없었다면 올해 읽은 책 목록은 더욱더 빈약해졌을 것이다. 아무튼 그래도 한 해를 돌이켜보면 웃고, 울고 또 잠시라도 생각을 골몰하게 했던 때, 옆에는 항상 책이 있었다.

그런 책들 가운데 혼자 읽기만 아까웠던 책들을 몇 권 추려본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어떻게 죽을 것인가>(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부키 펴냄). ⓒ부키
세상에는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책과 꼭 읽어야 할 책이 있다. 올해 나온 책 가운데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김희정 옮김, 부키 펴냄)는 꼭 읽어야 할 책이다. 특히 60대를 넘긴 부모가 있다면 말이다. 이 책을 먼저 읽고 가족 또 형제자매에게 권하고, 마지막으로 부모에게 권하자.

이미 늙은 사람은 이 책을 읽으며 어떻게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지 마음을 다잡게 될 것이고, 아직 늙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늙어가는 사람과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 지혜를 줄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이 책을 덮으며 깨닫게 될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제목과 달리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전2권,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민음사 펴냄). ⓒ민음사
눈 먼 소녀와 독일군 소년 병사의 운명적인 만남?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장기간 제목을 올려둔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민음사 펴냄)의 첫인상은 그렇고 그런 소설이었다. 그런데 한 대목, 한 대목 읽어가면서 나는 '아, 이 책은 나의 올해의 소설이 되겠구나!' 하고 예감했다. 선악 구도가 분명한 동화 같은 이야기인데도 등장인물도 줄거리도 스타일도 어느 것 하나 상투적인 것이 없다.

타인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가 갈수록 빛을 잃는 요즘 세태에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의 의미를 이토록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서 성찰할 수 있다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더구나 이 소설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성찰할 뿐만 아니라 사람과 과학기술 사이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탐구까지 보여준다. 금상첨화다.

<급진 과학으로 본 유전자 세포 뇌>

▲ <급진 과학으로 본 유전자 세포 뇌>(힐러리 로즈·스티븐 로즈 지음, 김명진·김동광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바다출판사
올해는 2005년의 이른바 '황우석 사태'가 일어난 지 10년이나 되었고 (역시 역사에 무딘 한국 사회! 작년(2014년) 영화 <제보자>가 미리 김을 빼버린 탓인지 올해는 읽을 만한 기사 하나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바이오 거품'이 공공연히 얘기될 정도로 생명공학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로즈 부부의 <급진과학으로 본 유전자 세포 뇌>(김명진·김동광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는 이런 상황에서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이다.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지는 이미 <프레시안>의 서평또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의 '2015년 올해의 과학책' 선정 과정에서 써 놓은 것이 있으니 그 중 한 대목을 옮긴다.

힐러리 로즈, 스티븐 로즈 부부는 1969년 <과학과 사회(Science and Society)>를 펴내며 전쟁, 빈곤, 차별, 대량 학살, 환경오염 등을 낳은 과학기술을 비판하는 '급진 과학 운동'의 태동을 알린 이들이다. <급진 과학으로 본 유전자 세포 뇌>는 바로 이들이 80 평생을 정리하면서 유전자, 세포, 뇌로 요약되는 현대 생물학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전망을 담은 책이다.

제목처럼 현대 생명과학의 거의 모든 부분을 다루는 로즈 부부의 이 책은 20세기 후반 생명과학의 역사를 한 눈에 조망하는 (자전적 경험이 녹아들어간) 훌륭한 역사책이다. 또 후성유전학, 재생의학, 신경과학 심지어 '바이오뱅크'로 상징되는 생물 정보 산업이나 '바이오 신약'으로 대표되는 제약 산업의 현황까지 비판적으로 점검하는 이슈 리포트이다.

반골 지식인이면서도 학계의 변방이 아니라 중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로즈 부부의 독특한 이력 탓에 생명과학계의 온갖 뒷담화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리처드 도킨스도 그 주인공 가운데 하나다.) 진화 심리학이나 도킨스류의 책에 질린 독자라면, 특히 현대 생명과학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을 가지고 싶은 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현대 생명과학을 "누가 통제하고" 또 그것을 통해서 "누가 이익을 보는지" 묻고 "과학의 민주적 책무"를 강조하는 로즈 부부 같은 이들의 책이 외면당하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

<마션>

▲ <마션>(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알에치코리아
과학기술 담당 기자라서 굳이 SF를 꼽은 것은 아니다. 사실 영화가 하도 화제가 되었고,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서 신년에 '마션' 특집까지 하는 마당에 원작 앤디 위어의 <마션>(박아람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을 굳이 또 언급할 필요가 있을지 잠시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을 굳이 언급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올해 읽은 국내외 소설 여러 권 가운데 이 책만큼 정신없이 빠져들며 읽었던 책이 없었다. 로빈슨 크루소를 말 그대로 '21세기적으로 비튼' <마션>은 스토리텔링의 힘이 얼마나 센지 유감없이 보여준 명품이다. 사람들의 허를 찌르는 이런 소재의 소설이 왜 한국에서는 나오지 않는 것일까?

둘째, 이 소설은 로빈슨 크루소의 명맥을 잇고 있긴 하지만, 그 방식은 상당히 다르다. 로빈슨 크루소가 '혼자서도 잘해요'의 경제적 인간의 원형을 보여줬다면, <마션>의 마크 와트니는 혼자서는 아무리 용을 쓰더라도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처량할 수밖에 없다는 새삼스런 깨달음을 보여주는 어쩔 수 없는 사회적 인간이다.

셋째, 그래서일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뜬금없고 주책없이 눈시울을 붉힌 적이 한두 대목 있다. 어떤 대목인지 떠올려봤더니, 외딴 곳에 버려진 사회적 인간이 사실은 혼자가 아님이 확인될 때 또 그가 드디어 타인과 소통하면서 삶의 의지를 다시 한 번 다질 때였다. 그렇다. 이 책은 홀로 남은 남자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그를 기어이 구하고 말겠다는 우리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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