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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시장 '청년 배당'은 '우파 코스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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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재명 시장 '청년 배당'은 '우파 코스프레'?

[기본 소득 뜯어보기 ①] 기본 소득, 이념 족보만 따지지 마라!

핀란드 정부가 모든 성인 국민들에게 매달 800유로(약 101만4000원)를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조건 없이 돈을 나눠주는, '기본 소득(Basic Income)' 정책이다.

낯선 풍경이 아니다. 스위스, 네덜란드 등도 기본 소득 도입을 검토 중이다. 몽골과 브라질 역시 기본 소득 도입을 준비 중이다. 브라질 일부 지역에서 이미 기본 소득이 도입됐다. 이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논의가 진행됐다. 하시모토 도루 일본 오사카 시장 역시 기본 소득 도입을 주장했다.

전부 최근 상황이다. 그런데 특징이 있다. 앞서 열거한 나라 가운데 브라질을 제외하면, 대부분 우파 세력이 기본 소득 도입을 주도했다. 핀란드의 현 정부 역시 중도 우파다. 하시모토 도루 시장은 노골적인 극우파다. 독일에서 기본 소득 논의에 불을 지핀 사람도 시장주의자다. 유통 재벌 괴츠 베르너가 지난 2005년부터 언론을 통해 기본 소득 도입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왜 우파가 기본 소득을 주장할까?


왜 우파 시장주의자들이 기본 소득 도입을 주장할까. 실제로 진보 성향 사회복지 연구자 중에는 기본 소득 도입을 못마땅해 하는 이들이 꽤 있다.

대체로 이런 논리다. 신자유주의가 득세한 이후, 다양한 사회 서비스 영역이 시장으로 넘어갔다. 보육, 의료, 간병, 노인 수발 등이 그렇다. 한국에선 아예 처음부터 시장 영역이었다. 이 부분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정부가 정치적 책임을 지는 구조를 강화해야 한다. 그런데 기본 소득만 강조하면 이런 대목이 잘 부각되지 않는다. '사회 서비스의 시장화'를 오히려 부추길 수 있다.

요컨대 '정부는 공공 서비스에서 손을 떼겠다. 대신 돈을 줄 테니 각자 알아서 해결하라'라는 논리라는 게다. 우파 진영에서 나오는 기본 소득 도입 주장은 종종 이런 식이다. 진보 지식인이 갖는 거부감을 이해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기본 소득이 정치 쟁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기초 연금, 이재명 성남시장의 청년 배당, 박원순 서울시장의 청년 수당 등이다. 이 가운데 이재명 시장의 청년 배당 정책이 기본 소득 개념에 가장 가깝다. 나이 외엔 조건을 따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보편주의). '좌파'로 공격받는 이 시장이, 지금 우파 흉내를 내는 걸까. 아니면 기본 소득에 녹아 있는 우파적 의도를 알아채지 못한 걸까.

▲ 이재명 성남시장. ⓒ프레시안(최형락)

녹색당이 주도한 기본 소득

그건 아닌 듯하다. 기본 소득은 엄격하게 좌파-우파를 가르기 힘든 쟁점이다. 앞서 우파 정치인이 추진하고 좌파 연구자가 비판한다고 했는데, 그 반대 조합도 흔하다. 좌파 지지자, 우파 반대자가 있다. 우파의 반대 논리는 익숙하다. 재정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게다. 이재명, 박원순 시장을 향한 보수 진영의 공격이 딱 이렇다.

진보 진영의 기본 소득에 대한 입장은 조금 복잡하다. 앞서 언급한 핀란드 사례로 다시 돌아가자.

핀란드에서 기본 소득 도입 논의를 주도한 건 핀란드 녹색당이다. 지난 2001년부터 5년간 핀란드 녹색당 대표를 지냈던 오스모 소이닌바라가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핀란드 영자 신문 <헬싱키 타임스>는 그를 "기본 소득 구상의 챔피언(the main champion of the idea of basic income)"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지난 2000년 타르야 할로넨 대통령이 이끄는 좌파 연정에서 사회건강부 장관을 지냈다.

오스모 소이닌바라의 적극적인 활동 덕분에 핀란드에서 기본 소득에 대한 지지도는 높은 편이다. 지난 2013년 4월 기준으로 핀란드인 54%가 기본 소득 도입에 찬성했다. 핀란드 녹색당에 이어 좌파연합도 기본 소득을 지지했다.

전통적인 복지 국가의 왼쪽과 오른쪽

핀란드 정치 지형도에는 기본 소득에 대한 여러 입장이 잘 반영돼 있다.

사회민주당은 기본 소득을 강력히 반대한다. 이들이 '복지 국가 핀란드'를 건설한 주역이다. 1966년 총선에서 이긴 뒤, 핀란드 정치의 중심에 있었다. 1995년부터 2007년까지 집권 여당이었다. (사회민주주의 정치인으로 유명한 타르야 할로넨 전 대통령은 2000년부터 2012년까지 재임했다. 그의 첫 번째 임기는 사회민주당 소속, 두 번째 임기는 무소속이었다.) 사회민주당이 기본 소득을 반대하는 이유는, 앞서 소개한 사회복지 연구자들의 논리대로다. 정부가 책임져야 할 사회 서비스를 시장에 넘길 위험이 있다는 것.

