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 높은 국가보안법이나 끔찍한 살인도 아니고, 도로교통법과 집시법위반이라는 혐의 내용으로 당국의 체포를 피해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조계사로 피신했다. 이후 조계사에서 전개된 일련의 사태는 이 시대의 불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불자들에게 던짐과 동시에 과학문명의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일반사회에 던지고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현재 경찰이 조계사를 철통같이 에워싸고 있으며, 연일 보수 단체가 조계사 주변에서 체포를 요구하고 경찰 역시 조만간 체포 영장을 집행하여 강제 구인할 것을 공언하고 있다. 이는 몇 백명의 아이들이 수장되어도 신속한 대응을 보여주지 못한 현 정부가 이렇게까지 움직인다는 것은 결국 다른 의도가 있음을 암시한다.
아쉽게도 이런 정부 의도에 순응하듯 조계사 신도들은 두 차례에 걸쳐 한 위원장을 내쫓으려는 시도를 했고, 또한 양측의 소통과 조율을 외치는 종단의 화쟁위원회도 별다른 역할도 하지 못한 채 이제는 빨리 나가라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경찰도 이런 조계사 측과 발맞추어 곧 체포영장을 집행할 태세다.
현 대치상황에서 불자라면, 피신해 온 이의 사회법 위반 여부나 시시비비보다는, 동체대비와 대자대비라는 부처님 가르침의 맥락으로 현 사태를 바라보는 것은 결코 낯설지 않다. 초기경전에서도 위기나 고통을 피해 피신해 들어온 존재에 대해서는 그 무엇을 묻기 이전에 따뜻하게 품어 보듬으면서 위로해 주고 보살피는 모습이 강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불문의 대자대비는 곤경에 빠져 고통으로부터 피신하고자 하는 생명과 존재를 결코 내치지 않는다.
이렇듯 사회법 상 죄인이라 해도 보듬어 재활할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하는 불교이기에 부처님의 말씀을 널리 전하고 실천해야 할 조계사에서라면, 보다 확실한 입장으로 피신해 온 힘없는 존재를 보듬어야 한다. 그렇기에 현 상황에서 기한을 설정해서 무조건 나가야 한다고 말하기 보다는 상황이 개선될 때까지 기다려 스스로 자연스럽게 나가게 해야 한다.
더욱이 현재 피신해 있는 이는 노동자 농민을 위해 시위하던 이다. 양극화와 비정규직 양산의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탐욕에 맞서 싸워온 노동자와 농민을 대표하고 있다. 인간의 탐욕에 대한 경계와 더불어 당시의 엄격한 신분제도마저 부정하며 평등하고 따뜻한 대자대비의 가르침을 펼친 부처님이 그에게 무어라 말할 것인지는 분명하다. 중생의 고통을 직시하며 함께 하는 대승불교의 수행은 언제나 삶의 현장 속 실천을 중요시하며, 화엄경 보원행원품에서마저 모든 중생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는 삶의 자세를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수행을 표방하는 종단의 최종적인 회향이어야 한다.
조계종단도 신자유주의의 탐욕과 이를 실천하는 정치권력에 저항하다가 부처님의 대자대비라는 품으로 몸을 피한 존재에 대하여 이를 보듬어 품고서 그를 쫓는 측과의 소통과 상호 조율을 통해 보다 바람직한 상황으로 마무리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 신자유주의와 과학 근대문명에 대하여 종교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일 수도 있다. 이를 위해 과거 조계종 32대 총무원장 지관 스님 때인 2008년, 114일간 조계사에서 피신한 채 농성한 광우병국민대책회의의 박원석 실장(당시)의 경우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당시 총무원장이었던 지관스님은 정치권력에 당당하게 맞서면서 피신해 온 수배자를 품고서 오히려 수행 정진하도록 배려하고, 심지어 대웅전에서 삼귀오계를 받게 했다. 당시 신도회 누구도 평안을 찾아 부처님 품안으로 들어온 수배자를 내치자고 한 이는 없었다. 그런 지관스님과 신도들의 모습이야말로 지극히 여법한 것임을 그때나 지금이나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현 조계사 상황에서 남겨진 것은 동체대비라는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조계사의 단호한 입장과 더불어 대자대비의 가르침에 대한 자승 총무원장 스님의 실천문제다. 한국불교의 대표성을 지닌 조계사 경내로 들어오려는 정부와 경찰에 대하여 부처님 가르침에 충실한 조계사 사부대중만이 의연하고도 당당한 종단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지관스님 당시와 비교해서 요즘 무엇 때문에 조계사 신도들로 하여금 한상균 위원장을 내쫓으려는 시도를 하게 한 것인지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부처님 가르침에 전혀 적합한 행동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것은 종단의 정체성 문제이기도 하다. 현재 조계사 상황은 종교의 자비심과 포용력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실현하고 보여줄 수 있는 계기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내부 갈등이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불교야말로 중생에 대한 대자대비를 통해 소외되어 힘들고 지친 이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종교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지관 전 총무원장 스님이 분명히 보여준 조계사의 전통을 이어 중생 구제의 보살행이 무엇인지 보여주자. 그런 모습이야말로 불자나 이웃 종교인에게나 더 나아가 일반사회인들에게 불교의 가르침이란 무엇인지 말없이 각인시킬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 우희종 교수는 서울대학교 불이회 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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