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지역에서 공동체 움직임이 활발하다. 지방 자치 발전과 복지 국가 바람에 걸맞게 지역 사회 복지 현장이 바뀌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복지 기관이 바로 우리 지역에 있는 더불어樂 노인 복지관이다. 감히 자치 시대를 여는 새로운 노인 복지관의 모델이라 여겨 소개하고자 한다.
더불어樂 노인 복지관, 새롭게 태어나다
광산구 노인 복지관은 2005년 4월 개관했다. 다른 시설과 다름없이 민간 위탁 운영이었다. 여느 노인 복지관과 다름없이 요구 민원이 많았다. 이에 지친 위탁법인은 위수탁 기간이 만료되자 재위탁을 포기했다. 이때 광산구는 과감히 노인 복지관을 공립 '공영' 시설로 전환했다. 2011년 1월의 일이다. 이때부터 획기적인 변화가 시작된다.
노인 복지관의 이름을 더불어樂으로 정했다. 첫 변화는 조직 체계에서 출발했다. 행정지원팀, 여가지원팀과 건강지원팀이었던 조직을 행정지원팀, 노인복지팀, 공동체경제팀, 마을복지팀 등으로 바꾸었다. 어르신들을 단순한 프로그램 대상자가 아닌 당사자로 모시는 사고의 전환이다. 지역 사회와 교감하는 공동체 복지의 토대를 마련하려는 취지가 담긴 개편이다.
시작 때부터 큰 포부가 있었다. 2년마다 단계별 중장기 계획을 수립했다. 어르신을 대상자에서 주체로 모시는 공동체 복지 기반 조성기(2011년~2012년). 복지관, 담장을 넘어 마을로의 모델 정착기(2013년~2014년). 전국적 순례지로 모델 확산기(2015년~2016년). 지금은 모델 확산기에 접어들었다. 설계보다 1년 이상 앞서고 있다.
리더의 역할
새로운 운영 체계가 등장하니 공직자도, 복지관도 당황스러웠다. 구청이 복지관 수입과 지출을 직접 집행하니, 행정과의 동반이 부담스럽고 불편했다. 구청과 동 주민센터 등 행정은 그동안 보조금을 지원하고 지도 감독만 하던 방식을 탈피하니 일이 과중됐다. 복지관과 행정, 양자의 신뢰와 융합의 과정이 필요했다.
이러한 변화에는 리더가 큰 역할을 했다. 새로운 복지관 실험을 주도한 사람은 새로 영입된 강위원 관장이다. 마을주의자이며 복지 운동가인 그는 농촌 공동체 모델인 여민동락 대표이며, 지역재단인 투게더광산 나눔문화재단을 설계하고 실천하는 사회 운동가다.
3층 관장실은 매일 밤 불이 꺼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르신들은 젊은 관장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리더는 열정으로 사람의 마음을 바꾸고 뜻을 바꾸는 옹골찬 개혁을 했다.
어르신, 대상자에서 운영의 주인으로
복지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현수막이 있다. '마을에서 어르신 한 분을 잃는 것은 큰 도서관 하나를 잃는 것과 같다'. 어르신은 단순히 복지 재정을 소비하는 수혜자가 아니다. 이는 지역의 원로인 그들의 지혜와 경륜을 지역 사회에 환원할 수 있도록 거드는 활동, 바로 복지관의 철학을 한마디로 나타내주고 있다.
어르신을 세상의 중심에 서도록 하는 시작은 자치회 운영이다. 30여 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자치회는 운영 전반은 물론, 행사, 프로그램 강사 채용까지 어르신들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자치의 현장이다.
예를 들어, 마을 찻집과 도서관 건립 땐 자치회 결정에 따라 기부금 상한제를 두었다. 몇몇의 큰돈으로 공간을 만드는 게 아니라, 누구나 공간 만들기에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이었다. 어르신들의 지혜가 돋보였다. 프로그램 강사 채용을 직접 하면서 강사에 대한 불만이 사라졌다. 책임감의 결과이다.
