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엄정화, 김주혁 주연의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라는 영화가 있다. 주인공 김주혁(홍반장)은 동네 주민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나타나는 일종의 '이상적인' 존재다. 그가 까칠한 엄정화(윤해진)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갑자기 이 영화가 생각나는 이유는 수구 우익 단체 어버이연합의 '작태' 때문이다. 교육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을 위한 '비밀 태스크포스(TF)팀'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서울 종로구 국립국제교육원은 25일 밤부터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과 경찰, TF팀 직원들이 밤새 대치상태를 이어왔다.
교육부가 국정화 태스크포스팀을 비밀리에 운영해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야당 의원들이 들이닥치자 TF팀 직원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경찰에 건물 보호 요청을 한 것.
"니들 여기가 그렇게 싫으면 북한으로 가"
이러한 대치는 다음 날 오전까지 이어졌다. 문제는 26일 오전 야당 의원들이 그간 과정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시작하면서부터 발생했다.
"저 빨갱이 새끼들 이리 데려와, 니들 여기가 그렇게 싫으면 북한으로 가."
배재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발언 도중, 어림잡아도 70세가 훌쩍 넘은 노인들이 기자회견 장소로 난입했다. 경찰의 저지로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야당 의원들로서는 황당할 따름이었다.
이날 작정하고 야당 의원들의 기자회견을 방해하기 위해 어버이연합회 회원 80여 명이 국립국제교육원으로 모였다. 이들 손에는 '김일성 주체사상 가르치는 역사교과서 OUT!' 등의 손팻말이 들려 있었다.
만반의 준비도 갖췄다. 점심을 위한 김밥도 준비했고, 방송차량에 앰프까지 갖췄다. 심지어 자유롭게 오가며 발언을 하기 위해 무선 마이크까지 가져오는 '센스'를 발휘하셨다. 막걸리는 '옵션'이었다.
기자회견 장소에 난입했던 이들은 기자회견이 끝난 뒤에는 야당 의원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 출입구를 막기도 했다. 더는 '비밀 TF팀' 관련 브리핑을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각종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과 비난도 쏟아졌다. "국회의원들이 빨갱이보다 더 나쁜 놈", “문재인의 X을 XX하겠다", "니들이 6.25를 알아?" 등 원색적인 발언들도 쏟아냈다.
급기야 자신들을 막는 경찰과의 몸싸움도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어버이연합 회원 한 명이 현장에 나와 있는 혜화경찰서장을 폭행해 연행되기도 했다.
이 사태는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오후 3시20분께 해산한 뒤에야 일단락됐다.
상식도 논리도 없이 '빨갱이'만 외칠 뿐
문제적 장소에는 어김없이 나타나는 게 어버이연합회다. 레퍼토리도 똑같다. 논리도, 상식도 없이 '빨갱이'만 주야장천 외칠 뿐이다. 한마디로 '전문 싸움꾼'이다.
서울시의회의 무상급식 예산안 처리할 때, 광화문에 설치된 세월호 농성장 등에 난입해 소위 말하는 '깽판'을 쳤던 이들이다. 최근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 주신 씨 병역 의혹을 지속해서 제기하고 있다.
지난 13일에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여의도역 앞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서명운동을 벌일 때도 난입해 육두문자를 사용하며 '맞불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외에도 천안함 사태, 한미FTA 비준안 통과, 연평도 포격 등에서 어김없이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했다.
언제나 어디서나 보수정권의 위기가 닥치면 '홍반장'처럼 나서서 사태를 해결해주는 게 어버이연합인 셈이다. 이쯤 되면 관변단체라고 해도 되지 않겠나. 이 나라의 '어버이'라면서 막말, 그리고 폭행까지 일삼는 이들을 우리는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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