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궤변을 늘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궤변이었습니다. 박종철 열사 고문살인을 감추기 위해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을 폈던 것이죠.
그때로부터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전직 검사들이 나서서 다른 궤변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빨간 우비'가 상해의 주범일지 모른다는 해괴한 주장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김수남 검찰총장 후보자 청문회에서 새누리당의 김도읍 의원은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남기 씨의 부상 원인과 관련해 "SNS에 나도는 동영상을 보면 약간 모호하지만 빨간 상의를 입은 어떤 사람이 쓰러져 있는 농민 백남기 씨에게 주먹질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 찍혀 있다”며 "농민이 위중한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 수사 초기에 상흔들을 면밀하게 확인해 놓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같은 당의 김진태 의원도 "백 씨가 두개골 골절상을 입었다고 하는데 (동영상을 보면) 다른 사람이 가서 구호조치를 하려고 하는데 (빨간 우비를 입은 사람이) 굳이 가서 몸으로 올라타는 장면이 나온다"며 "이게 상해의 원인이 됐다고 보인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를 바가 없습니다. 경찰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궤변을 늘어놓았다는 점에서 30년 전의 행태나 30년 후의 행태는 똑같습니다. 사건의 진실보다는 정권의 안위와 정치적 유불리를 먼저 생각했다는 점에서 똑같습니다. 양심과 양식에 털이 났다는 점에서 똑같습니다. 무엇보다도 국민을 바보로 설정했다는 점에서도 똑같습니다.
어이없는 건 국회의원이 된 두 전직 검사의 궤변만이 아닙니다. 이 궤변을 들은 김수남 검찰총장 후보자의 답변도 가관입니다. "철저하게 수사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빨간불을 켜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검사 출신 국회의원들의 궤변을 일과성 생트집 정도로 치부하기가 십상이겠지만 아닐지도 모릅니다. 이들이 앞장서서 '새로운 의혹'을 던져줌으로써 검찰이 수사를 핸들링할 여지는 커졌습니다. 물대포만이 아니라 '음험한 가격'을 캐고, 경찰만이 아니라 '빨간 우비'를 취조할 '꺼리'가 생겼습니다. 최종 결론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과정을 이렇게 세팅하고 주목대상을 분산시키면 경찰과 물대포에 대한 비난 여론에 물을 탈 수 있습니다. 최소한 경찰로 쏠리는 비난의 강도를 떨어뜨림으로써 박근혜 정권을 향한 규탄의 강도 또한 자동으로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까 다시금 떠올려지는 역사의 한 장면이 있습니다. 20여 년 전 이른바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이 터졌습니다. 강경대 군이 시위 도중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데 항의하던 전민련 간부 김기설 씨가 노태우 정권을 규탄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자 검찰이 나서 고인의 전민련 동료 강기훈 씨가 유서를 대필해주고 자살을 방조했다고 몰아간 사건이었습니다. 법원의 재심으로 이 사건은 강기훈 주역의 '유서대필사건'이 아니라 검찰 주역의 '유서 대필 조작 사건'임이 만천하에 밝혀졌는데요. 불리한 형세를 뒤집기 위해 수사의 물꼬를 저열하게 틀어버리고, 이 과정에서 엉뚱한 사람을 패륜적 짓거리의 당사자로 몰아갔다는 점에서 그 사건은 최악의 검찰 수사 가운데 하나로 기록돼 있습니다.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때 했던 수사와 지금 하려는 수사가 다를 바 없습니다. 판 뒤집기를 위해 패륜적 방법까지 마다치 않는다는 점에서 하등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되묻습니다. 그 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뭐가 바뀐 겁니까? 바뀐 게 있기나 한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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