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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할 수 있는 일이 '뻥파업'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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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할 수 있는 일이 '뻥파업'뿐인가?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덫에 빠진 노동의 미래

쐐기 쟁점

나무를 쪼갤 때 잘 갈라지도록 틈에 쐐기를 박는다. 쐐기처럼 여론을 갈라지게 하는 이슈가 '쐐기 쟁점'이다. 분단 상태에서 남북 간에 지뢰가 터지고 미사일을 쏘면 곧바로 여론은 그쪽으로 몰린다. 종북 논란도 보수층을 결집하고 진보를 빨갱이로 몰아붙여 갈라치기하는 쐐기 쟁점이다. 진보 쪽에서는 친일과 독재를 쐐기 쟁점으로 활용하곤 한다. 쐐기 쟁점을 이용해 상대를 구석으로 몰아붙이고 불리한 여론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

노동 문제가 쐐기 쟁점이 되었다. 기득권 세력들이 지속적으로 유포한 '귀족 노조' 프레임은 '정규직 노조'에 대한 혐오와 연결된다. 노조 일반에 대한 혐오로 확장되어 '반노조 친기업'의 프레임을 이룬다. 불행하게도 이 프레임은 모든 노동 시민을 실업의 공포와 일자리 경쟁에 빠지게 하여 우리 삶을 가르는 쐐기가 되었다.

정부·여당과 기득권 세력은 노동 시장 개혁 하나를 덧붙여 추진한다. '청년 세대'를 부각시켜 기성세대와 대비한다. '헬조선'에 대한 한탄을 민주노총을 포함한 기성세대를 향한 공격으로 돌리려 한다. 프레임의 함정에 빠져 있으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결국은 지배적 프레임의 늪에 더 깊이 빠진다. 불리한 지형에서 싸우면 싸울수록 피해는 늘어간다. 군사들은 싸울 용기를 낼 수 없다.

주장과 처지의 어긋남

민주노조 운동의 주장과 실제 현실의 처지는 어긋나 있다. 첫째, 민주노총의 주장은 정규직 이해관계가 중심이나, 입장은 다수의 비정규직에 포위된 현실에 놓여있다. 아직까지 민주노총은 "해고는 살인"이라고 외치지만, 비정규직들에게 "해고는 일상"이다. 심지어 한 드라마(<어셈블리>)에 나온 것처럼 실업한 청년들에게 "해고는 꿈"이다. 일단 고용되어 봐야 해고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민주노총의 주장은 쉬운 해고 반대를 외치지만, 실제 처지는 '해고의 공포'에 포섭되어 있다. 오랫동안 '해고 반대→강력 저항→해고 공포의 확인→일자리 우선론의 확산→일자리를 위한 기업 살리기'로 이어지는 '친기업 프레임'이 확산되었다. 이런 프레임 아래서 민주노총이 '노동 시장 개혁'이 불러올 일반 해고의 위험을 부각시켜 일시적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몰라도 원하는 최종 결과를 얻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셋째. 민주노총의 주장은 마당 밖(場外)에 있지만, 실제 처지는 마당 안(場內)에 있다. 민주노총 소속 노조 대부분은 쟁점을 둘러싼 협상이 가능한 협상 테이블 안에 있다. 90%의 노동자들은 협상의 테이블 밖에 있다. 민주노총은 소속 노동조합과 달리, 기업을 넘어선 협상의 마당인 노사정위원회의 밖에 있다. 민주노총은 마당 밖의 노동자들을 투쟁에 동원도 못하고, 협상장 밖에서 움직이느라 협상장 안에 있는 소속 노동자들을 협상 테이블에서 전혀 대변도 못한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의 주장은 '총파업'이지만 현실의 처지는 '뻥파업'으로 반복되어 나타난다.

ⓒ프레시안(허환주)

착시의 덫

노동 시장 재편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 '노동 시장 개혁'이란 실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이미 15년 전 부터 노동 시장은 바뀌었다. 지금 노동 시장 개혁은 단지 재편된 노동 시장을 더 확실하게 다지는 정도에 불과하다. 말로는 너무나 자주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었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노동계가 노동 시장 재편을 실질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니 두 가지 착시가 발생한다.

첫째, 노동 시장은 재편되었고, 다만 지금 '노동 시장 개혁'은 양을 좀 더하는 것에 불과함에도 '노동 시장 개혁'은 '심각한 위기'로 비춰진다. 둘째, 노동 시장 재편이 심각하고 새로운 위기라고 하면 지금 당장 '총 총파업' '총 총궐기' 이상의 행동으로 이를 막아야 한다. 그야말로 '몰빵' 해야 할 일이 된다. 노조들이 상투적으로 외치는 그야말로 목숨까지도 거는 '결사(決死) 투쟁'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 시장 재편이 오래되었다는 것은 노동 시장 재편을 막는 데 "이미 우리가 실패"했다는 얘기다. 패배한 싸움을 그대로 연장하면 이길 가능성은 매우 낮다. 노동 시장이 오래전에 바뀌었다는 시각에서 보면 전혀 달라진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미 해고가 일반화된 불안정한 노동자들의 처지에서 요구를 발견하고 행동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노동 시장이 바뀌었다는 것은 과거의 노동 시장에서 생각하던 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 가지 길

