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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꽌시'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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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꽌시'의 비밀

[최성흠의 문화로 읽는 중국 정치] 닫힌 광장과 '꽌시' 문화

중국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꽌시'라는 말을 누구나 들어봤을 것이다.

관계(關係)의 중국 발음인 꽌시의 원래 의미는 지극히 사적인 인간관계를 뜻하지만, 사회생활에서는 물론이고 정치에 있어서도 강력한 응집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개념이 서양인에게는 낯설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그리 생소한 개념이 아니다. '인맥'이나 '빽'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는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간인(間人)주의' 또는 '아이다가라(間柄)'라는 개념이 일반화되어 있는 것을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아시아 3국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문화인 듯하다. 그런데 유독 중국의 꽌시 문화가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건 실제로도 꽌시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명확한 실체를 파악할 수 없어서 생기는 과장된 상상력 때문이기도 하다.

농경 사회를 지탱하던 유교 문화를 모태로 하는 꽌시 문화

꽌시 문화의 모태는 농경 사회를 지탱하던 유교 문화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직업에 맞춰 거주지를 옮겨 다니지만 농사를 짓던 시절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태어난 동네를 벗어나 본 적이 별로 없다. 농사짓는 사람이 삶의 터전인 땅을 떠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니 일생을 관계있는 사람들과 살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 관계있는 사람들 간에 서열을 정하고, 그에 맞는 예절과 의무를 행하는 것이 유가의 가르침이었다.

유가의 가르침에는 관계없는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사실 농경 사회에서는 관계없는 사람과 대면할 일도 별로 없었을 뿐더러 대면하는 순간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으면 되기 때문이다. 유교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자라난 지금 세대도 여전히 관계없는 사람과 대면하는 것은 불편하며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유교 문화가 추구하는 질서는 사실 단순하다. 부자자효(父慈子孝) 즉 "아버지는 자애롭고, 아들은 효도한다"는 정신에서 출발하여 "아랫사람은 충성하고, 윗사람은 은혜를 베푼다"는 상하관계로 확장하면 된다. 엄격한 상명하복의 위계질서에서 결정은 윗사람이 내리고, 아랫사람은 복종하면 되는 것이다. 공자가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를 논하지 말라"고 했으니 백성들은 나랏일에 대한 의견을 가져본 적도 없고 또 가져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오로지 충성을 다하며 윗사람의 은혜를 기다릴 뿐이었다.

근대화는 이러한 문화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특히 영향을 준 것은 그리스의 아고라와 로마의 포럼 같은 광장 문화였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고 단언했었다. 이 문장에서 인간은 총체적인 인간이 아니고 각각의 개인들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세계를 보는 관점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 개인들이 광장에 모여 의견을 발표하고, 토론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시민들은 광장에서 법률과 규칙을 만들고, 법규에 순응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권력을 창출하며 도덕적, 윤리적 행위 규범을 세운다.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 개인들이 신분에 상관없이 천부의 권리를 갖고 광장에 모여 저마다의 의견을 자유롭게 피력할 수 있는 세상이 있다니. 당시 동양의 지식인과 선각자들은 어서 빨리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은 대통령 중심제, 일본은 의원 내각제,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를 성립했다.

그러나 가끔 한국의 대통령 중심제에서 조선시대의 붕당 정치를 떠올리고, 일본의 의원 내각제에서 막부 시대의 쇼군(將軍)과 다이묘(大名)를 연상하고,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 같은 중국의 최고 권력자에게서 황제의 절대 권위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이는 아마도 제도는 받아들였지만 제도 안에서는 여전히 유교 문화가 살아 움직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와 일본은 선거를 통해 의회를 구성하도록 제도화되어 있어서 '광장'은 열려 있는 셈이다. 주권자인 국민들이 정사를 논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체득하기만 하면 '광장'은 활력을 얻을 것이다.

닫힌 '광장'에서 더 활력을 얻는 '꽌시'

중국은 문제가 좀 다르다. 국가의 탄생을 이끌었던 공산당은 정권을 잡자마자 '광장'을 닫아 버렸다. 중국의 인민은 국가주석을 선출할 권리가 없으며, 국가주석을 선출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를 선출할 권리도 없다. 또 국가주석보다 더 권력자로서 의미를 갖는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의 선출은 공산당 내부의 일이므로 인민들과는 관계가 없으며 그조차 민주적인 방식으로 선출되는 것도 아니다.

권력을 창출하고, 법과 규범을 세우는 과정에서 인민이 할 수 있는 것 없어져 버렸다. 중국의 인민들은 밀폐된 당원들만의 광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알 수 없으며 알고 싶어 하지도 안았다. 인민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았지만 그 자리에 있지 않으므로 그 정사를 논하지 않는 농경 사회의 백성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그 백성들에게 당의 결정을 충실히 따르는 복종의 미덕은 그리 낯선 것도 아니다.

이런 이유에서 꽌시 문화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건국 초기에 생산과 분배를 통제하는 간부와 사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은 그에게 개인적 충성을 바치고 사적인 은혜를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백성의 전략이었다. 계층의 이익 혹은 계급적 이익 같은 것은 관심 밖의 문제이고, 어떻게 하면 권력자와 사적인 인간관계를 맺어서 특권적 은혜를 입느냐가 주된 관심사가 되었다. 꽌시 문화는 그렇게 유교 문화와 공산당 일당 체제가 결합하여 탄생했다.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룩한 이후에 꽌시는 더욱 중요해 졌다. 꽌시를 통해 얻는 특권적 은혜가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막대한 부를 갖다 주기 때문이다. 또 은혜에 대한 보답도 그만큼 커졌다. 이런 이유에서 부패는 현재 중국의 가장 큰 문제가 되었다. 시진핑 주석이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반대 세력을 제거하는 명분으로 보일 뿐 진정한 성과를 얻는 것 같지는 않다.

중국의 인민들에게 광장이 개방되지 않는 한 꽌시 문화는 계속해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권력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중국의 백성들에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아는가?"보다 "누구를 아는가?"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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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중국 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대륙연구소, 북방권교류협의회, 한림대학교 학술원 등에서 연구원을 역임했다. 중국의 관료 체제에 관한 연구로 국립대만사범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중국의 정치 문화에 대한 연구로 건국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 권으로 읽는 유교> 등의 번역서와 <중국 인민의 근대성 비판> 등 다수의 연구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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