반면, 새로운 진보 정당은 기본 소득을 지지한다. 핀란드 녹색당 및 좌파연합 등이다. 이들은 기존 복지 국가 모델이 무시했던 복지 수요에 관심이 많다. 예컨대 전통적인 실업 급여 제도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전제로 설계됐다. 하지만 핀란드 역시 청년 실업이 심각하다(2012년 기준 18.9%). 기본 소득은 이 대목에서 강점이 있다. 직장 경험이 있건 없건, 생계비 지원을 받는다.

복지 국가 모델은 '누구나 일한다'(완전 고용)라는 전제 아래에서 작동했다. 예전엔 노동운동가들이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 자본가여 먹지도 마라"라고 했다. 그때는 '일하지 않는 자'가 기득권자였고 노동의 적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다. '일하지 않는 자'를 비난하는 건, 사회적 약자를 공격한다는 뜻이 됐다. 정의롭지 않다. 노동자가 계속 줄어든다. 노동자의 힘으로 복지를 키우고, 든든한 복지로 노동력을 건강하게 재생산하는 전통적 복지 국가 모델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다른 모델이 필요하다. 기본 소득이 한 대안일 수 있다는 게 핀란드 녹색당 및 좌파연합의 주장이다. 이들에게 기본 소득은 기존 복지국가 모델이 제공한 것보다 더 강력한 사회안전망이다.

기본 소득 도입을 검토 중인 현 정부는 시장주의 세력이다. 지난 4월 핀란드 총선에서 중도 우파인 중앙당이 최대 의석을 얻었다. 두 번째는 극우파인 '진짜핀란드인당'이다. 중앙당 대표이며 총리인 유하 시필레는 기업 경영자 출신이다. 이들이 바라보는 기본 소득은, 정부 주도 복지 모델을 시장으로 대체하는 한 방법에 가깝다.


요컨대 기본 소득은 전통적인 복지 국가의 왼쪽과 오른쪽에 있는 셈이다.

시민과 소통하며 문제 해결하는 대안이 '진짜'다

다른 나라도 비슷하다. 한국 역시 기본 소득을 일찍부터 주장한 건 <녹색평론> 등 생태주의 진영이었다. 녹색당 역시 기본 소득 도입에 적극적이다. 좌파 일부도 동참했다. 지난 2007년 대선에서 금민 당시 사회당 후보(현 기본소득네트워크 위원장)가 기본 소득 도입을 공약했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선 청소 노동자 출신으로 출마한 무소속 김순자 후보가 같은 공약을 내걸었다. 한국에서도 기본 소득 주장은 왼쪽에서 먼저 나왔다.

다만 한국에선 기본 소득을 둘러싼 진보 진영 내 갈등이 크지 않다. 야당 정치인들이 기본 소득에 가까운 정책을 쉽게 내놓을 수 있었던 한 이유다. '전통적인 복지 국가' 진영이건, 기본 소득 진영이건 모두 미래 지향 세력이다. 둘 다 소수파다. '전통적인 복지 국가' 진영이 일정한 기득권을 쥔 북유럽과는 다르다. 한국에선 '전통적인 복지 국가' 진영이 집권은커녕 정치적으로 자립한 적도 없다. 그러니까 왼쪽에서 '전통적인 복지 국가'의 한계를 비판하는 전략은 통하기 어렵다. 오른쪽에서 '전통적인 복지 국가'를 허무는 전략 역시 마찬가지다. '전통적인 복지국가'를 겪어봤어야, 이런 전략도 통할 게 아닌가.

이런 상황은 한국에서 전개될 기본 소득 논쟁이 북유럽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리라는 걸 예고한다. 예컨대 이재명 시장은 공공산후조리원 등 '전통적인 복지 국가' 의제와 청년 배당 등 기본 소득 의제를 함께 제시했다. 한국 상황에선 기본 소득이 '전통적인 복지 국가'보다 오른쪽인지 왼쪽인지를 따지는 게 별 의미가 없다. 이념적 족보보다는 현실에서 얼마나 유용한지를 놓고 논쟁해야 한다.

"전통적 복지 국가론의 흐름에 서 있다"라고 스스로 소개하는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이 잘 정리했다. 2013년 말에 발표한 "'보편 복지'가 '기본 소득'에게"라는 글에서다.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기본 소득을 보장하는 공동체는 '잠정적 유토피아'의 한 유형으로 볼 수 있다. 나 역시 기본 소득 사회가 도래한다면 반길 것이다. 하지만 잠정적 유토피아의 강점은 그것이 갖는 당위성에 있지 않다. 그 좌표를 향해 나아가는 '현재'를 이끌어줄 수 있어야 한다.


기본 소득의 위력은 전통적 복지 국가론과 다르다는 차별성보다는 지금 쟁점에 대한 개입력에서 발휘되어야 한다. 나는 기본 소득이 더 구체적으로 복지 논쟁에 참여하기 바란다. 예를 들어, 모두에게 30만 원을 주자고 제안하면서 보편 복지의 노동 시장·실업 급여 중심 개혁론과 견주어가기 바란다. 둘 다 당장의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면, 시민들과 소통하며 직면한 문제를 풀어가는 데서 자신의 생명력을 입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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