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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삼성은 '삼지모' 고언 수용 안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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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왜 삼성은 '삼지모' 고언 수용 안 했나?

['삼지모' 대해부] "경영권·노조 문제 직언했었다"

이건희 회장이 부친인 고 이병철 회장의 별세로 인해 경영권을 승계받은 1987년 이후 삼성은 비약적 성장을 거듭했다.

이 회장이 취임할 당시 삼성 그룹의 매출은 17조원에 불과했고, 이익은 2700억 원에 불과했지만 2006년 말 기준으로 매출은 8.9배인 152조원으로 늘었고, 세전이익은 52.6배 증가한 14조 2000억 원으로 증가했다. 이같은 성적표만 두고 보면 이 회장은 '성공한 CEO'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승승장구해 온 이 회장이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을까? '삼성 특검'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일지 모르겠지만 현 시점을 제외하면 이 회장은 아마 2005년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해 7월 이른바 안기부 X파일 폭로는 온 나라를 충격에 빠뜨려 삼성을 지탄의 대상으로 만들었고 그해 겨울에는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은 막내딸이 미국에서 자살했다.

"돈이면 다냐"는 비판여론이 힘을 얻기 시작하자 그 이듬해인 2006년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했고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이라는 일종의 옴부즈맨 조직을 꾸렸다.

삼성 측에선 윤종용, 이학수. 김인주 등 이건희 회장을 제외한 거의 모든 수뇌부가 이 모임의 멤버였고 삼성 밖에선 최학래 전 한겨레신문 사장, 황지우 시인, 노동자 출신인 방용석 전 노동부장관, 진보적 노동경제학자 김형기 경북대 교수 등 '괜찮은 인사'들이 참여했다.

삼성은 '삼지모'의 출범과 함께 "쓴소리를 들을 각오"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이로부터 2년이 지나지 않아 비자금 의혹 사건이 또 터졌다. '삼지모'는 어떻게 조직돼 어떤 식으로 운영됐을까?

삼지모는 어떻게 탄생했나
▲ X파일 등에 대한 대삼성비판 여론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2007년 2월 7일. 이건희 회장 일가 사재 8000억 원 사회환원, 구조본 축소, 삼지모 결성 등을 골자로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하고 있는 이학수 부회장ⓒ연합뉴스

2005년 2월 7일 당시 삼성구조본부장인 이학수 부회장은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사실상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삼성은 통해 불법 대선자금 제공,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안기부 엑스파일 파문 등에 물의를 일으킨 점을 사과하면서 모두 8000억 원 상당의 사회기금 헌납, 그룹 구조조정본부 축소 및 계열사 독립경영 강화 등을 담은 대책을 내놓았다.

또한 삼성은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을 강화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헌법소원 등 정부 관련 소송을 모두 취하하기로 했다.

후속 조치도 착착 이어졌다. 같은 해 3월 8일 삼성의 구조본은 전략기획실로 전환된다.

1실 5팀인 구조조정본부 직제는 3팀 체제로 축소되고 인원은 147명에서 99명으로 33% 감축됐고 법무실은 '수요회'로 불리는 사장단협의회 산하로 이관돼 각 계열사 사장이 경영상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데 필요한 법률자문에 주력하게 됐다. 계열사 독립경영을 강화하고, 금융계열사의 사외이사 수를 절반 이상으로 확대하는 조처도 나왔다.

이같은 '변화'의 결정판은 그해 5월 결성된 '삼지모'였다.

이 모임에는 진보적 노동경제학 김형기 경북대 교수, 박정희 정권 당시 원풍모방 노조위원장을 지낸 바 있고 최초의 노동자 출신 노동부 장관이라는 이력을 갖고 있던 방용석 당시 근로복지공단 이사장, 유신체제에 저항한 크리스찬 아카데미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신인령 이화여대 총장, 한국 시민운동의 대명사 최열 환경재단 대표, 한겨레신문 사장을 지낸 최학래 씨,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이정자 녹색미래 대표 등이 포함됐다.

박원순 변호사, 신영복 교수, 손호철 교수 등 더 '원칙적' 인물들이 고사했다는 이야기가 들렸지만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라인업이었다. 삼성 측에서도 전략기획실을 책임지고 있는 이학수 부회장을 필두로 김인주 전략기획실 사장,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순택 삼성SDS사장, 이수창 삼성생명 사장, 이상대 삼성물산 사장, 김징완 삼성중공업 사장, 이종왕 당시 법무실장, 유석렬 삼성카드 사장이 회의 멤버로 참여했다.

이건희 회장만 빠져서 그렇지 이름값이나 권한면에서 그야말로 삼성그룹을 이끄는 인사들이 모두 참여한 것은 '삼지모'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물론 당시에도 시민사회의 입장은 '기대반 우려반'이었다. '무노조 경영' 등에 대한 쓴소리를 삼성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미지수였고 삼성의 여론무마용 '들러리'로 전락할 가능성도 높았기 때문.

결국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이같은 우려는 현실화됐다.

