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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 실제 모델의 좌충우돌 파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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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 실제 모델의 좌충우돌 파업 이야기

[드라마 <송곳>에서 말하지 못한 이야기 ⑥]

파업 첫날부터 문제가 생겼다. 파업에 들어가기 전날, 사전회의에서 파업 일정을 논의했다. 파업한다고 집에서 노는 게 아니었다. 파업 기간은 대부분 조합원 교육으로 채워졌다. 여러 논의 끝에 파업 첫 시간은 '선동교육'을 하기로 했다. 선동교육은 가볍게 노동가요 알려주고 집회 때 함께 할 율동을 가르쳐주는 것으로 결정했다. 노조에 가입한지 채 몇 달도 안 된 조합원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자칫 노조가 이상한 조직으로 비춰질까 우려했지만 우려는 현실이 됐다. 첫 교육부터 잘못됐다.

전날 결정된 사항이니 알아서 잘 진행되겠다 싶었다. 김경욱 씨는 다른 일 때문에 교육장을 나와 있었다. 그런데 조합원 한 명이 김경욱 씨가 있는 곳으로 헐레벌떡 달려왔다. 첫 교육이 시작되자 마자였다.

"사무장님, 교육이 이상해요. 빨리 와보세요."

급히 교육장으로 달려갔다. 교육장에는 30대 후반 여성이 교육 강사로 와 있었다. 문제는 분위기였다. 선전교육을 시킨다면서 팔뚝질을 가르치면서 구호를 따라하도록 했다.

"전~~ 민중, 총~~ 단결로, 자본주의~~ 박살내자!!!"

내용도 내용이지만 목소리가 얼마나 비장하던지… 팔뚝질하는 주먹을 부르르 떨면서 운율에 맞춰 하늘로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이런 모습을 처음 보는 아주머니 조합원들은 겁에 질려 있거나 실망스런 표정을 짓고 억지로 따라하고 있었다.

'민중? 단결? 이게 대체 무슨 말이지? 저 사람은 누구야?'

조합원들은 자신의 목소리로 부당한 노동 조건을 개선하려고 파업에 참여했을 뿐이다. 자본주의를 박살내려고 파업한 게 아니었다. 그런 이들에게 ‘민중, 단결, 자본주의’ 이런 용어를 쓰는 모습에 김경욱 씨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곧바로 중앙노조 교선국장을 찾아가 따졌다. 교선국장은 김경욱 씨에게 사과했지만 이미 늦었다. 김경욱 씨는 이후 회의에서도 강하게 항의했다. 하지만 미래연대에서는 김경욱 씨 항의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되레 조합원을 강하게 키우기 위한 교육을 김경욱 씨 때문에 하지 못했다는 분위기였다.

ⓒJTBC

문제는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는 점이었다. 매일 이런 상황이 반복됐다. 다음날 파업 일정을 두고 몇 시간을 싸워야 했다. 김경욱 씨는 이들을 믿고 파업을 진행해야 하나 의구심이 생겼다.

파업이 힘든 게 아니라, 내부의 미래연대 활동가들, 그리고 중앙노조 간부들과 논쟁하는 게 더 힘들었다. 김경욱 씨가 '내일 이렇게 하자'고 하면 그것을 해야 하는 이유와 명분 등을 하나하나 설명하고 설득해야 했다. 교육내용이 결정되면 강사는 누구를 섭외해야 할지도 논의해야 했다. ‘부천의 어느 활동가가 좋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나오면 미래연대는 '그 사람보다는 이 사람이 낫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나중에 알게 됐다. 조직 이념을 조합원에게 설파하고 교화하기 위해 자기네 쪽 사람을 '굳이' 교육자로 섭외하려 했던 거였다. 그러니 끝까지 물고 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하지만 당장이 급했다. 이해는 뒤로 미뤄두고 매일매일 싸워나가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파업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교섭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애초 3일만 파업하기로 했는데, 보름 가까이 파업이 길어졌다. 조합원들이 힘들어졌다. 더는 못하겠다며 복귀하겠다고 지부장과 김경욱 씨를 압박했다. 파업이 길어지면 업무 복귀자가 늘어날 것 같았다. 파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파업 투쟁을 현장 투쟁으로 전환하고 대신 간부들은 매장 앞에서 천막농성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이를 조합원 찬반 투표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파업한 지 14일쯤 됐을 때였다.

하지만 이를 두고 미래연대가 문제제기를 했다. 파업 중단을 위한 조합원 찬반 투표는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에 좀 더 싸워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조합원이 다 떨어져 나가도 한 사람의 조합원이 남아 있다면 그의 의지를 묵살하거나 꺾어서는 안 된다. 싸우고자 하는 조합원 중심으로 가야 한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만의 논리였다. 미래연대에서 '지도'받은 파업 연대학생들도 가세했다. 김경욱 씨가 복도를 지나가는데 갑자기 학생 한 명이 와서는 '트로츠키가 후퇴하는 혁명에 대해 이야기했다'면서 비아냥거리는 듯 말했다. 가르치는 말투였다. 육사 출신인 김경욱 씨는 트로츠키가 누군지조차 몰랐기 때문에 뭐라 반박할 수도 없었다. 김경욱 씨는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기분이 몹시 상했다. 김경욱 씨가 교선부장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교선부장이 학생을 나무랐다.

김경욱 씨는 트로츠키를 언급하며 '후퇴하는 싸움'을 하고 있다고 자기를 비판하는 미래연대와는 생각이 달랐다.

