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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가 열광한 '황금알 낳는 거위' 사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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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가 열광한 '황금알 낳는 거위' 사기극

[초록發光]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16세기 영국의 왕 헨리 8세는 과소비로 인해 막대한 왕실 재정을 탕진하였다. 헨리 8세는 재정난을 극복하기 위해 은과 동의 함량을 줄인 불량 주화를 남발하기 시작했다. 영국 국민들 역시 은화와 동화를 녹여 불량 주화를 만들기 시작했고, 결국 진짜 은화와 동화는 사라지고 짝퉁 화폐만 남게 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경제학자였던 토머스 그레샴은 헨리 8세 사후 왕위를 계승한 엘리자베스에게 "Bad money drives out good(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며 대책을 요청했다. 이후 경제학자 헨리 매클라우드가 '그레샴의 법칙'이란 말을 만들어내면서 금융권을 넘어 사회 전반적으로 쓰이는 용어가 됐다.

정부 정책에서도 잘못된 판단이나 오류로 양질의 정책이 밀려나는 현상에 '그레샴의 법칙'이 쉽게 작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 역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극단적인 사례 중 하나다. 그리고 정부의 악화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온실 가스(온실 기체) 배출권 거래제'다.

기업들에게 온실 기체를 배출할 수 있는 할당량을 부여해 부족분이나 잉여분을 서로 사고팔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배출권 거래 제도가 올해 시행됐다. 제도 도입 초기부터 많은 비판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해 법령까지 만들었지만, 시행 1년도 안 돼 폐기하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누더기가 된 상황이다.

정부는 온실 기체 배출권 거래량이 10월 현재 누적 100만 톤에 달한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이는 정부가 올해 초 할당했던 약 16억 톤의 0.06~7%에 불과하다. 거래가 활성화되기는커녕 의미를 찾는 것조차 어려운 수준이다. 거기에 기업들은 정부의 할당량이 기업 여건을 무시했다며 4억 톤 이상의 추가 할당을 요구한 바 있다. 정부가 기업 요구까지 수용하게 되면 배출권 거래율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기업들이 더 이상 온실 기체를 감축하는 데에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배출권 거래제가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유럽 배출권 거래 시장도 막장인 건 마찬가지다. 국제배출권거래협회 자료에 따르면, 유럽 배출권 시장 재고가 1년 할당량 수준인 20억 톤에 이른다. 당국이 배출권 할당분의 일부를 연기하는 극단적인 조치까지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출권 가격은 도입 초기의 3분의 1에서 4분의 1 수준인 5~7유로에 불과하다. 시장이 안정화되지 않으면 기업들의 온실 기체 감축 대응도 늦어지므로 그만큼 대기 중 온실 기체 누적 배출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시장이 언제 도입 초기의 기대 수준으로 올라갈지 아무도 예상을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이런 악조건 속에 또 하나의 악재가 터졌다. 며칠 전 <동아일보>에 따르면 국무조정실과 관련 부처가 온실 기체 배출권 관련 주무 부처를 환경부에서 기획재정부로 옮기는 걸 검토 중이다. 가뜩이나 온실 기체 감축 효과는 전혀 없이 사회적 비용만 축내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판에 주무 부처마저 경제를 관장하는 기획재정부로 바꾸겠다는 것은 이후 배출권 거래제의 향방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기업들은 정부가 유엔에 제출한 온실 기체 감축 목표가 너무 높다며 반발하고 있고, 기획재정부 역시 제도 도입 당시부터 산업계 편을 들어왔으니 누더기가 걸레조각으로 변하는 건 시간문제에 불과하다. 현재 온실 기체 감축 대책으로는 배출권 거래제가 유일하다시피 하니 이 제도를 폐지하고 온실 기체 의무 감축 제도나 탄소세 등의 다른 제도를 도입하려면 사회적 논란과 갈등이 불가피하다.

이제 온실 기체 감축이라는 뼈대가 사라진 만큼 돈 거래라는 살덩이만 남은 상황이 됐다. 도입 논의 당시에도 많은 시민 단체와 민간 연구소들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할 것이라며 반대를 한 제도가 온실 기체 배출권 거래 제도다. 2005년부터 시작된 유럽 배출권 시장이 10년이 넘도록 아직도 자리조차 못 잡고 있고, 온실 기체 감축은커녕 일부 기업에게 배출권 장사 이익만 보장하는 부작용이 더 도드라졌다. 개선의 여지마저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기존 온실 기체 배출 목표관리제를 없애면서까지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이제야 발아하기 시작한 온실 기체 감축 노력을 무산시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는 2012년 국내 온실 기체 배출량이 전년 대비 0.4%에 그쳤다며 온실 기체 배출 목표 관리제와 LNG 연료 전환이 그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두 정책 모두 배출권 거래제도 이전에 정부가 오랜 기간 준비를 해왔던 제도다. 두 제도가 정말로 실효성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요인이 작용을 한 건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제도가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자신들의 평가마저 외면하고 효과가 검증된 바 없는 제도를 도입한 행위는 누가 봐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아집은 멈추지 않았다. 도대체 이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헨리 8세의 방탕한 생활 덕분에 탄생한 악화는 사후 여러 왕들이 해결을 하고자 노력했지만 위세는 더욱 커져만 갔다. 영국이 불량 주화를 퇴출한 건 명예혁명으로 시민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단행한 1696년의 화폐 대주조에 이르러서였다.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악화가 영국 사회를 지배했던 것이다. 이런 역사에서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다면 그것 자체가 악화가 될지 모른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고 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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