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삼성에 좋은 것은 삼성에만 좋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삼성에 좋은 것은 삼성에만 좋다

[프레시안 books] <마르크스와 세계 경제>

삼성에 좋은 것은 대한민국에 좋은 것인가?

세계 경제와 관련한 강의를 할 때마다 'globalization'라는 단어를 이해시키는 일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제일 먼저 넘어야할 산은 이 단어의 번역이다. 이 단어는 '지구화', '전 지구화', '세계화' 등으로 번역되며 사람마다 다른 번역어를 사용한다. 서로 다른 번역어를 사용해서 혼란이 일자 혹자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고 쓰며 심지어 북한에서는 '일체화'라고 한다. 용어에 대한 이해가 다르지만 강의 시간에는 사람들에게 여러 이유를 들며 세계화라는 번역어를 사용하겠다고 말하며 한 고비를 넘긴다.

그러고 나면 두 번째 넘어야 할 산이 있으니 이 단어의 말뜻이다. 세계화라는 말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공간 이외의 지역, 특히 자신의 나라 이외의 지역에 대해서는 시야가 매우 좁다. 세계화가 매우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세계화라는 단어의 말뜻을 이해시키기 위해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낮과 밤은 공존하나요?" 99.9%의 사람들은 이 질문을 듣고 곧바로 "아니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덧붙여 말하기를 "제가 사는 곳에서는 그런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는데요!"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럴 때는 잠깐의 뜸을 들인 후에 빠르게 핵심을 찔러야 한다. "당연히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는 낮과 밤은 공존할 수 없지요. 그렇지만 한국과 미국을 생각해 본다면 낮과 밤은 공존하지 않나요?" 내가 강의에서 사용하는 이 질문은 세계화의 말뜻을 이해하는데 아주 유용하다. 세계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국적' 시야와 사고에서 벗어나 '세계적' 혹은 '초국적' 시야와 사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산을 넘고 나면 더 험한 산이 기다리고 있으니 세계화의 효과에 대한 편향된 사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교우위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꽉 차 있어서 세계화는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두 나라의 무역의 효과를 설명하는 이 개념은 초국적 금융, 초국적 기업 등의 개념에도 그대로 연결되어 인식된다. 비교우위라는 칩이 머릿속에 들어가 있어 세계화의 효과에 대한 인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칩을 제거할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에 칩의 작동을 교란시키기 위해 "삼성에게 좋은 것은 대한민국에도 좋은 것인가요?"라고 묻는다. 물론 머릿속에 박힌 비교우위의 칩에서는 대답으로 "네"를 선택한다. 삼성이 성장해야 대한민국 경제도 좋아질 것이니 당연한 대답이다. 그렇지만 나의 대답은 아주 다르다. "삼성에 좋은 것은 삼성에만 좋은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세계 경제론의 공백 메우기

강의 이야기를 길게 한 이유는 오늘날 우리가 세계 경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 경제를 바라보는 기본 관점의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용어의 혼란, 공간적 제약, 비교우위의 신화로 무장된 사람들에게 세계 경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와 관련한 이론 연구나 실증 분석도 많은 제약 요인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일국을 대상으로 한 분석은 자료나 분석 모형이 상당히 많이 축적되어 있어 의미 있는 연구 성과를 내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그렇지만 세계 경제 자체를 분석하려면 자료의 제약은 물론이고 분석 모형을 정립하는 것도 난제다.

마르크스주의도 세계 경제를 분석하는데 열중했지만 이 난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다.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의 유려한 분석에서 볼 수 있듯이 당대의 세계 경제에 관심이 많았고 세계 대공황에 대한 기대를 수차례 드러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이후에도 제2인터내셔널 이론가들, 카를 카우츠키, 루돌프 힐퍼딩, 로자 룩셈부르크뿐만 아니라 블라디미르 레닌, 레온 트로츠키, 니콜라이 부하린도 당대의 걸출한 연구들을 내놓았다.