'파업이 장기화돼서 결국, 조합원이 3명 남으면 그 3명만으로 회사와 싸워야 하나'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싸운다면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기기 위해서는 전략상 후퇴도 하고 전진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가 현장복귀를 결정한 이유였다. 김경욱 씨도 이것만은 물러설 수 없었다. 미래연대와 상당시간 싸운 끝에 조합원 찬반 투표를 진행했다. 찬반 투표 결과는 당연히 현장복귀였다.

미래연대가 불쾌해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미래연대와의 갈등은 그 뒤부터 본격화됐다.

이후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현장에 복귀한 뒤에도 교섭이 이뤄지지 않았다. 김경욱 씨는 답답한 상황이 반복되자 지부장에게 까르푸 계산 지점장을 만나자고 제안했다. 이 지점장은 다른 지점장과는 달리 직원들 사이에서 매우 존경받는 인물이었고 김경욱 씨와 지부장의 직속 상사이기도 했다. 김경욱 씨는 지부장과 함께 그를 모처에서 만났다.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심정이었다. 회사와 교섭하도록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자기가 힘은 없지만 애써보겠다고 했다. 그 정도 답변이라도 감지덕지했다.

▲ 김경욱 씨. ⓒ이랜드일반노조
물꼬가 트였다고 생각했다. 기쁜 마음에 이후 노조 쟁의대책위원회(이하 쟁대위) 회의에서 지점장을 만났고, 노력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쟁대위에는 까르푸 노조 위원장과 사무국장. 미래연대 활동가 2~3명, 중동지부장과 사무장, 연대학생 2~3명, 민주노총 부천지구협 활동가 1명 등 10여 명 정도가 들어갔다. 상당수가 미래연대 쪽이었다.

지점장을 만났다고 말하는 순간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알고 보니 김경욱 씨가 한 행동은 비밀 접촉 행위였다. 미래연대에서는 지부장과 사무장이 조합원과 상의 없이, 그리고 쟁대위 사전 승인 없이 사측 관리자를 만난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파업 중인 노조 간부가 몰래 사측 간부를 만날 경우, 모종의 거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금지하고 있다고 했다. 민주노조 원칙에 크게 위배된다고 덧붙였다.

그런 원칙이 있는지 김경욱 씨는 알지 못했다. 어떻게든 교섭을 시작해야 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노동부에 가서 집회를 하면서 '교섭 주선해달라'고 소리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원칙은 원칙이었다. 원칙과 규정을 어겼다는데 더 할 말이 없었다. 다시는 안 그러기로 약속 했다. 하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나를 믿지 못하는 건가'

문제는 이후였다. 김경욱 씨가 만난 지점장이 노력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지점장에게 전화가 왔다. '그냥 밥이나 한 번 먹자'는 전화였다. 지부장과 상의했다. 협상하는 것도 아니고 1년 전 직장 상사와 식사하는 것인데 무슨 일이 있겠나 싶었다. 사실 절박한 심정도 있었다. 무슨 말을 할까 기대하며 약속장소에 갔다. 미래연대에서 이를 두고 또 지적을 하면 그냥 욕먹고 말자는 생각이었다. 여전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김경욱 등을 떠밀었다. 김경욱 씨는 회사 회유에 넘어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지점장을 만났다. 안양 어딘가에서 밥을 먹고 맥주 한 잔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였다. 누군가 가게 문을 열고 쓰윽 들어왔다. 까르푸 인사총괄 상무였다. 점장이 데려온 거였다. 비공식적으로 만나 대화를 해보라며 데려왔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사측 교섭대표를 만났다. 하지만 영양가 있는 이야기는 없었다. 서로 '간'만 보다 헤어졌다. 별 소득은 없었지만 알려야 된다고 생각했다. 사측 인사총괄 임원을 만났다고 이후 쟁의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이야기했다. 숨길 이유가 없었다.

"점장을 만나러 갔는데, 갑자기 사측 인사총괄 임원이 들어왔다. 본의 아니게 사측 대표를 만나 죄송하다."

순간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사측 교섭대표를 만나고 왔다는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인민재판'이 진행됐다.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신랄한 공격이 들어왔다.

"우리는 지도부를 믿고 투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난번에 약속을 해놓고 또 개별 접촉을 했다. 이 싸움이 앞으로 어떻게 갈지 모르겠다."

미래연대 사무장이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반박하지 못했다. 미리 말하지 않고 만난 것은 잘못된 행동이었다고 생각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비밀리에 사측 사람을 만난 게 아닌가. 신랄한 비판을 한참 들었다. 그래도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미래연대 사무장은 이런 사실을 조합원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열을 올렸다. 결국, 김경욱 씨가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어찌되었건 개별 접촉한 것은 사실이니 그 책임을 지겠다. 지금이라도 사무장에서 물러나라면 나겠지만 아직 파업 중이니 이 파업을 끝내고 물러나겠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조합원들에게 공개하는 것은 파업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파업이 끝날 때까지 조합원에게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건에 대해서는 여기서 충분히 비판 받고 지적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분위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미래연대 활동가들은 이 사실을 조합원들에게도 알려야 한다고 고집했다. 이런 중대한 사건을 조합원에게 숨기는 것 자체가 어용이라며 조합원 전원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김경욱 씨는 재차 이 건 관련 내용을 공개하는 게 파업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니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많은 공방 끝에 비공개로 결정이 났다.

그런데 그 날 저녁, 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지부장이었다. 노조 홈페이지를 보라고 했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급히 컴퓨터를 켜고 노조 홈피를 들어갔다. 그런데 거기에는 기가 막히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 이 기획은 현재 미디어 다음 '스토리펀딩'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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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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