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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 현대상선, 돌파구 모두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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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 현대상선, 돌파구 모두 막혔다?

[기자의 눈] 경영권 집착이 '현대그룹' 부실 키웠다

재계 서열 21위 현대 그룹이 표류하고 있다. 그룹 매출의 70%를 차지하는, 핵심 계열사 현대상선이 문제다. 부실이 워낙 심각하다. 경쟁 관계인 한진해운과의 강제 합병을, 정부가 추진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현대 그룹이 현대상선을 제3자에게 넘기려 한다는 소문도 있다.

이런 보도 및 소문에 대해 당사자들은 전면 부인한다. 금융위원회는 10일 긴급 브리핑을 열어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범정부협의체에서는 산업별 주무부서의 산업정책적 판단 등을 통해 구조조정의 큰 방향만을 제시한다"며 "개별기업 구조조정은 채권단과 기업의 자율적인 협의 아래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IMF 위기 직후, 김대중 정부가 추진했던 '빅딜'과 같은 방식은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현대 그룹 역시 현대상선 매각설을 공식 부인했다.

그럼에도,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이대로 가면, 현대상선은 좌초한다. 지금 벌어지는 온갖 설왕설래는, 방향타를 어디로 돌려야 하는지에 관한 것들이다.

결제 대금 연체, 현금 수혈 절박하지만


현대상선 등 해운업체는 물동량 곡선을 타고 성장한다. 무역이 활발해야 번창한다는 뜻이다. 지난 2010년 유럽 재정 위기 이후, 전 세계 물동량이 확 줄었다. 현대상선은 지난 2011년 3574억 원 적자를 냈고, 지금껏 내리 적자 행진이다. 2010년 말 1조3000억 원에 달하던 현대상선의 현금 보유액은 올 상반기 말 2000억 원대로 줄었다. 부채 비율은 같은 기간 240%에서 880%로 치솟았다. 내년 상반기까지 갚아야 하는 차입금은 1조433억 원, 회사채는 1조4768억 원에 이른다.

현금 수혈 없이는 수명을 이어갈 수 없다. 각종 결제 대금, 선급용선료 등이 연체돼 있다. 오는 12월 지급해야 하는 결제 대금, 선급용선료만 약 1129억 원이다. 그 밖의 부채 상환 등을 종합하면, 올 연말까지 6000억 원대 유동성 조달이 필요하다. 현대 그룹은 금융 계열사 세 곳을 매각해서 현금을 확보하려 했다. 현대증권·현대자산운용·현대저축은행을 묶어 팔면, 6512억 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이들 세 회사 매각 계획은 결국 무산됐다.

채권단인 산업은행은 추가 지원은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 그룹의 자구책 마련이 우선이라는 것. 현대증권 등 금융 계열사 매각을 다시 추진하라는 요구도 포함돼 있다고 알려져 있다.

세 가지 돌파구, 모두 막혀 있다

막다른 골목에 부딪힌 현대 그룹이 고를 선택지는 많지 않다. 첫 번째는 범현대가에 손을 벌리는 것이다. 현정은 현대 그룹 회장은 고(故) 정주영 현대 창업주의 며느리다. 2003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정몽헌 회장이 현 회장의 남편이다.

성사만 된다면, 가장 확실한 해법이다. 그러나 성사 가능성이 낮다. 현 회장은 시숙부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였다. 시동생인 정몽준 전 의원과도 갈등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는 현대건설 인수를 놓고 거센 감정싸움을 했다.

두 번째는 정부가 나서는 것이다. 해운 산업은 국가 전략적 가치가 크다. 전쟁 등 비상 상황에서 한국 국적 선사는 필수적이다. '해운-조선-철강'으로 이어지는 산업 연관 관계 역시 고려해야 한다. 해운 업체가 조선사에 선박을 주문하면, 철강 회사가 배에 들어가는 후판(厚板)을 공급한다. 이런 산업 생태계를 고려하면, 해운 산업 위기를 그냥 바라보기 어렵다.


해양 당국은 지금과 같은 두 개의 국적 선사(한진해운, 현대상선) 체제를 유지하기를 원한다고 한다. 따라서 소문처럼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을 정부가 추진하려면, 보다 폭넓은 정책 조율이 이뤄져야 한다. 게다가 한진해운도 합병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정부의 선택지 역시 많지 않다. 설령 방법이 있다 해도, 정부의 인위적인 시장 개입이라는 비난을 사게 된다. 게다가 정부는 원죄까지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009년 해운 산업 구조조정을 시도했다. 부채 비율을 낮추라는 게 당시 정부의 주문이었다. 한국 해운 산업의 경쟁력 상실로 이어졌다.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 해운 산업의 특징을 무시한 채, 재무 논리로만 접근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해운 업계는 정부에 대한 피해의식이 큰 편이다. 정부가 조선 등 유관 산업에 비해 유독 해운 산업에 더 엄격한 구조조정을 요구했으며, 정부 주문을 잘 따른 측이 결국 손해 봤다는 것. 현 상황에서 정부의 개입이 힘을 갖기 힘든 이유다.

세 번째는 제3자 매각이다. 현대 그룹은 이런 가능성을 공식 부인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런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검토와 성사 사이의 거리는 까마득하다. 부실 덩어리 기업의 매각이 순조로울 리는 없다.

현대상선은 어느 쪽으로 방향타를 돌리건 암초를 만난다. 현대상선이 좌초하면, 현대 그룹 역시 무너진다. 이는 한국 경제에도 위험 신호다.

부실 키운 봉건적 행태, 현정은 책임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대부분 현정은 회장이 자초했다. 정주영 회장이 창업한 현대 그룹이, 이른바 '왕자의 난'을 거치며 쪼개진 게 15년 전이다. 남편 정몽헌 회장의 비극적인 죽음을 계기로 경영을 맡은 지는 12년째다. 짧지 않은 세월이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 현 회장은 과거에만 머물러 있었다. '현대가의 적통성'이라는 봉건적 가치에만 매달렸다. 이는 무리한 경영권 집착으로 이어졌고, 대규모 부실의 원인이 됐다.

예컨대 시동생인 정몽준 전 의원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 그룹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현 회장은 법망을 피하려 온갖 무리수를 뒀다. 우호주주들이 현대상선 주식을 매입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현대엘리베이터가 맺은 파생상품 계약이 대표적이다. 현대엘리베이터가 일방적으로 손해를 떠안아야 했다. 결국 실패로 끝난 현대건설 인수 시도 역시 합리적인 경영 판단과는 무관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본질은, '감정싸움'이었다는 것.

'비선 실세' 논란을 부른 불투명한 경영 역시 문제를 키웠다. 황두연 ISMG코리아 대표를 둘러싸고 불거졌던 의혹이다. 현대상선이 어떤 길을 택하건, 다양한 이해 관계자의 눈물이 필연적이다. 국민 경제에 부담이 되고, 숱한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는다. 일차적인 책임자는 현정은 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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