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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해석 독점하는 中 공산당, 한국은?

[양갑용의 중국 정치 속살 읽기] 중국공산당의 역사 해석권

중국 사회가 다원화되고 전문화되는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는 여전히 정치가 역사를 압도한다. 모든 역사가 중국공산당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어지는 것이다. 그 해석은 정치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최고의 권위를 갖게 되고, 여타 다른 해석과 양립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11월 20일 인민대회당에서는 후야오방 탄생 100주년 좌담회가 성대하고 엄중하게 진행되었다. 근래 보기 드물게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이 모두 참가했으며 중공중앙문헌편집위원회가 편집한 <후야오방문선(胡耀邦文选)> 또한 좌담회를 계기로 전국에서 발행되기 시작했다. 중국공산당에 의해 후야오방이 새롭게 조명되는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시진핑은 좌담회 모두 발언에서 "일체의 위대한 성취는 모두 계속해서 분투하고 탐색한 결과이다. 일체의 위대한 사업은 모두 선대의 유업을 계승 발전시키고 계속해서 앞으로 전진해 나가야 한다. 우리는 한 마음으로 단결하고 단호하게 밀고나가 시대에 부끄럽지 않고, 인민에 부끄럽지 않고 선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새로운 업적을 창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노 선배 혁명가들을 최고로 좋게 기념하는 것이다"라고 하여 후야오방을 노 선배 혁명가로서 기념해 나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특히 시진핑은 후야오방의 혁명, 건설, 개혁에서의 탁월한 공헌을 평가하고 "오랜 기간 시련을 겪은 공산주의 전사이며 위대한 무산 계급 혁명가, 정치가, 군의 걸출한 정치 공작자, 장기간 당의 중요 영도 직무를 맡은 탁월한 영도자이며 중화 민족의 독립과 해방,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탐색과 창조를 위해 불후의 공훈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후야오방을 역사의 전면에 부활시켜 국가 영도자 반열에 올려놓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10년 전 후진타오가 조심스럽게 물꼬를 트고 시진핑이 확실하게 밀어붙인 결과 후야오방은 다시 중국의 위대한 영도자로 부활하고 있다.

후야오방 문선(文選)의 발간

후야오방을 부활시키는데 있어서 '문선(文選)'의 발간은 화룡점정과도 같다. 중국에서 '문선'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문선(文選)>이란 최고 규격을 대표하는 영도자 저작을 말한다. 최고 규격이란 문선 편집을 중앙문헌편집위원회가 책임지고 진행한다는 것이다. '문선' 발간에 중국공산당 중앙문헌연구실이 깊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에서 중국공산당의 후야오방에 대한 전면적이고 새로운 평가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중국에서 최고 규격을 갖춘 영도자들의 저작은 <선집(選集)>이나 <문선(文選)>이라는 이름으로 출판, 발행되었다. <마오쩌둥선집(毛泽东选集)>, <저우언라이선집(周恩来选集)>, <류샤오치선집(刘少奇选集)>, <주더선집(朱德选集)>, <런비스(任弼时选集)>, <덩샤오핑문선(邓小平文选)>, <예젠잉선집(叶剑英选集)>, <장쩌민문선(江泽民文选)> 등이다.

이번에 발행된 <후야오방 문선>은 <장쩌민 문선> 이후 9년 만에 중국공산당이 공식적으로 발간한 영도자 저작이다. 중국공산당이 후야오방을 새롭게 해석해서 그 역사적 지위를 분명히 하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공산당이 역사적 지위를 부여하고, 역사적 평가를 하기 전에는 후야오방은 그저 잊혀져가는 불운의 지도자였을 뿐이다.

사실 후야오방은 개혁 개방 정책은 물론 덩샤오핑과도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역사적 인물이다. 중앙당교 교장 재임 시 <이론동태(理论动态)>를 창간했으며, 1978년 5월 10일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표준이다(实践是检验真理的唯一标准)'라는 글과 '뒤바뀐 간부 노선을 다시 뒤바꾸자(把颠倒的干部路线再颠倒过来)'라는 글 등을 발표하며 개혁 개방에 나서려는 사람들에게 문화 혁명으로 드리워진 정신적, 조직적 멍에를 타파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이론을 체계화했다는 점에서 개혁 개방에 필요한 사상 해방의 이론적 틀을 제시한 정치가였다.

그러나 후야오방 사망 이후 천안문 사건이 발발함으로써 중국에서 후야오방에 대한 평가는 일종의 금기의 영역이 되었으며, 그에 대한 평가 또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금기시되던 주제에 대해 이번 중국공산당의 좌담회를 계기로 해석과 평가의 기본 틀이 만들어졌다.