"경영권 승계 문제와 노조 인정 문제를 직언했지만"

삼지모 인선 직후 "삼성의 방패막이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삼성의 '진정성'을 믿고 싶다"며 "전공(노동경제학)을 십분 발휘해 삼성 무노조 신화의 허구를 비판하고 대·중소기업 관계에서도 모범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비판적 의견을 개진할 것"이라고 희망했던 김형기 교수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김 교수는 <프레시안>과 대화에서 "이런 식이면 삼지모라는 모임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해외 체류 일정 등으로 인해 몇 차례 밖에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밝힌 김 교수는 "지난 11월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직후 삼성 측의 해명을 듣는 모임을 한 번 가졌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우리가 적극적 의견을 개진한 것은 아니고 삼성의 해명을 들어보는 자리였다"면서 "그런데 특검 수사를 보면 차명계좌 등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것 같은데 이건 삼지모 설치 정신과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대국민 사과를 하고 반성하는 의미에서 삼지모를 만들었는데 삼성은 과거 관행과 단절하지 못했다"면서 "이런 식이면 모임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 이미 그런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삼지모 구성원들의 제안을 삼성이 잘 수용했냐'는 질문에 대해 김 교수는 "글쎄…"라면서 "이학수 부회장 등 주요 멤버들이 꼬박꼬박 참석하긴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삼지모 멤버들의 고언을 삼성이 받아들인 것 같진 않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황지우 총장도 <프레시안>과 대화에서 "나는 초기에 몇 번 회의에 참석 했을 뿐, 활동이 거의 없었다"면서도 "몇 번 본질적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회고했다.

황 총장은 "삼성이 거액을 들여서 사회환원을 하고 봉사도 하지만 편법적 경영권 승계 문제와 노조 인정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세계적 기업으로 갈 수 있겠냐고 직언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교수도 "결국 삼성의 모든 문제의 본질은 경영권 승계와 노조로 귀결된다"면서 "이를 위해 불법을 자행하고 법조계, 관계 인사들을 매수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매수를 자행한 삼성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없지만 언제든지 매수를 당할 '준비'가 되어있는 이른바 '사회지도층'의 문제가 어떻게 보면 더 심각할지도 모른다"며 이같이 말했다.

'삼지모'에서 본질적인 두 문제를 제기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아니냐'고 질문하자 김 교수는 "결과적으로 보면 그렇다"고 답했다.

삼지모 제대로 운영됐으면 '김용철 폭로'도 없어

돌이켜보면 삼성이 지난 2006년 2.7선언 당시 사과했던 불법 대선자금 제공, 에버랜드 전환사채 , 안기부 엑스파일 파문 등이 지금까지 말끔히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다.

분기에 한 번 씩 두 세시간 동안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을 통해 삼성을 변화시킨다는 기대 자체가 허망한 것이었는진 모르겠지만 만약 삼성이 삼지모 등의 의견을 받아 그 문제들을 '털고' 갔다면 2004년 삼성에서 퇴직한 김용철 변호사의 지난 해 폭로는 별다른 폭발력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해 대선에서야 큰 덩어리의 불법자금이 오고간 낌새조차 없으니 대선자금 문제야 일사부재리로 넘어간다 치자. 하지만 에버랜드 전환사채 문제의 근본 원인인 순환출자를 통한 경영권 지배 문제, 그리고 모든 삼성 의혹의 귀결점인 '총수 보호 제일주의'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엑스파일에 포함된 '떡값'논란 역시 마찬가지고 이 모든 의혹을 포괄하는 비자금 문제도 별 다르지 않다. <프레시안>과 삼성의 송사에서 나온 삼성로지텍에 대한 삼성전자의 과다운임지급 의혹이 발생한 시기도 2005년 하반기다. 특검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는 차명계좌 역시 2008년 현재 존재하는 것들이다.

지난 1938년 고 이병철 회장의 삼성상회 설립 이후 70년 간 삼성의 위기는 적지 않았다. 1964년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인해 국민적 지탄이 쏟아지자 이병철 당시 회장은 이듬해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고 언론과 학원사업에서도 손을 떼겠다고 선언했다.

이 사건의 여파로 인해 장남인 이맹희 씨가 후계구도에서 탈락했을 정도지만 삼성은 약속과 달리 동양방송을 오랫동안 보유했고 그해 중앙일보도 창간됐다. 이병철 회장의 기자회견 직후 손을 뗐던 성균관 대학교도 결국 '회수'했다.

마찬가지로 2006년의 약속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4월 초 삼성특검이 마무리 되면 아마도 삼성은 다시 한 번 국민들 앞에 사과하며 '특단의 약속'을 제시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에도 "고비만 넘기고 보자"는 식이면 삼성에 대한 국민적 반감은 더 심화될지도 모른다.

"삼성이 사는 길과 총수가 사는 길은 다르다"

이에 대한 김형기 교수의 고언은 설득력이 있다. 김 교수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삼성이 이번 기회에 환골탈태해서 거듭나지 않는다면 글로벌 기업으로 '생존'이 어려워진다"고 잘라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친기업 정책이 삼성의 한 버팀막이 되지 않겠냐'는 질문에 대해 김 교수는 "삼성이 그걸 기대한다면 이번 사태의 엄중성을 모르는 것"이라면서 "단기적인 그런 기대를 하는 대신 이번 기회에 (의혹을) 완전히 떨치는 것이 삼성이 사는 길"이라고 답했다.

김 교수는 "삼성은 삼성이 사는 길보다 삼성 총수가 사는 길을 선택해왔다"면서 "삼성이 그 두 길이 같은 길이라고 생각하니 답답하다. 지금 문제도 총수를 살리려고 무리한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결국 해결책은 경영권 승계에 대한 부담을 떨쳐버리는 것과 노조를 허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노조를 인정하면 사내에 합리적 견제세력을 둘 수 있고 아무래도 내부 견제장치의 눈치를 봐야 하니 많은 문제들이 원천적으로 걸러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황지우 총장의 전언과 같은 의견이다. 또다른 삼지모 멤버도 경영권과 노조를 삼성사태의 본질적 축으로 꼽았다. 하지만 삼성은 지난 2년 동안 삼지모의 이같은 지적에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않았다. 4월 9일 특검 종료 이후 삼성은 어떤 답을 내놓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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