어디 그 뿐인가? 20세기 들어서도 폴 바란과 폴 스위지의 <독점 자본>, 미셸 아글리에타의 <조절 이론>, 사미르 아민의 <세계적 규모의 자본 축적>, 에르네스트 만델의 <후기 자본주의> 등이 출판되었다. 그리고 21세기 들어서도 로버트 브레너의 <글로벌 격변의 경제학>, 조반니 아리기의 <장기 20세기>, 데이비드 하비의 <신제국주의>,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제국> 등 세계 경제 분석은 차고도 넘친다!

그렇지만 이들 연구들은 마르크스주의 세계 경제 분석의 공백을 완전히 메우지는 못했다. 특히 마르크스의 '플랜' 후반부에 포함되어 있는 세계 시장과 공황에 대한 분석은 여전히 마르크스주의 세계 경제 분석에서 공백으로 남아 있다. 마르크스 자신도 '경제학 비판 체계 플랜'(자본-토지 소유-임노동-국가-외국 무역-세계 시장과 공황)을 통해 자기 연구의 최종 목적지는 세계 시장과 공황임을 분명하게 밝혔지만 이 '플랜'의 후반부를 완결 짓지 못했다.

▲ <마르크스와 세계 경제>(정성진 지음, 책갈피 펴냄). ⓒ책갈피
이와 관련해 <마르크스와 세계 경제>(책갈피 펴냄)는 '경제학 비판 체계 플랜'의 후반부 세계 시장과 공황의 관점에서 세계 경제를 분석함으로써 그 공백을 메우려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외국 책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국내의 대표적인 마르크스 경제학 연구자인 정성진의 연구 성과를 모아두었다는 점에서 한국 마르크스주의 연구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서장을 제외하고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과 제2장은 마르크스의 '후반 체계'에 대한 이론 연구, 제3~5장은 세계적 양극화, 미국 제국주의의 모순, 유로존 위기 등 현실 세계 경제에 대한 분석, 제6장과 제7장은 대안 세계화 논의를 정리하고 있다. 비록 그동안에 쓴 논문들을 정리해 모아둔 것이지만, 이론, 분석, 대안으로 구성된 체계 안에 배치된 글들을 읽으면 세계 경제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분석의 성과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이 기존의 분석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우선 이 책은 자본 축적과 계급 구조의 상호 작용의 관점에서 세계화 과정에서의 자본 축적 체제의 모순과 계급 구조의 변동 과정을 연계해 분석한다. 말이 어려워 보이지만 세계화로 상징되는 오늘날 세계 경제의 변화는 계급 분석을 제쳐두고 자본 운동만 분석하거나 자본 운동을 제쳐두고 계급 분석에만 치우쳐서는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둘을 종합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이 책은 세계화와 관련해 독특한 시각을 전개한다. 이 책에 따르면 세계화는 "자본 축적의 모순과 위기의 전 지구화이자 자본과 노동의 대립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적 계급 구조와 계급 투쟁의 전 지구화일 뿐이라는 것, 즉 세계화란 자본의 내재적 경향일 뿐 아니라 계급 구조와 국가를 포함한 자본 축적 체제 자체의 필수적 구성 요소이고 전제"다. 그러면서 이 책은 자본주의 체제와 자본 운동 그 자체는 처음부터 오늘날까지 글로벌 축적 체제 혹은 세계 자본 축적 체제였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기존의 세계화에 대한 이해방식과는 다르다. 기존의 논의들은 세계화를 일국적 축적 체제에서 세계적 축적 체제로의 이행으로 해명한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19세기말~20세기 초의 제1차 세계화, 1929년 세계 대공황~1960년대의 일국 자본주의, 1970년대 이후 제2차 세계화라는 도식을 설정하고 오늘날의 세계화는 일국 축적 체제의 시기에서 벗어난 새로운 단계라고 해명한다. 이와 달리 이 책은 자본주의는 늘 세계 시장을 전제로 한다는 마르크스의 테제에 따라 자본주의에는 일국적 축적 체제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며 오직 세계적 축적 체제로만 존재한다고 본다.