역사에 대한 모든 해석권 갖고 있는 중국공산당

중국에서는 이처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역사적 사안에 대한 공식적인 평가와 해석의 권한이 중국공산당으로부터 나온다. 대표적으로 1981년 6월 27일 개최된 중국공산당 제11기 6중전회에서 통과된 '건국 이래 당의 약간의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關於建國以來黨的若干歷史問題的決議, 역사문제결의)'가 있다.

1976년 9월 9일 마오쩌둥 사망 이후 중국에서는 일련의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 사인방(四人帮)이 체포되고, 문화 대혁명이 종료되었다. 덩샤오핑이 복권되었고 화궈펑(华国锋)은 '양개범시(两个凡是)'를 제기했다. 전 사회적으로 '진리표준(真理标准) 논쟁'이 벌어졌으며 평반(平反)이 이루어지고 11기 3중전회가 개최되는 등 격렬한 변화의 시기였다. 이러한 격렬한 변화는 중국과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의 사상적 혼란을 야기했다. 특히 문화 대혁명과 마오쩌둥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충돌했다.

이렇게 다양한 해석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중국공산당이 역사 해석의 지침으로 내세운 것이 바로 '역사문제결의'였다. '역사문제결의'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일련의 중대한 역사 사건 특히 문화 대혁명에 대한 중국의 공식적인 입장과 마오쩌둥의 역사 지위에 대한 관방의 기본적인 평가를 정리한 것이다. '역사문제결의'는 1945년 통과된 '약간의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关于若干历史问题的决议)'와 마찬가지로, 중국공산당 성립 이후 가장 중요하고 가장 권위를 갖는 문건 가운데 하나로 중국 역사 경험에 대한 당의 전면적인 입장 정리이며 미래 발전에 이념의 틀을 제공하였다.

당시 '역사문제결의'는 문화 대혁명과 마오쩌둥을 "문화 대혁명은 영도자(마오쩌둥)의 착오에 의한 운동이었으며 반동 집단이 이를 이용하여 당과 국가 그리고 각 민족 인민에게 엄중한 재난을 불러 온 내란이다. 아울러 마오쩌둥은 전체적으로 오랜 기간 좌경적 엄중한 착오의 주요 책임자이다"라고 문화 혁명의 좌경적 오류와 마오 개인의 잘못을 분명하게 정리했다. 마오쩌둥 개인에 대해서도 결의는 "마오쩌둥은 위대한 마르크스주의자이며 위대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이며 전략가이고 이론가이다. 비록 말년에 엄중한 착오를 범했으나 일생을 통해서 보면 공적이 첫 번째요, 착오는 두 번째다"라고 하여 마오쩌둥에 대한 관방의 평가를 공식화했다. '역사문제결의'에서 나온 문화 혁명과 마오쩌둥의 평가는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관방뿐만 아니라 민간, 학술계에서도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공산당의 역사 해석과 평가의 독점적 지위는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이렇게 단계마다 필요한 역사 해석을 내 놓았고, 모든 역사가 그들의 해석에 의해 정리되었다. 이번 후야오방(胡耀邦)에 대한 재평가 역시 중국공산당이 개혁 개방 이후부터 해석의 여지가 남아있던 사안에 대해 새롭고 분명한 해석을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후야오방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프레임을 중국공산당이 제시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결국 역사는 해석의 몫이고 그 해석은 중국공산당이 결정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특정 사건에 대해서 중국공산당이 확실하고 분명하게 어떤 입장을 내놓기 전에는 그 어떠한 해석과 평가도 사실상 의미 없다는 사실을 이번 후야오방 재평가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역사적 사건의 당사자인 동시에 역사 해석과 평가의 주체를 중국공산당이 모두 독점하는 상황에서 역사는 중국공산당의 의도대로 각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동란'으로 정리되어 있는 톈안먼(천안문) 사건도 후야오방의 재평가와 마찬가지로 언젠가 중국공산당의 시각과 관점이 변화하면 얼마든지 재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정 역사 사건에 대해서 중국공산당이 해석과 평가의 전 과정을 독점하는 상황이지만 제2, 제3의 후야오방도 나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이런 측면에서 자오즈양(趙紫陽) 또한 예외일 수 없다는 기대감을 갖게 하고 천안문 사건의 재해석과 재평가 또한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의 과도한 역사 독점이 역사의 해석과 평가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침해하고 제한하는 것은 분명하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중국공산당의 이러한 해석과 평가의 지위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중국 사회의 분위기다. 당장 지금부터 시진핑의 발언이 후야오방에 대한 평가의 전부로 회자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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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갑용

성균관대학교 성균중국연구소 연구실장. 중국의 정치 엘리트 및 간부 제도와 중국공산당 집권 내구성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 푸단 대학교 국제관계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국민대학교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연구소 연구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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