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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에 민주화 바람이 부는 걸까요?

[아시아 생각] 2015 버마 총선 참관기

버마(미얀마) 총선참관단 활동을 위해 양곤으로 떠나기 전날, 언론을 통해 야당 후보가 유세 도중 흉기를 든 괴한에 습격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언론은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정국이 불안하다는 소식과 함께 개표 조작에 대한 우려와 투표 참여에 대한 억압 가능성을 보도하거나 혹시 모를 폭력 사태에 대비하여 전 세계 국제 사회가 이번 버마 총선을 집중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드디어 11월 8일, 전 세계의 이목이 아시아의 한 국가, 버마에 집중되었다. 53년간 이어졌던 군부독재를 끝내고 민주화로 가는 씨앗을 심어줄 자유 총선이 25년 만에 치러졌다.


▲ 3000명의 유권자를 감당하기 어려운 한 투표소는 난장판이 되었다. ⓒ 이영아

25년 만에 치러지는 총선, 그에 대한 기대


버마 의회는 상원 224석과 하원 440석 등 총 664석으로 구성돼 있다. 이번 총선은 분쟁과 홍수 피해로 선거가 취소된 7개 선거구를 제외하고 상하원 의원 491명과 주 및 지역 의회 의원 644명, 민족 대표 29명 등 1171명을 뽑는 대규모 선거였다(군부는 선거와 무관하게 상하원 의석의 25%를 자동으로 배당받는다). 총 7개주에서 91개 정당, 6000명 이상의 후보들이 출마하였고 총인구 5500만 명 중 3500만 명이 유권자로 등록하고 4만500개의 투표소에서 투표가 진행되었다. 이번 투표에 대한 열기는 국내외에서 실시한 사전 투표에서도 느낄 수 있었는데 재외 국민 유권자로 등록한 버마인은 37개국에 걸쳐 약 3만 명에 이르렀다. 또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버마 이주 노동자들은 'Fly to vote' 캠페인을 벌이며 투표 참여를 위해 선거 당일 버마로 날아와 이번 투표에 대한 유권자들의 기대와 열기를 느끼게 해주었다.

버마의 민주화 운동은 지난한 여정을 겪어왔다. 1988년 8월 8일에 있었던 8888항쟁은 대학생, 불교 승려, 시민이 힘을 모아 군부에 맞서 민주화를 요구한 전국 규모의 민중 투쟁이었다. 그러나 군부는 무고한 시민에게 총구를 겨눠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군대의 발포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시위는 결국 독재자 네윈을 퇴진시킨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1990년 총선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이 82%가 넘는 의석을 확보하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나 아쉽게도 군부의 철권통치로 귀결되었다. 이 민주화 투쟁의 과정에서 수천 명의 인명이 희생되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화와 변화에 대한 버마 사람들의 의지와 열망은 사그라지지 않고 지금까지 지속되어 왔다.

가장 큰 변화는 자유롭게 정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유


아웅산 수치는 지난 9월 자유 공정 선거가 치러질 수 있도록 국제 사회의 적극적인 선거 감시를 요청하였다. 이에 유럽연합(EU), 미국 카터재단을 비롯해 30개국에서 1000명의 국제선거참관단을 파견하고, 버마 시민 사회에서도 9000명의 현지 참관단을 조직하여 총 1만 명 이상의 참관단이 이번 총선에 참여하였다. 필자는 아시아 지역에 선거참관단을 파견하는 네트워크 조직인 ANFREL(Asian Network for Free Elections)을 통해 국제참관단으로 지난 11월 2일부터 약 열흘간 활동하고 돌아왔다.

