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최창영 부장판사)는 15일 조 전 비서관에게 "대통령기록물을 반출하거나 공무상 비밀을 누설한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박관천(49) 경정에게는 징역 7년과 추징금 4340만 원을 선고했다.
박 경정 역시 대통령기록물 관리법 위반은 무죄로 판단됐지만, '정윤회 문건'('청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 동향')을 조 전 비서관의 지시 없이 독자적으로 유출한 것으로 판단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박 경정은 문건 유출과 별개로 유흥업소 뇌물수수 혐의도 유죄로 인정됐다.
검찰은 조 전 비서관 지시로 박 경정이 2013년 6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정윤회 씨의 국정 개입 의혹을 담은 문서 등 청와대 내부 문건 17건을 박근혜 대통령의 친동생 박지만(57) EG 회장 측에 수시로 건넸다는 혐의로 올 1월 두 사람을 기소했다.
재판부는 박지만 회장의 요구로 그에 관한 감찰 업무를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담당하면서 박 회장과의 친분을 사칭하는 이들의 정보를 수집해 그 내용을 문건으로 작성, 비서실장에게 보고하고 주의를 촉구할 필요가 있으면 이 문건을 추가로 출력하거나 복사해 박 경정이 박 회장 측에 전달했다고 봤다.
이렇게 전달된 문건은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보고한 원본이 아니라 추가 출력물이거나 사본이어서 대통령기록물 관리법상 규정된 기록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재판부는 "대통령기록물 관리법은 기록물 생산 주체를 명확히 하고 효과적으로 관리·보존해 대통령 직무수행의 역사적 책임성을 강화하고 국가정책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제정됐다"며 "원본이 기록관에 이관돼 보존되면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 추가 출력물이나 복사본 보존까지 강제할 필요는 없어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검찰의 주장처럼 추가로 출력된 문서가 존재하는 경우에 모두 기록물로 관리해야 한다면 사본이 얼마가 존재하든 전부 보존하고 훼손시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어서 불합리하다"고 덧붙였다.
조 전 비서관의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에 관해서는 "모두 특별감찰 직무범위 내에서 이뤄졌고 박지만 회장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통보하는 취지가 '조치 건의' 문구 등으로 기재돼 있어 비서실장에게 보고가 이뤄진 상황이라면 법령에 의한 직무수행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정윤회 문건'의 경우에는 "조응천 전 비서관이 전달을 지시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문건 형식도 다르다. 박관천이 정윤회씨에 대한 박지만 회장의 관심을 인지하고 지시 없이 전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이어 "내용의 진위에 관계없이 비서실에서 확인을 마치지 않은 단계에서 보호될 가치가 있는 공무상 비밀에 해당한다"며 이 문건을 전달한 박 경정의 행위를 공무상 비밀누설죄로 인정했다.
박 경정은 이 사건 이후 유흥주점 업주에게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추가 기소된 부분 중 두 차례에 걸쳐 골드바 6개(4340만 원 상당)를 받은 사실이 인정돼 형량이 높아졌다.
'헛심' 쓴 검찰…'과잉 기소' 지적
작년 말 정국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던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을 놓고 대부분의 문건 내용 유출 행위에 죄를 물을 수 없다는 1심 판단이 나오면서 검찰이 '헛심'을 쓴 모양새가 됐다.
검찰이 문건 유출의 배후로 지목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에게 법원은 15일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정윤회 문건'으로 불리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내부 문건을 토대로 '비선실세'가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세계일보의 작년 11월 보도를 청와대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면서 확대됐다.
문건과 보도의 진위를 따져 명예훼손 여부를 가리는 고소·고발 사건이었다.
하지만 문건 내용의 진위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커지자 박근혜 대통령이 작년 12월1일 "문건 유출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며 철저한 의혹 규명을 주문했고 검찰의 수사 강도는 높아졌다.
서울중앙지검은 형사1부뿐 아니라 특수2부까지 수사에 투입했다. 신속하게 문건의 진위를 가려내고 청와대 문건이 유출된 경로까지 파악해 책임자를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문건의 정윤회 씨의 국정 개입 의혹은 수사 중반인 작년 12월 중순 이미 허위로 결론내려졌다.
이른바 '십상시 회동' 등 의혹을 뒷받침할 문건 내용이 객관적 사실과 들어맞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일부에서는 수사 '가이드라인' 논란이 불거졌다.
의혹 내용이 터무니없다는 청와대의 입장과 맞아떨어지는 결론이 신속하게 내려졌다는 점 때문이었다.
검찰은 논란을 뒤로하고 문건 유출을 수사하는 데 주력했다.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지시로 박관천 경정이 '정윤회 문건'을 비롯한 청와대 내부 문건 17건을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 측에 수시로 건넸다는 결론을 내렸고 올해 1월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을 기소했다.
대통령기록물이자 공무상 비밀에 해당하는 문건을 밖으로 빼냈다는 혐의가 적용됐다.
9개월가량 이어진 1심 재판 끝에 법원은 조 전 비서관에게 무죄를, 박 경정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17건의 문건 중 유출 행위가 공무상 비밀 누설로 보이는 건 '정윤회 문건' 1건뿐이었고 그나마 박 경정의 단독 범행이라고 법원은 판시했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는 아예 인정되지 않았다.
박 경정이 중형을 선고받은 건 문건 유출과 무관하게 별도로 기소된 수뢰 사건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청와대 문건 유출의 책임을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에게 물으려던 검찰은 1심 판결로 민망한 처지가 됐다.
검찰은 "법원의 선고 이유를 정확히 파악하고 판결문을 검토해서 항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입장만 내놨다.
한 법조계 인사는 "항소심과 상고심 재판이 남아 있으므로 판단하기 이르겠지만 1심 판결만 놓고 보면 검찰이 문건 유출 사건을 실제보다 과잉 해석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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