더불어樂 대동회도 주목할 만한 현장이다. 이는 스위스 란츠게마인데를 실험하는 최고의 마을 광장이다. (란츠케마인데 : 스위스 아펜첼이너로덴 주(州)와 글라루스 주의 최고 의결기구로, 주민이 매년 한 번씩 모여 주법을 표결하거나 주 지사, 주 정부 각료 등을 선출.) 의제를 어르신들이 직접 제안하고 발표, 결정하는 과정이 민주주의의 현장이다. 대동회는 매년 2회씩 마을축제로 진행된다.
지난 대동회에선 경로 식당 배식 방법을 결정했다. 좁은 주차장 넓혀달라고 떼쓰지 말고 한 달에 한 번은 차 없는 날을 만들자는 제안도 초록색 찬성표를 얻었다.
이런 복지관의 시도가 주민 스스로 마을의 복지 의제를 제안하고 결정하는 마을등대와 주민회의도 이끌어냈다. 마을등대는 이웃이 이웃을 살피고 돌보는 공동체 운동이다. 마을 주민들이 복지 의제를 발굴하여 논의한 후 서로 도와준다. 21개동 주민들은 주민회의를 통해 예산을 편성하는 마을 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한다. 주민이 정하면 행정은 이에 따른다.
행정의 지원 없이 오롯이 어르신들의 후원금과 재능 기부로 만들어진 마을 찻집과 마을 도서관도 있다. 어르신들 스스로도 지역을 위해 펼친 최초의 사회문화 운동이라고 평가한다. 멋진 나눔 활동도 있다. 사회활동지원사업(일자리)에 참여한 노인들이 월 20만 원 급여 중 5000원씩을 저 멀리 팔레스타인 분쟁 지역의 아이들에게 전한다. 손자들의 이름으로. 멋지지 않은가.
더불어樂 시설은 낮에는 노인복지 본연의 공간으로, 밤에는 주민들의 동아리 활동과 자치 활동의 공간으로 사용된다. 주말에는 3대가 함께 어울리는 청소년 학교다. 인권이 무엇인지, 할아버지와 손주가 함께 글을 쓰고 그림으로 표현한다. 마을 지도를 함께 만든다. 이때 어르신들은 마을의 최고 안내자다.
더불어樂 시설은 어르신들이 직접 서예, 탁구 등을 지도하는 재능 기부의 못자리다. 공간을 내어주는 시도만으로도 교육, 문화, 사회 참여 활동의 씨앗 방으로 포문을 열었다. 참으로 다양한 활동이 진행된다. 마을 소식을 알리는 마을 라디오, 인문학당이 재미지다. 책 읽는 벤치 사업도 있다. 복지관 곳곳은 책장이고 마을 도서관이다. 국보급인 어른들의 바느질, 음식 솜씨를 젊은 주부들에게 전승하는 솜씨 나눔학교는 어르신들을 당당하게 세운다.
복지관을 넘어 마을로
더불어樂의 변화는 복지관 공간을 지역 사회에 여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복지관에서 일하던 국장, 직원들을 과감히 정치, 마을로 파견했다. 사무국장 출신 구의원이 탄생했다. 어르신들은 그를 파견했다고 말씀하신다. 지역 활동가로 정치의 현장에서 일하라는 무거운 명령이다.
또 다른 복지사는 어르신들과 협동조합을 재구성하여 마을로 자리를 옮겼다. 쉽지 않은 결단이지만 더불어樂의 실험은 한 계단씩 영역을 넓혀갔다. 어르신들은 광주/전남 1호 더불어樂 협동조합에 출자해 인생 이모작을 시도했다. 고소한 두부를 만드는 부지런한 손, 두부마을 공장은 대기업이 부럽지 않다. 이문이 남지 않아도 사람과 사랑을 이어주는 밥상 마실, 어르신들의 손맛이 따뜻하다. 기품 있고 멋진 바리스타를 만나려면 더불어樂 카페를 찾으면 된다. 그곳은 이미 나눔과 평화의 공간이다. 수익의 10%를 복지관 어르신들의 활동에 후원한다.
학습 없이 진보 없다. 학습하고 토론하는 모습도 더불어樂 조직의 힘이다. 매주 자체 학습과 글쓰기 강좌를 하여 촘촘하게 기록한다.
