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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와 싸우는 '드로잉', 영원할 수 없지만…"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한남포럼 열려

"음악이 생산되려면 연습실, 장비 등이 갖춰져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이를 충족하는 게 무척 어렵다. 그간 인디음악의 근간을 만들어온 홍대는 지대가 말도 안 되게 올랐다. 월세 70만 원이었던 곳이 지금은 180만 원까지 올랐다. 더는 버틸 수 없게 됐다."

황경하 자립음악생산조합 기획자는 한숨을 쉬며 더는 자립음악가, 즉 인디뮤지션들이 설 땅이 없다는 것에 절망했다. 음악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생태계 자체가 무너진 지 오래라는 것.

홍대에서 자립기반을 마련하고 활동하던 인디음악가들은 홍대를 떠난 지 오래다.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워지면서부터다. 연남동, 망원동으로 흩어졌지만 거기도 매한가지다. 홍대와 마찬가지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물적 인프라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몇몇 사람이 고민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닌 듯"

이를 그냥 두고 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18일 서울 한남동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열린 세 번째 한남포럼 '재난의 공공성 : 위기의 순간엔 축제를'에 참석한 황경하 씨는 그간 자립음악생산조합이 음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쏟은 노력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과도하게 진행된 홍대 이외 지역에 새 인프라 구성을 준비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한국예술종합대학 석곽캠퍼스 학생회관 지하부터 문래동 '로라이즈', 한남동에서 운영됐던 '꽃땅' 등은 모두 인근 주민의 민원 문제, 계약기간 만료 등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황경하 씨는 "홍대 이외에서 음악 생태계를 만들고자 노력했지만 모두 실패했다"며 "만약 앞으로도 적절한 대안을 찾지 못한다면 한국의 음악사에서 산업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인디'라 불리던 흐름은 새로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맥이 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황 씨는 "(인디음악을 시작하는 이들 중) 훌륭한 분들이 많다. 그들을 잘 키우고 이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그런 분들이 이곳을 떠난다면 지금의 음악 생태계는 더 엉망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황 씨는 "하지만 이런 문제는 몇몇 사람이 고민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닌 듯하다"며 "전쟁이 나지 않는 이상 인디뮤지션들은 지속해서 떠돌아 다녀야 하지 않나 싶다"라고 토로했다.

▲발언하고 있는 이정모 관장. ⓒ프레시안(허환주)

"인류, 멸종 늦추려면 '공존'을 고민해야 한다"

비단 이러한 현상은 인디뮤지션들만 겪는 게 아니다. 이날 포럼이 열리는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도 마찬가지다. '드로잉'은 문화‧예술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가수 싸이가 건물주가 된 뒤, 재건축을 이유로 '드로잉' 측에 나가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명도소송이 진행 중이다.

<공생, 멸종, 진화>의 저자이기도 한 이정모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 관장은 문화예술인들이 쫓겨나는 현상이 가속화 할 경우, 건물주도 안녕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구 역사 과정에서 나타난 '멸종'이라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를 설명했다.

이 관장은 멸종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만을 내포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개체종의 멸종이란 생태계의 빈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 멸종에 따라 자연스럽게 새 종이 생겨난다고 이 관장은 설명했다.

"멸종이란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환경에 생명이 적응하면서 진화해 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무수한 멸종과 대멸종 덕분에 지금 인류가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으며 대멸종은 멸종과는 차원이 다르다. 멸종이 생태계 내 빈자리를 몇 개 만들어 새로운 생명을 등장시키는 기회라면 대멸종은 생태계를 거의 텅 빈 공간으로 만들어서 전혀 새로운 생명의 역사가 시작하는 대역사다."

이 관장은 "자연사란 대멸종의 역사"라며 수억 년이나 바다를 지배했던 삼엽충도 사라졌고, 커다란 몸집과 신비로운 몸 설계로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들도 한순간 사라졌다. 그러면서 그 빈 공간에 인류가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현재 지구는 여섯 번째 대멸종이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이 관장은 "사람들은 여섯 번째 대멸종이 뭐가 대수냐고 하지만 이는 걱정해야 하는 부분"이라며 "지난 다섯 번의 대멸종을 보면 최고포식자는 반드시 멸종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최고 포식자는 인류이기에 대멸종은 인류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이 관장은 "우리 인류는 지난 대멸종에서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지속할 수 있느냐를 고민해야 한다"며 "다른 생명과 같이 사는 것을 고민하고 먹이 사슬을 촘촘히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 내부 모습. ⓒ테이크아웃드로잉

"카페 드로잉, 이 자리에 영원히 있을 수 없다, 하지만…"

하지만 지금 모습을 보면 '공존'은 불가능해 보인다. 다른 생명과의 공존은 고사하고 이웃과 공생하는 방법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관장은 대표적인 공간으로 가수 싸이와 분쟁을 겪고 있는 카페 '드로잉'을 예로 들었다.

이 관장은 "문화 공간이 하나둘씩 사라지면, 그 자리에 다른 문화공간이 들어오게 된다"며 "하지만 모든 문화공간이 우르르 일순간에 사라지면 다른 모든 경계공간도 다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갯벌에 다양한 철새가 사는 이유는 여러 먹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갑각류를 먹는 새부터 조개를 먹는 새까지 다양하다. 이는 갯벌 생태계를 유지하는 기본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특정 종 전체가 사라진다고 가정해보자. 예를 들어 물고기가 사라지게 된다면, 이를 먹는 새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물고기의 먹잇감이었던 생물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결국, 생태계는 망가지면서 모든 생물종이 사라지게 된다."

이 관장은 "카페 드로잉이 이 자리에서 영원히 있을 수 없다. 드로잉이 사라지만 또 다른 누군가가 이 자리를 채울 것이다"라며 "하지만 그 없어질 때까지는 시간과 여유가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수도 못 쉬게 밀려나서, 일거에 생태계에서 사라져버리는 식은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 관장은 "일부는 공생을 멈추면 '나는 살아남을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듯하다"며 "하지만 그 결과가 우리 모두의 멸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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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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