ANFREL은 이번 버마 총선에 총 18개국에서 모인 20명의 장기참관단과 27명의 단기참관단을 파견하였다. 양곤에 도착하자마자 다른 참관단들과 함께 버마의 정치 현황과 선거법, 선거 절차 등과 참관단의 역할과 주의점 등을 교육받았다. 선거참관단으로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역할과 책임을 정확히 아는 것이다. 선거참관단은 이곳에서 선거가 공정하고 합법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유권자들에게 위협이나 투표의 어려움이 없었는지 등을 참관하고 그 결과를 정리해 버마의 선거 제도가 조금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주요 역할이다. 선거 과정에서 참관단은 선거를 방해하거나 중지시킬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이튿날 2명씩 한 팀이 되어 각 지역으로 파견되었다. 내가 파견된 지역은 미얀마 서부 라카인 주(Rakhine State)로 소수민족당인 아라칸민족당(Arakan National Party, ANP)이 우세한 지역이다. 이 지역은 민족 갈등이 심해 지난 2012년 무슬림인 로힝야와 불교도인 라카인의 유혈 사태가 발생하여 200여 명이 사망하기도 하였다. 시민권이 없어 임시 등록 카드인 '화이트카드'를 발급받은 이슬람교도인 로힝야는 2008년 헌법 국민투표, 2010년 총선에도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으나 지난 2월 정부의 화이트카드 전면 무효화로 이번 총선에서 투표권이 부여되지 않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라카인 주에 도착하자마자 선거관리위원회를 찾아 총선 준비 상황을 확인하였다. 총선을 앞두고 선관위는 선거인 명부 수정 작업을 마무리하고, 각 투표소 준비 현황을 챙기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전 투표 현장 방문, 주요당 후보자들과 유권자들을 인터뷰하며 선거 운동에서 부정행위가 있었는지 투표에서 어려움은 없는지 등에 대해 확인하였다.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가 버마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하며 주변 사람들과 자유롭게 정치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이 과거와는 다른 가장 큰 변화라고 꼽았다. 모든 당 후보자들의 유세 현장을 방문해 정책을 비교한 후 표를 던질 거라는 한 유권자는 지난 2010년 선거 때는 과거 군부 세력의 선거 결과 부정으로 선거 참여 의욕이 없었으나 이번 총선에서 자신의 한 표가 큰 변화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을 거라며 투표에의 뜨거운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변화에 대한 기대와 열망 보여준 유권자들


선거 당일인 11월 8일 5시, 약간은 긴장하며 라카인 주 씨트웨 타운십(Sittwe Township)의 한 군부대 투표소를 찾았다. 군부대는 다른 투표소와 달리 폐쇄적인데다가 사전 투표는 진행하지 않아 자유 선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던 곳이다. 6시부터 열리는 투표소에 일찍부터 찾은 유권자들의 긴 행렬이 이번 선거에 대한 기대와 열망을 느끼게 하는데 충분했다. 그러나 각 투표소에는 각 정당 관계자와 현지참관단 등 총 10명의 참관단이 배치되어 하루종일 선거 진행 과정을 지켜보게 되어있는 데 반해, 이 투표소에는 참관단이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라카인 주의 14개 투표소를 돌며 투표 진행 과정과 개표과정을 참관하여 잘 진행되는지 확인하였다. 일부 투표소는 3000명에 달하는 유권자들로 인해 투표 시간 동안 투표가 마무리되지 못하거나 유권자들이 몰려 투표소 안이 난장판이 되기도 했다. 또한 처음 투표에 참여하는 유권자들 중 다수는 투표 방법을 모르거나 상하원, 지역의원을 뽑는 투표 용지의 차이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고, 일부 투표소에서는 개표 과정에서 조작 의혹이 일기도 했다.


▲ 개표 과정. 각 당 관계자 및 현지 참관단을 증인으로 두고 개표를 진행한다. ⓒ이영아

민주화로 가는 길, 아직 남아있는 과제들


그러나 ANFREL을 비롯해 EU, 미국 카터재단 등 국제참관단은 우려했던 것과 달리 이번 선거가 비교적 평화롭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치러졌다고 평가하였다. 과거에 비해 평화롭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선거가 치러졌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들과 배제된 소수 민족의 투표권에 대해서는 분명히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11월 22일 선관위는 최종 개표 결과를 발표하였다. 개표 결과 민족민주동맹(NLD)이 의회 의석의 59%를 확보하여, 대통령을 배출하고 단독 정부를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선거는 버마의 큰 변화이자 민주화로 가는 전환점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평화로운 정권 이양, 소수 민족의 포용 등 아직 많은 과제가 남아있지만 민주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버마에 진정한 변화가 찾아오길 기대해본다.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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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지난 2000년 국경을 넘어 아시아 국가들의 인권과 민주주의 정착을 위한 연대활동, 빈곤과 개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위해 세워졌습니다. 위원회는 △아시아 인권, 민주주의 연대 △공적개발원조(ODA) 정책 감시 △국제 인권 메커니즘을 통한 국내 인권 및 민주주의 개선 △참여연대 활동 해외 소개 등을 주 활동 영역으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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