더불어樂은 노동의 가치를 귀하게 여긴다. 그게 복지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농부 차림의 복지관 복지사들이 목요일이면 농부가 되어 협동농장을 일군다. 재배한 각종 야채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에게 전달하거나 마을 식당에 납품하기도 한다. 그들의 노동이 거룩하다.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하는 복지사는 아이들의 친구인 아동센터를 선택했다. 아직 지방자치단체의 지원도 받지 못하는 열악한 시설이다. 마을에서 아이들을 함께 키운다. 그녀 역시 더불어樂식 파견이다. 그들이 진정한 활동가들이다.
난관들…
이런 변화를 가로막는 난관들도 있었다. 일부에선 화재 등 사고를 미리 염려했다. 밤늦게까지 문을 열고 있으니 화재나 복지관 비품 분실 등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준비가 없었던 구에서는 밤늦게까지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보상조차 하지 못했다. 심지어 구 의원들마저 노인 복지관을 일반 주민들에게 내어주면 어르신들이 소외받는 게 아니냐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고백컨대 새로운 것을 해보자고 하면 공무원은 먼저 안 된다고 한다. 규정이 없고, 예산이 없고, 사례가 없기 때문이라고…. 왜 그렇게 반응할까. 하지 말라는 규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라는 규정이 없어서다. 그래서 첫 시도, 최초의 사례는 부담이다. 더불어樂의 이런 시도는 설레면서도 두려움이 있었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은 복지관 활동가들의 기다림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13년 4월, 최대의 위기가 있었다. 더불어樂의 평생 동지였던 사무국장이 우리 곁을 떠났다. 복지관의 살림을 맡아하고 세심하게 조직을 이끌던 아름다운 복지사다. 중장기 계획을 함께 설계하고, 광주의 미래를 꿈꾸던 그가 암 판정을 받은 후 6개월 만에 세상을 등졌다. 동료들은 참담했고, 어르신들까지 온 식구들이 슬픔에 빠졌다. 한참이나 그를 놓지 못했다. 하지만 떠난 동지의 몫까지 다하자며 동료들의 이름으로 영결식을 마쳤다. 추모회도 만들며 다시금 힘을 냈다.
전국적 복지 순례지로
더불어樂이 항구를 떠난 지 어느새 5년째다. 참으로 멋진 항해를 하고 있다. 어르신들 스스로 새로운 노인 복지관을 만들어 냈고, 이제 지역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모델이 되고 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복지기관, 사회단체들이 줄 지어 더불어樂을 찾는다. 전국적 복지 순례지인 셈이다. 지금까지 약 160회 3400여 명이 배우러 다녀갔다. 또 더불어樂을 소개해 달라는 전국 각지의 요청을 받아 강의를 나간다.
직원들은 손님맞이로 종종대고, 어르신들은 직접 복지관을 안내하시기도 하고, 앞마당에 꽃을 심는다. 팔을 걷어붙이고 청소하시는 모습은 익숙한 광경이다. 2014년 초등학교 교과서 '주민 자치 우수 사례'에 소개되기도 했다. 지난 10월 30일 행정자치부 주관, 행정서비스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수많은 포상과 복지부, 학계, 언론의 주목과 호평을 받고 있다. 받는 관심과 사랑만큼 책무도 크다.
지방 자치의 근본은 '사람'이다. 광산구의 모든 정책의 기준은 '사람'이다. 더불어樂 복지 활동가들은 왼손엔 수첩을 들고 주민들의 뜻을 여쭙고, 오른손엔 걸레를 들고 지역 속으로 스며든다. 행정은 이런 변화에 유연하게 지원․지지하고, 또한 이 모델을 보편화하여 확산하고자 한다. 이런 민간의 부드러운 혁명을 지원하기 위한 행정 조직이 필요했는데 바로 내가 일하는 복지시설지원단이 만들어진 이유이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복지 담당 공무원으로서 이런 곳에서 신명 나게 일할 수 있으니. 변화를 이끌어준 현장 활동가들의 투혼이 고맙다. 항상 현장이 스승이다. 그 중심에 서 주신 어르신들이 존경스럽다. 더불어 따뜻한 자치 공동체, 더불어樂이 자랑스럽고 또 더 발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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