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7일은 신해철 사망 1주기다. 여러 방송 프로그램이 그를 기리는 특별 프로그램을 편성했다. 생전 그와 인연을 맺었던 음악인들도 공연이나 리메이크 곡 발표를 통해 동료의 이른 죽음을 사회에 다시 알리려 한다.
<인간 신해철과 넥스트시티>(권유리아 외 지음, 문화다북스 펴냄)는 신해철의 삶과 업적을 조명하는 각 분야 평론가 12인의 글을 모은 책이다. <신데렐라 최진실, 신화의 탄생과 비극>을 낸 문화다북스가 낸 두 번째 대중문화인 평론집이다. (☞관련기사 : 최진실과 함께 '신세대 문화'는 막을 내렸다!)
책은 크게 3개의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1부는 신해철에 대한 4인의 추모 헌사다. 비평적 입장을 벗어나 신해철을 그리워하는 지은이들의 마음이 수록되어 있다. 2부는 대중문화인으로서 신해철과 대중의 관계를 조명한다. 강경한 욕설을 서슴지 않는 달변가 이미지의 신해철을 소환하고, 대마초 흡입과 <100분 토론> 출연, 정치 참여로 만들어진 그의 반항적 이미지가 대중과 어떻게 호흡했는지를 분석하는 한편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스테이션> 진행으로 대표되는 신해철의 음악 외 활동에서 우리 사회와 그가 맺은 관계를 보다 확장적으로 분석하는 데 초점을 뒀다. 책의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3부는 신해철의 음악적 업적에 초점을 뒀다.
책을 읽을 때 유념할 부분은 신해철의 청년기다. 1968년생인 신해철은 군부 독재와 민주주의 쟁취의 열망이 극적으로 충돌했던 1987년 대학에 입학했다. 이후 한국 사회는 빠른 속도로 자유화·탈권위화 시대로 나아갔다. 신해철은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청년기를 보낸 셈이다. 책에서 나오듯, 비록 87년 길거리 시위에도 나가봤으나 그는 대학가요제에 출연했고, 90년대의 문을 연 아이돌로서 TV 프로그램에서 춤을 췄다. 이전에는 부활의 공연 오프닝을 책임지던 헤비메탈 뮤지션이기도 했다.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가운데 창조적 파괴의 가능성이 엿보이던 시대상 덕분에 신해철은 이데올로기만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 대신, 보다 자유주의적인 자연인이 되고자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X-세대'가 기성과 구분된 건 단순히 기성을 반대해서가 아니라 (운동권 이데올로기를 비롯해) 기존 생각의 틀 자체를 버렸기 때문이라고 볼 때, 신해철은 최초의 X-세대 스타 중 하나였던 셈이다.
이와 같은 불안정성은 그의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에도 드러난다. 신해철은 신스 팝과 한국적 록 발라드, 댄스 음악을 만든 것은 물론 헤비메탈, 전자 음악, 국악, 아카펠라 등 한 뮤지션이 다 안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다양한 음악을 탐식했다. 대개 사운드의 특질은 꽉 들어찬 편성에 과잉된 형태가 많았다(이런 특징은 마지막 앨범에 실린 A.D.D.A에서도 드러난다. 곡은 미니멀한 아카펠라 스타일이지만 고양된 기운과 여러 차례의 더빙 스타일에서 동시대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의 특징이 느껴진다.). 그는 음반 제작자로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이 때문에 한국 대중음악에 동시대 영미권 음악의 스타일을 소개했다거나 비판적 가사 쓰기의 장을 열었다는 찬사 못잖게 그의 음악적 세계가 굳건히 완성되지 않았다거나, 지나치게 다양한 장르를 맛보는 데만 그쳤다는 비판도 거셌다.
그의 음악 여정을 다룬 3부는 그가 왜 이렇게 다양한 지향점을 갖게 되었는가를 6개의 글을 통해 추적한다. 시기별로 그의 음악을 조명한 글(초기/후기), 장르별로 그를 조명한 글(전자음악/록 음악), 그리고 그의 가사에 집중한 글과 그의 음악에서 뽑아낸 정치성에 주목한 글로 이뤄져 있다.
