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당과 국가의 모든 일에 직간접으로 개입하여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핵심이며 최고의 권위를 갖는다.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제도로서의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최고의 지위를 가질 뿐 아니라 국가주석과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함께 갖는다는 점에서 무소불위의 살아있는 권력이다.
덩샤오핑 이후 당 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모두 한 사람이 갖게 되면서 제도 권위 확립을 통한 가장 강한 권력을 한 사람이 갖게 되었다. 이는 중국 사회가 다원화되고, 중국의 개혁 개방이 제도화의 길을 향하게 되면서 이제 더 이상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같은 카리스마적 권위를 가진 지도가가 출현할 수 없는 사회 환경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강력한 지도력을 발산하는 카리스마적인 권위가 약화된 상황에서 이를 대체할 새로운 변화로서 제도적 권위의 확대와 강화가 필요했다. 제도에 힘을 부여하고 이 제도 지위에 강력한 권위를 부여하여 권력을 강화한 것이 바로 한사람에게 당, 국가, 군대의 지휘권을 모두 맡기는 것이었다. 장쩌민과 후진타오, 시진핑이 모두 당-정-군(黨政軍)의 최고 지위를 갖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구권력과 현권력의 동거, 가능할까?
중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최고 지도자의 권력 이양이라는 제도 실험은 살아있는 권력을 은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권력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2002년부터 3년여에 걸쳐서 장쩌민이 후진타오에게 당-정-군 권력을 이양했고, 후진타오는 지난 2012년과 2013년 초 모든 권력을 시진핑에게 물려주었다.
이로써 살아 있는 권력을 10년 넘게 움켜쥐었던 전임 권력이 현 권력과 공존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새롭게 최고 권력을 이양 받은 사람과 오랜 기간 최고 권력을 틀어쥐었던 권력이 동거를 시작하는 새로운 실험을 중국이 하고 있는 셈이다.
지도부 내부의 합의에 기초해서 신-구 권력이 교체되었기 때문에 합의가 틀어질 경우 권력 교체를 둘러싼 갈등의 불씨가 언제든지 살아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고 있다. 여기에 더해서 전임 최고 권력을 현 최고 권력과 비교하여 어떤 지위로, 어떻게 응대할 것인가도 중국에서는 과제가 아닐 수 없다.
2015년 10월 20일 전임 권력인 후진타오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푸젠 성에 있는 우이산(武夷山)을 방문했다. 후진타오의 해당 지역 방문은 사회 연결망 서비스를 통해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일례로 "타오 형이 왔다(濤哥來了!)"는 제목으로 웨이보와 웨이신이 방문 현장 사진을 올렸고, 이것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우이산 방문 당시 후진타오는 푸젠 성 서기 여우취안(尤權)의 안내를 받았다. 길게 늘어선 환영 인파와 현직 관원들의 뜨거운 환대는 흡사 살아 있는 권력의 지방 시찰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관방의 '시찰'과 매우 흡사한 모습을 연출했다. 퇴직한 총서기가 사적으로 여행을 한다는 것이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관련 방문 소식을 전하던 사회 연결망 서비스가 어느 순간 접속이 되지 않고 먹통이 되면서 전 총서기의 지방 여행은 이미 정치적인 이슈가 되어 버린 셈이다.
중국은 이미 전직 최고 지도자를 두 명이나 보유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공식, 비공식 활동이 이미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정치적인 이슈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럼 은퇴한 총서기의 활동은 과연 공적인 활동으로 봐야 할까, 아니면 지극히 개인적인 활동으로 봐야할까. 상당히 모호하다. 상황에 따라서 여기에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활동을 어떻게 보느냐는 서로 다른 시각에 따라 서로 판단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은퇴 후 명승지를 유람하는 것이 지극히 사적인 여행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총서기가 갖는 정치적 위상과 중요성에 비춰 보면 비록 은퇴했을지라도 일거수일투족이 국민의 관심사인 점은 분명하다. 현직에 있는 고위 관원들이 일정에 함께 참가하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정치적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특히 중국 정치에서 은퇴 총서기의 지위와 역할이 아직 제대로 제도화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은퇴한 총서기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 이미 '사적 영역'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이다.
