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개각을 단행했다. 메시지는 명확하다. 2016년 총선을 박근혜 대통령의 리드하에 치르겠다는 것이다.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과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의 교체도 그렇고, 기획재정부나 교육부 차관 교체 역시 현 장관인 최경환 부총리나 황우여 부총리의 당 복귀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무성하다. 한켠에서 윤상현, 김재원 두 청와대 정무특보의 사임도 눈에 뛴다. 모두 소위 대표적인 친박계 인사들로 분류되며 이들을 당으로 돌려보내 새누리당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이들을 선두에 세워 총선을 치르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추진하는 총선 준비를 마냥 백안시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대통령은 한 나라의 통치자이지만 또 새누리당이라는 정당의 후보로 선출되어 당선된 인사다. 따라서 새누리당이라는 정당의 리더로서 박근혜 대통령의 역할이 있을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전의 다른 대통령들과 다르게 탈당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새누리당 당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명분도 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대통령의 임기와 3년이나 차이가 나는 다음 총선에 개입하려 하는 것이 어떤 의도인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는 것이 더 큰 의구심을 자아낼 수 있을지라도 말이다.
문제는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정치에 필요할 때만 '정당의 리더'로 돌변한다는 것이다. 명확하게 정당정부로서의 박근혜 정부의 정체성을 밝히지도 않으며 행정부의 수장이라는 지위만 강조하며 정당과 국회에 거리두기를 넘어 일전 싸움도 불사한다. 정작 새누리당과 야당들이 어렵게 합의한 내용들에 대해서는 이례적이다 할 만큼 공개적인 비난과 비토를 서슴치 않는 모습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목도한다. 세월호 시행령에서 촉발된 국회법 문제가 그러했고 이어진 유승민 전 원내대표에 대한 압박도 마찬가지 였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공천 문제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정당 내 파워 게임에서는 명확하게 청와대가 정당의 한 리더십을 구사하는 것이다.
지난 번 김무성-문재인 대표가 안심 번호로 오픈프라이머리를 하겠다고 합의했을 때 청와대가 반발했던 것이 한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가끔 정당의 이해관계와 청와대의 방향이 맞아 떨어질 때만 역할 분담의 모습을 잠시 보여준다. 최근 국정 교과서 사태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오랜만에 적절한 역할 분담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차라리 이렇게 되면 국정 교과서 논란에 대해서 시민들은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적절한 책임을 향후에 물을 수 있게 된다. 국정 교과서라는 이슈의 찬반을 떠나서 정치적으로는 차라리 올바른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정작 정당의 리더로서 책임을 지지 않은 채 늘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의회 정치와 청와대 정치 모두를 손에 넣고 움직이고 견제 받지 않으려 할 때는 결국 권력자의 욕심만 부각되게 마련이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항간에 돌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수렴첨정의 방식으로 정치를 조종하려 한다는 소문이 나름 설득력을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당을 통해 책임지지 않는 정치는 음험한 '공작'에 불과하거나 노회한 권력 욕심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차라리 새누리당이라는 정당의 주요한 리더임을 천명하고 책임도 함께 지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정당의 주요한 리더들이 정작 '행정'이라는 이름 뒤에서 거리두기를 하는 모습은 야권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야권의 주요한 리더들 중 시장, 또는 도지사 등을 하고 있는 인물들 대부분은 정당의 당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논란에 논란을 거듭하는 정당 내부의 정치에 발언하거나 공동의 책임을 지는 모습은 극히 드물다. 역시 자신들의 주요한 정체성을 시장이나 도지사에 먼저 두고 정당은 필요한 순간에만 잠시 복귀하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행태가 반복되면 정치에 대한 명확한 책임을 주요한 리더들에게 물을 수 없게 한다. 현재 야권이 정당으로서 여당보다 현저히 약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주요한 리더들이 책임지지 않는 정치는 결국 늘 다른 희생양을 필요로 하게 마련이다. 아마도 그 최대의 희생양은 작금의 혼란과 어려움에 대한 책임을 물을 정치 주체를 찾지 못해 결국 실망과 냉소로 식어버리는 시민들의 열정이 아닐까. 어쩌면 지금 한국의 정치라는 것은 시민들의 열정을 희생양으로 삼아 움직이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서로가 식어버린 시민들의 열정을 되살리기 위해 결국 적대적 갈등을 반복적으로 서로가 동원하려 한다는 혐의를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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