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한국엔 왜 저커버그가 없냐고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한국엔 왜 저커버그가 없냐고요?"

[기자의 눈] 재벌 취재 기자의 반성문

공익 기부는 크게 두 종류다. 하나는 법으로 정해진 세금보다 더 많은 돈을, 공익을 위해 쓰려는 기부다. 다른 하나는 세금을 피하기 위한 기부다.

세금보다 더 많은 돈을 공익에 쓰겠다는 기부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자는 확실히 '전자(前者)'에 속한다. 유 창업자는 자신이 세운 기업을 전문경영인에게 물려줬다. 심지어 유한양행에서 근무하던 아들과 조카도 내보냈다. 재산은 전액 학교 재단에 기증했고, 자식들에겐 "대학까지 공부를 시켜줬으니 이제부터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라"라는 유서를 남겼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가 지난 2일 발표한 공익 기부 약속 역시 전자로 보인다. 갓 태어난 딸에게 보낸 편지에서 약속했다. 그는 "(딸이) 지금보다 나은 세상에서 자라기를 바란다"고 했다. "앞으로 태어날 생명들을 포함해, 모든 생명이 평등하다"고도 했다. 이런 믿음을 실현하기 위한 공익 기부라는 게다.

다만 확실히 '전자'라고 단정하기는 조금 애매하다. 저커버그는 '챈 저커버그 이니셔티브'라는 유한책임회사(LLC)에 기부한다고 했다. '유한책임회사'는 비영리 재단과 달리 수익 활동을 할 수 있다. 또 운신의 폭도 넓다. '순수한 공익'이라기보다는, 저커버그가 원하는 형태의 공익 활동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입법 로비도 가능하다. 사심 섞인 공익 활동쯤 되겠다. 이 경우, 세금은 내야 한다. 면세 혜택이 있는 비영리 재단과 다른 대목이다.

어찌 됐건 기부를 하지 않았을 때 내야 할 세금보다, 더 많을 돈을 공익을 위해 쓰겠다는 결심은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지분 99%를 기부하는 결정은, 어떻게 해석해도 사익보다 공익에 가깝다. 역시 공익 기부를 약속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등 다른 미국 부자들의 선례 역시 이런 진단에 힘을 싣는다. 저커버그 역시 비슷한 의도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 저커버그 가족.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기재부는 왜 하필 지난해에 삼성 재단을 성실공익법인으로 정했을까

안타깝게도, 지금 한국에선 유일한과 저커버그 같은 경우를 찾기가 힘들다. 그래서 종종 논란이 된다. '수원 교차로' 창업자 황필상 씨는 주식과 현금을 기부해 장학 재단을 운영했는데, 국세청이 기부액의 절반이 넘는 세금을 물렸다. 체납에 따른 가산금이 붙으면서, 지금은 기부액보다 세금이 커진 상태다. 그는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했다. 1심 법원은 황 씨의 의도를 '전자(前者)'로 봤고, 2심 법원은 '후자(後者)'로 봤다.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순수한 공익 기부 사례가 많았다면, 재판부도 고민이 적었을 게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전자(前者)'의 사례가 워낙 드물었던 탓에, 법원 판결도 엇갈린다.

한국에선 공익 기부란 대부분 세금 회피 목적이다. 명백히 '후자(後者)'다. 이병철 삼성 창업자는 삼성문화재단에 재산을 넘겼다. 그리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이 됐다. 이병철 창업자의 재산이 이건희 회장에게 넘어갔지만,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당시 세법으론 문제가 되지 않았다.

투병 중인 이건희 회장이 사망하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재산을 물려받는다. 이 과정에서 적용될 세법 역시 큰 변화는 없었다. 공익 재단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뜻. 잠시 조각 맞추기를 해보자.

현행 상속·증여세법에 따르면, 기업들의 공익재단은 개인·법인으로부터 계열사 지분 5% 미만을 인수할 경우 면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추가 조항이 있다. 기획재정부로부터 성실공익법인으로 지정되면, 계열사 지분 10% 미만까지 상속세와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마침,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삼성문화재단과 삼성생명공익재단을 성실공익법인으로 지정했다. 이건희 회장이 지난해 쓰러졌다. 삼성문화재단과 삼성생명공익재단이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은 각각 4.68%와 2.18%이다. 성실공익법인이 됐으므로, 이들 두 재단은 삼성생명 지분을 더 보유할 수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5월 이들 두 재단의 이사장에 취임했다. 지금 삼성 그룹 지배구조를 거칠게 정리하면, 이렇다.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 삼성생명이 핵심 고리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생명 지분 20.8%를 갖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이걸 그냥 상속받는다면, 절반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이 이 지분을 삼성문화재단과 삼성생명공익재단에 넘긴다면, 이들 재단 이사장을 겸하고 있는 이 부회장은 세금을 내지 않고 삼성 그룹 지배구조의 중간 고리를 장악할 수 있다.