전임 총서기에 대한 '정치 대우'
중공중앙은 지난 1982년 2월 20일 <중공중앙의 원로 간부 은퇴 제도 건립에 관한 결정(中共中央關於建立老幹部退休制度的決定)>을 반포했다. 결정문에는 "원로 간부는 은퇴 이후 반드시 아주 좋은 안배로 보살핌을 받아야 하며 기본적으로 정치 대우는 불변하고 생활대우 또한 좋아야 한다. 아울러 그들의 역할이 아주 잘 발휘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 대우란 '문건 열독(閱讀)'을 포함하여 '중요 보고 청취', '중요 회의와 중요 정치 활동의 참가'를 말한다.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濤)를 포함하여 퇴임한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9월 초 천안문 망루에 올라 열병식을 참관한 것은 바로 이러한 '중요 회의와 중요 정치 활동'으로 볼 수 있다.
전직 지도자가 국가 중요 행사에 귀빈으로 참석하는 것은 그리 큰일은 아니다. 한국도 국가 중요 행사에 전직 대통령이 참석하는 관계가 이미 일반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여타 국가의 지도자와는 그 정치적 위상이 다르다. 중국에서 총서기는 국가와 사회를 압도하는 당국가 체제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후진타오가 푸젠 성 우이산을 방문했을 때 푸젠 성 서기 여우취안이 함께 한 것은 그가 비록 개인적인 차원에서 지역을 방문한 전직 총서기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동행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의 당국가 체제 특성상 지방 당위원회 서기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움직이는 일을 결코 없다. '정치 규율(政治規矩)'상 반드시 중공중앙 판공청의 지시에 따르거나 혹은 사전 보고 후 승인을 받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중국 정치 특성상 현 총서기는 전 총서기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유지를 승계하거나 계승하는 선에서 자신의 정책을 펼쳐야 하는 오랜 관행이 존재한다. 따라서 전직 총서기의 행위는 그 자체로 관행화된 제도의 틀 내에서 현 총서기의 활동에 영향을 준다고 볼 수 있다. 정책의 지속성을 담보하고, 이전 총서기 재임 시절 추진했던 정책을 쉽게 수정하거나 뒤집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후계 구도의 승계 과정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후진타오 시기 후계 구도로 마련된 후춘화(胡春華)나 순정차이(孫政才)에 대한 승계 정치의 지속성이 크게 훼손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구이저우 성(貴州省) 서기로 임명된 시진핑의 측근으로 불리는 천민얼(陳敏爾)에 대해서 후춘화나 순정차이 승계 구도를 시진핑을 흔들려는 시도로 분석하는 것은 매우 박약한 논리이다. 중국공산당이 오랜 기간 견지해 온 이른바 관행화된 '정치 규율(政治規矩)'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진핑이 권력 강화와 독점을 통해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해오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임 총서기가 정해 놓은 후계 구도의 큰 틀을 완전히 뒤집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견해도 존재한다. 시진핑이 강력한 자신의 힘을 바탕으로 전직 총서기들이 정해놓은 것을 뒤집을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다. 예컨대 후진타오의 핵심 측근이던 링지화(令計劃)를 잡아들이거나 장쩌민과 가까운 다수의 당, 정, 군 지도자들을 단죄하는 일이다. 전임 총서기들이 이들을 매개로 현실 정치에 개입해 들어가는 통로를 제거한다는 점에서 전임 총서기들이 촘촘히 짜 놓은 판을 흔들고 있고 이는 현 총서기와 전임 총서기의 싸움이라는 견해이다.
심지어 공식 문건을 통해서 전임 총서기의 현실 정치를 강도 높게 비판한 사례도 있다. 예컨대 올 8월 당 중앙은 "은퇴 후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중대 문제에 대해서 여전히 관심을 끊지 않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는 은퇴 간부들이 지나치게 일상 업무에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으로 외부에서는 전임 총서기에 대한 견제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총서기를 특정해서 비판의 날을 세운 것은 아니고 은퇴 간부들에 대한 일종의 현실 정치 개입을 자제하라는 메시지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중국은 이제 퇴임한 전직 최고 권력자가 두 명이나 존재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들 퇴임 최고 권력자들이 어떠한 지위를 가지고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분명한 기준을 정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전직 최고 권력자에 대한 새로운 '정치 규율'을 만들어내는 노력은 세력 싸움이라는 점에서 쉽지 않은 과제임은 분명하다. 시진핑이 이 과제를 어떻게 풀어 갈 것인지를 지켜보면 중국 정치를 보는 재미도 더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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