그의 초기(파고다 키드 시절~넥스트 1차 해산 시기)에 집중한 최지선은 음악평론가 신현준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HK교수와 공동으로 진행한 신해철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성장기부터 부활의 오프닝 밴드 시절까지의 음악 여정을 세심히 추적한다. 그리고 평론가들의 문제제기에 대한 그의 당당한 반박을 근거로 당시 시대 상황 상, 오히려 다양한 방식의 접근이 더 모험적이고 공격적이었다는 점을 환기한다. 무엇보다 음악인으로서 그가 시퀀서 등 새로운 작법을 국내에 선구자적으로 도입했다는 업적을 강조하고, 그의 음악적 세계관이 점차 확장되어갔음을 조명한다.
이처럼 연대기적이면서도 디테일한 접근을 통해 최지선은 신해철 특유의 과장된 스타일의 음악 추구는 "어떤 면에서 1990년대의 정신과 같은 것"이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외환위기, MP3 시대가 도래하면서 "한 시대가 서서히 저물"었다는 점에 신해철을 은연 중 등치시킨다.
신해철의 후반기 음악적 과업을 정리한 이민희는 계속해서 새로운 음악적 영토를 탐구한 후, 이를 자기화하려던 신해철의 후반기 결과를 두고 "어느 순간 그는 헤매고 있었다. 출발점은 그에게서 점점 달아났다"고 정리한다. 한편으로 냉정해보이는 이와 같은 평가는 기실 다수 대중음악평론가의 관점과 어느 정도 일치한다. 신해철은 새로운 작법과 녹음기술을 배워와 다른 음악인에게 성장의 발판을 제공했다. 그러나 그 스스로는 그에 만족하지 못하고 연달아 새로운 음악적 세계로 나아갔다. 이는 결과적으로 그가 안정적인 음악적 발전의 밑거름을 가지 못하는 원인이 된 한편, 기성과 충돌하는 삶의 스타일의 배경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대중이 관심을 가질 만한 (광의의) 정치인, 유명인으로서 신해철을 조명한 글도 주목할 만하다. 김우필은 인터넷 발달로 흔들리기 시작한 기존 (정치) 권력에 대한 대중의 위협을 누구보다 명민하게 읽은 이가 신해철이었다고 강조한다. 신해철의 생전 인터뷰,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선언 등 그의 정치적 움직임에 주목해 "그는 스스로 음악인이기에 정치적 목소리를 표출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자연스러웠다는 결론을 끌어낸다.
이어 저자는 신해철의 노무현 대통령 후보 지지 연설을 두고 그의 "정치적 선언이 아니라 문화적 선언"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해철은 노무현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정치 세력을 지지한 게 아니라 "노무현이라는 한 사람이 상징하는 탈권위주의, 거대담론의 해체"를 지지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서정민갑은 그의 초기작 여러 곡에서 드러난 주제의식인 '나의 인식'을 두고 "1990년대 한국 사회에서 '나'라는 담론은 이전 시대와 1990년대를 구별하는 대표적인 담론"이었다는 점을 끄집어내고 "신해철은 민중가요 바깥에서 비판적인 시선을 드러내고 정치적인 발언을 표출했으며 기존의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은 곡들과 다른 입장과 시각을 드러냄으로써 한국 대중음악을 더 풍성하게 했다"고 평한다. 그러면서도 "개인이 어떻게 함께 진실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찾기는 어려"웠다며 "신해철의 정치적 인식이 가진 특징이자 한계였으며 1990년대의 한계이기도 했다"고 평한다.
이처럼 책은 고인을 추모하는 형태의 상찬에서부터 비평가적 엄격한 잣대까지 거르지 않고 담아냈다. 덕분에 대중은 신해철을 지나치게 신화화하는 위험에서 벗어나 그의 업적을 찬찬히 되새겨 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신해철에게 관심이 없던 이나 그의 성취에 둔감했던 이는 디테일한 사실과 시대상을 고려한 글을 통해 그가 한국 음악계에 남긴 업적이 컸음을 발견할 수 있다.
신해철은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머물러 있던 인물이다. 학벌, 외모 등 주류 스타가 될 수 있었던 여러 자산을 스스로 차버리고 "록 밴드 전성시대를 열겠다"는 호방함을 드러낸 한편, 대학가요제 출신 OB 모임에 나가고 아이돌과 함께 호흡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면에서 그는 평생을 안정을 버리지 않고 불안정의 바다에 몸을 내던진 인물이다. 물론 다른 해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인간 신해철과 넥스트시티>는 신해철이라는 복잡한 인물을 다양한 시선으로 해석할 근거를 제공하는 책이다. 그의 사망 1주기를 두고 보다 풍성한 논의의 장이 열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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