이 회장은 지금 의식 불명인데, 어떻게 자기 지분을 두 재단에 넘길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나온다. 이 회장이 미리 위임장을 써둔 경우에는 가능하다는 게 변호사들의 답변이다. 실제로 그랬으리라고 본다. 다만 여기서 새로운 변수가 있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 10월 발의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이다. 성실공익법인에 대한 면세 혜택을 없애는 내용이다.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삼성이 공익재단을 면세 수단으로 쓰기는 조금 더 어려워진다. 박 의원의 법안에 긴장한 건 삼성만이 아니다. 현대차 그룹 정몽구 재단 역시 이노션 지분을 10% 갖고 있다. 정몽구 재단도 성실공익법인으로 지정돼 세금 혜택을 받는다.

'강도 귀족'이 '기부 천사'가 된 까닭

한국에선 왜 세금보다 더 많은 돈을 공공에 기부한 경우를 찾기 힘들까. '제2의 유일한'은 왜 나오지 않을까.

한국 재벌이 유난히 천박해서? 글쎄다. 천박하고 탐욕스럽기로는, 19세기 미국 부자들을 따라가기 힘들다. 이른바 '강도 귀족(Robber Baron)'이라고 불린 그들이다. 석유 재벌 록펠러, 철도 재벌 벤더빌트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 역대 부자 순위 1, 2위를 차지한 이들이다. 빌 게이츠나 워럿 버핏도 이들보다 훨씬 후순위다. 둘 다 투기와 독점, 권력 매수로 돈을 벌었다. 벤더빌트는 졸부 이미지를 씻으려, 영국 처칠 가문과 사돈을 맺었다. 처칠 가문으로 시집간 손녀딸은 '달러 공주'라는 놀림을 받았다.

하지만 미국에서 기부 문화의 씨를 뿌린 것도 록펠러와 벤더빌트 가문이었다. '강도 귀족'이 '기부 천사'로 거듭난 이유는 간단하다. 신랄한 사회적 비난 때문이다. 여성 언론인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의 끈질긴 보도와 저술이 불씨였다. 그가 출간한 <스탠더드 오일의 역사>는 석유 재벌 록펠러를, 말 그대로 발가벗긴 저술로 꼽힌다. 이 책을 계기로, 미국 사회는 독점 자본의 폐해에 눈을 떴다. 이후 미국 의회는 반독점법을 제정해 록펠러의 기업 스탠더드 오일을 해체했다. 그래도 록펠러의 시장 지배력은 여전했고,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의 비판적 저술 역시 계속됐다.

록펠러를 포함한 '강도 귀족'의 활발한 공익 기부는, 도무지 꺾이지 않는 비판적 여론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됐다. 그게 역사가들의 설명이다.

지금 진행 중인 빌 게이츠의 기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가 빌앤멜린다 게이츠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을 설립해 기부 활동을 시작한 건 지난 2000년이다.

그보다 2년 앞선 1998년, 빌 게이츠는 운영체제(OS) 시장 독점 논란에 휘말려 수사를 받았다. 그의 기부 활동이 독점에 대한 비난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허술한 비판 언론저부터 반성합니다"


삼성을 포함한 한국 재벌이 '진짜 기부'에 인색한 이유가 여기서 드러난다. 그들을 압박하는 힘이 너무 약했다. 이 글을 쓰는 나부터 반성한다. 그리고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을 떠올린다. 록펠러를 평생 물고 늘어졌던 그를 본 받은 언론인이 이 땅에 많았더라면, 우리는 지금 '저커버그의 기부 선언이 왜 신기한 일 취급받는지'에 대해 놀라고 있을 게다.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할 수도.

"'사심 섞인 기부'가 과연 칭찬할 일인가. 저커버그가 하겠다는 건, 원래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미국 정부가 부끄러워해야 한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제대로 거둬서 복지를 강화했다면, 굳이 저커버그가 요란스레 나설 일도 없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