다른 한편 이 책은 세계 경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국적 관점에서 벗어나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과 종속 이론의 편향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독점'과 '종속'의 문제 설정(국가 독점 자본주의론 vs. 종속 이론) 또는 '일국 자본주의' vs. '일국 사회주의'의 문제 설정에서 탈각해 전개되고 있는 논쟁들에 대응하기 위해 마르크스의 국제 가치론과 세계 시장 공황론을 중심으로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 후반 체계를 구체화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 작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1) 마르크스의 국제 가치론의 확장과 세계적 양극화의 해명, 2) 마르크스 경제학 비판 플랜 후반 체계에 의거한 제국주의론의 재구성, 3) 마르크스 공황론의 글로벌 자본주의 위기론으로의 확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실의 세계 경제 분석과 관련해서 이 책은 세계화는 일반적, 절대적 법칙으로서 부익부 빈익빈 경향의 전 지구적 관철로서 세계적 양극화를 초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밀물이 오면 모든 배가 떠오른다는 세계화 찬성론자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며 세계화의 장밋빛 환상을 깨는 것이다.

이 책은 최근에 논쟁을 일으켰던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 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의 이론의 재정립을 시도하고 있다. 또 이윤율 장기 저하의 관점에서 2008년 미국발 세계 대공황의 전개 과정에서 나타난 '유로존' 위기를 실증 분석하며 마르크스주의 세계 공황론의 현실 적용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대안 세계화 운동의 이념적 지형을 유형화해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대안 세계화 운동의 이념은 지역 생태주의, 제3세계 민족주의, 글로벌 케인스주의, 자율주의, 사회운동 노조주의, 사회주의이며 각 이념의 운동 주체, 방향, 조직 및 전략 주요 단체를 분석하고 마르크스주의와의 비교를 통해 대안 세계화 운동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이 책은 기존의 분석과는 달리 세계 시장의 실체를 인정하며 마르크스의 국제 가치론과 세계 시장 공황론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의 모순을 파헤치고 있다. 또 세계적인 자본 축적뿐만 아니라 세계적 규모의 계급 투쟁의 관점을 종합함으로써 세계 경제에서 벌어지는 자본의 운동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대안 운동의 전망을 포착하고 있다.

21세기 마르크스주의 세계 경제론의 르네상스를 위하여

나는 10년 이상 세계 경제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세계 경제를 분석하는데 필요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적 근거를 찾으려 분투했고 마르크스의 후반부 체계에 대한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나의 게으름을 질타하고 있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마르크스 후반 체계의 공백을 메우는 연구는 세계 경제를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분석한 내용은 마르크스주의 세계 경제론의 출발점일 뿐이다.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 체계 플랜'의 후반부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으며 세계 경제의 여러 현상을 규명하고 있지만, 앞으로 더 풍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전면으로 다루고 있지 않은 세계 경제에 대한 분석도 향후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중요한 연구는 초국적 자본의 운동에 대한 분석이다. 초국적 자본 운동의 분석은 세계 시장을 전제한 자본 운동의 양태와 가치 증식 및 가치 이전의 메커니즘을 더 풍부하게 분석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예를 들어 초국적 기업이 세계적 차원에서 조직하는 가치 증식 과정의 새로운 형태로서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 및 글로벌 가치 사슬에 대한 해명이 중요하다. 또 초국적 금융 자본의 운동을 분석함으로서 생산과 금융의 연관, 금융 자립화 및 가공 자본의 확대 문제 등에 대한 연구도 반드시 필요하다.

또 마르크스의 세계 시장의 관점에서 한국 경제의 초국적화에 대한 분석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삼성에게 좋은 것은 대한민국에 좋은 것인가라는 질문에 마르크스주의 세계 경제론은 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내가 선언처럼 말했지만, 삼성에 좋은 것은 삼성에게만 좋다면 그 이유를 세계 시장의 관점에서 분석해야할 필요가 있다. 이는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의 관계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분석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이다.

물론 초국적 자본 운동에 대한 연구만으로 마르크스주의 세계 경제론을 완벽하게 구축해낸 것은 아닐 것이다. 또 몇몇 연구자의 노력만으로 마르크스주의 세계 경제 분석의 공백을 완전히 메꿀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의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21세기 마르크스주의 세계 경제론의 르네상스를 위해서는 여전히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국제 가치론과 세계 시장 공황론을 중심으로 한 이 책의 분석은 마르크스주의 세계 경제론의 르네상스의 훌륭한 출발점을 제공해 줄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