민주노조 운동의 선택을 압축하면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계속 더 몸부림치면서 덫에 더욱 깊이 빠져드는 길이다. 쐐기 쟁점, 주장과 처지의 어긋남, 두 가지 착시는 민주노총이 빠져있는 세 가지의 덫이다. 이 상태에서 민주노총이 쥐게 될 결과는 빤하다. 우연적인 계기들의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더 깊은 패배의 절망감을 다시 안겨줄 뿐이다. 특히 최근에는 모든 문제를 정권에 대한 투쟁으로 돌리는 '기승전박(근혜)'의 사회운동 패턴이 두드러진다. 그러니 '노동 시장 개혁'이라는 쐐기 쟁점을 던지면, 덥석 물어 박근혜 정권 반대 투쟁을 한다. "노동자 총파업으로 청와대로" 향하고 "민중 총궐기로 청와대로" 가려는 애절한 분노를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이제는 무기력한 반복을 성찰할 때를 이미 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둘째는 장내와 장외의 과도기적 정치를 하는 길이다. 이미 조직된 노동자들의 상당수는 장내 정치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 총파업에 기대기보다 취업 규칙 개정에 대해 개별 동의로 할 수 없도록 합의한 노조도 있다. 임금을 깎는 정도와 연한을 낮춰 임금 피크제를 사실상 수용한 노조도 있다.

임금 피크제의 뿌리에는 '일자리 우선' 프레임이 작용한다. 퇴직하면 갈 곳이 없는 대기업의 노동자 중엔 임금 약간 덜 받더라도 고용이 연장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정년 피크제로 청년층의 고용이 늘어날 가능성이 없다고 해도, 이를 근거로 '노동 시장 개혁' 결사반대라는 '전부 아니면 전무'의 태도를 취해야 할까? 임금 피크제를 실시하는 연수와 임금 삭감 정도를 청년 고용과 연계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실제 기업들의 청년 고용을 하지 않으면 임금 피크제의 정도를 낮추거나 아예 무력화하도록 연계하는 방식이다.

이런 대응에는 전략이 분명해야 한다. 일자리 프레임의 덫을 빠져나가기 위한 기초가 되는 내용을 회사나 정부가 수용하도록 하면서 이를 지렛대로 협상해야 한다. 더 과감하게 부자들의 소득을 일정 수준에서 제한하는 소득 피크제를 실시해 대신 최저 임금과 복지 등 사회 임금을 늘리자고 할 수도 있다. 어떤 정치도 어떤 협상도 없는 투쟁은 세상에 없다.

셋째는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는 새로운 출발이다. '노동 시장 개혁'에 맞서 야당과 민주노총에서 '노동 시간 단축을 통한 청년 일자리 창출'이나 ''노동 시장 개혁'보다 재벌 개혁 먼저'를 주장하고 있다. 필요하다. 그러나 프레임 전쟁은 일시적으로 만든 구호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총이나 야당이 재벌 개혁을 위해 얼마나 지속적인 노력을 해왔을까? 야당도 재벌 편향의 과거를 부정할 수 없다. 민주노총의 정규직들이 '일자리 프레임'을 중심으로 비정규직의 희생에 동의하면서 재벌과 타협해서 '고용 동맹'을 맺었던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가? 슈퍼 재벌인 삼성에 맞선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투쟁, 밴드아웃에 시달리는 수많은 협력사 비정규직들, 엘지와 에스케이 등 수리·설치 기사들의 재벌에 맞선 투쟁을 일시적 집회를 넘어서 지속적인 재벌 개혁의 상징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과 실천이 있었는가?

'노동 시간 단축'을 위해 금속노조에서 일부 심야 노동 철폐를 위한 주간 연속 2교대제 시도가 있었지만, 대공장들은 임금과 노동 시간을 대립시키며 관성을 넘어서지 못하고 타협에 머물고 말았다. 노동 시간 단축 운동을 다시 불붙이려면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해고 공포-일자리 우선-기업 성장'이라는 노동과 자본이 공동 흡연하는 성장론과 노동 시간 단축은 대립한다. 성장론 프레임의 뿌리를 공유하고 있는 노조가 새로운 비전을 만들 수 없다. 성장이 불가능한 시대에 여전히 노조들은 "일자리=생산량=기업 성장"의 성장론을 가지고 있다. 이러니 노조가 바로 곁의 환경 문제에도 둔감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전략과 실천

노조가 취할 길은 세 번째이다. 정부나 자본이 "코끼리"를 말하면 코끼리 생각에 휩싸이는 프레임의 덫을 과감히 빠져 나와 새로운 프레임을 세워가는 새로운 전략과 실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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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시민들이 복지국가 만들기에 직접 나서는, '아래로부터의 복지 주체 형성'을 목표로 2012년에 발족한 시민단체입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사회복지세 도입, 기초연금 강화, 부양의무제 폐지, 지역 복지공동체 형성, 복지국가 촛불 등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칼럼은 열린 시각에서 다양하고 생산적인 복지 논의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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