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가장 훌륭한 정치는 덕치(德治)라고 전해져 왔다. 일반적으로 도덕성을 갖춘 지도자가 국민을 통치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지만, 전통적인 유가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간단한 내용은 아니다.
유가에서 말하는 덕(德)의 본래 의미는 "우주 만물이 질서를 유지하며 운행하게 하는 근본"이다. 현대적으로 말하면 근본 에너지라고 할 수도 있고, 모든 존재의 본질이라고 할 수도 있다. 아무튼 덕치를 한다는 것은 그저 도덕성을 갖춘 자가 통치를 하라는 것이 아니고 천지자연이 운행하는 근본 원리를 깨달은 지도자가 그 섭리에 따라 통치하라는 뜻이다.
<논어(論語)> '술이(述而)' 편에서 공자가 "하늘이 나에게 덕을 주었다"는 말을 한 것처럼, 덕은 천지자연의 모든 사물에게,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이다. 그렇게 각각의 사물들에 주어져 있는 덕을 유가에서는 성(性)이라 부른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은 우주가 운행하는 이치와 근본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성찰을 절실하게 하면 하늘의 덕을 터득할 수 있다고 믿고 그것을 실천한 사람들이 성리학자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배웠던 도덕(道德)이라는 것도 그저 단순한 윤리가 아니라 우주의 이치를 행하는 길을 배운다는 원대한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유교 문화의 인간관 : 인간을 상품, 중품, 하품으로 차등
그런데 문제는 내가 깨달았다는 것을 누가 확인해 주느냐는 것이다. 깨달은 자가 지도자가 되어 덕치를 행한다는데 그 지도자가 깨달았는지 어떻게 아느냐는 것이 문제이다. 내가 모르는 어떤 것을 누군가 깨달았다면 나는 그가 무엇을 깨달았는지 혹은 제대로 깨달았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모르는 것은 여전히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무엇을 깨달았는지 알려면 나도 깨닫는 수밖에 없다. 그럼 둘 다 똑같이 깨달았는데 무슨 근거로 나를 통치하는가?
이 문제를 기가 막히게 해결한 사람이 한나라 때의 동중서(童仲舒, BC 179~104년)였다. 그는 성삼품(性三品) 설을 주장했는데, 말 그대로 인간의 성품을 상-중-하 세 종류로 나눠서 차등을 둔 것이다. 날 때부터 하늘의 덕을 깨달은 사람이 상품이고, 깨달을 자질을 갖춘 사람이 중품, 그리고 깨달을 기미가 안 보이는 사람을 하품이라 했다.
그래서 천자는 상품이고, 사대부들이 노력해서 깨달음에 가까워지면 군자라는 칭호와 함께 중품이 된다. 그리고 백성들은 하품인 것이다. 후에 당나라의 한유(韓愈)도 완전히 어진(仁) 사람, 인함이 약간 부족한 사람 그리고 인하지 못한 사람 등으로 나누었고, 성리학의 창시자 주자(朱子)도 사람의 기질에 국한하여 설명하기는 하지만 성삼품설을 차용했다.
성삼품설은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참 편리한 이론이기는 하다. 누군가 나라를 세우고 황제가 되는 순간 그는 하늘의 덕을 온전히 깨닫고 있다고 인정된다. 중품들은 그가 어떤 천명을 받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건국이라는 대업을 이루었기 때문에 천명을 받은 것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중품 자신도 하늘의 덕을 깨달았다면 대업을 이루었을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백성들은 무조건 그들의 말이 옳다고 인정하고 따르면 된다.
이렇듯 유교 문화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은 성삼품이라는 차등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상품은 최고 권력자 1인의 절대적 권위에만 해당되고, 세상은 중품과 하품의 두 부류 인간으로 나뉠 뿐이다. 이 두 부류의 인간을 맹자는 정신적인 일을 하는 노심자(勞心者)와 육체적인 일을 하는 노력자(勞力者)로 구분하여 사대부와 백성의 역할을 명확히 했었다. 사대부가 바로 천자가 덕으로 백성을 다스릴 수 있도록 보좌하는 노심자인 것이다.
<예기(禮記)>에 "예(禮)는 백성에게 적용되지 않고, 형(刑)은 대부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사대부들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군자이므로 예의범절을 통해서 위계질서를 유지하지만, 백성은 깨달음의 가능성이 없는 하품이므로 형벌로써 다스려야 한다는 뜻이다. 사대부는 유가 사상의 담지자이자 전파자이며, 백성을 사랑하고 이끄는 지도자이며, 국가 정책의 집행자임을 자처했다. 그와 더불어 심각한 죄를 짓지 않는 한 형벌을 피해갈 수 있는 특권적 계층이기도 했다.
8800만의 공산당, 정당이라기보다 계층
송대 이후에 사대부의 명칭은 신사(紳士)로 변하지만 그들의 역할과 특권은 그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역할과 특권을 공산당이 계승했다. 중국의 공산당원은 현재 8800만 명에 이른다.
이 정도 숫자면 정당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계층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은 공산주의 이념의 전파자이며, 인민의 선봉대이며, 국가 정책의 집행자임을 자부하고 있다. 이러한 그들의 역할은 유교 사회의 사대부들과 그리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작년 말부터 시진핑 당 총서기는 '4개 전면(四個全面)' 전략을 제창하고 있다. 그 내용은 안정된 사회, 개혁의 심화, 법에 의한 치국(治國), 엄격한 치당(治黨) 등을 전면적으로 실시한다는 것이다. 당초에는 엄격한 당 관리가 빠진 '3개 전면'이었으나 부패 척결이 본격화되면서 당 기율강화 부분이 첨가되어 4개 전면이 되었다.
아마도 '4개 전면'은 앞으로 정교화(elaboration) 과정을 거쳐서 그의 집권 이데올로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 장쩌민의 3개 대표론, 후진타오의 과학발전관에 이어 시진핑이 받은 새로운 천명이 될 것이다.
그런데 4개 전면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법에 의한 치국'과 '엄격한 치당'이다. 나라는 법으로 다스린다는데 당은 그저 엄격하게 다스리겠다는 것이다. 마치 "예는 백성에게 적용되지 않고, 형은 대부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옛말의 사회주의 버전 같다. 중국사회는 여전히 절대권위의 최고 권력자, 공산당원 그리고 인민으로 구성된 사회주의 성삼품의 사회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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