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9월 2일 한-중 정상회담 이후 박 대통령은 "조속한 시일 내에 중국과 평화통일을 위해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는데, 북한 입장에서 이를 흡수통일로 받아들이고 대화의 문을 걸어 잠근 것이라는 진단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이른바 '통일 외교'는 유엔총회에서도 이어졌다. 통일을 위해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협조도 중요하다고 강조했고,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국제사회와 함께 경제적인 협력을 추진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을 떠올리는 발언도 나왔다.
정 전 장관은 박 대통령의 발언이 당국회담을 열기 힘들게 하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면서, "만약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또 나온다면 8.25 합의로 약속한 당국 회담은 정말 물 건너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오는 10월 10일 북한의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중국은 공산당 서열 5위인 류윈산(劉雲山) 상무위원을 북한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도 사실상 연기 또는 취소되는 분위기다.
정 전 장관은 현 상황에 대해 "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과 마주 앉아 6자회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좋은 환경이 된 것"이라며 "한-미 양국 정상이 대북 제재를 강화하거나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을 사전에 억제하기 위해 긴밀히 협조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오히려 뜬금없어진 셈"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북한의 로켓 발사는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다시 튀어 나올 수 있는 '이벤트'임에는 분명하다. 정 전 장관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쏠 가능성이 있다"면서 "만약 한-미 정상회담에서 강경한 대북발언이 나오고 이후 후속 조치로 한-미-일 3각 동맹이 강화된다면 여기에 대한 견제구를 던지는 차원에서 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인터뷰는 지난 6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의 사회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평화협력원 황재옥 부원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프레시안 : 오는 10월 16일 한미 정상회담이 열립니다. 이 회담에서 북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면 남북관계 진전이 필요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한반도와 동아시아 문제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끌어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진전이 필수적이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8.25 합의 이후 이산가족 상봉 외에는 별다른 진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정세현 : 8.25 합의 이후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는 최소 한 달 이라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남북 간 대화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9월 초에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실무 접촉을 열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기술적인 문제를 다루는 '접촉'이지, 관계 개선의 계기를 만드는 '회담'은 아닙니다.
우리 쪽에서 신호를 보냈는데 북한이 응답이 없는 것인지, 아예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설사 우리 쪽에서 제안을 했더라도 북한이 받기가 어려운 상황을 우리가 만든 측면이 있습니다.
우선 대북 전단 살포 문제가 있습니다. 그동안 남북대화 재개와 관련해 북한이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은 대북 전단 살포를 중단이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견인불발(堅忍不拔)의 자세로 전단 살포는 헌법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라면서 버티고 있습니다. 이러면 대화가 성사되기 어렵습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때문입니다. 지난 9월 2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은 "조속한 시일 내에 평화통일을 위해 중국과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발언이 북한을 상당히 자극했을 것입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흡수통일'로 해석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박 대통령은 유엔총회 참석차 9월 말 미국을 방문했을 때도 이와 비슷한 발언을 했습니다. 북핵과 인권문제, 도발과 같은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한반도 통일이고, 이를 위해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가의 협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이 메시지에 대해 '박근혜 정부가 중국과 이미 흡수통일 논의를 했는데, 오는 10월에 미국하고도 할 생각인가 보다'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또 나온다면 8.25 합의로 약속한 당국 회담은 정말 물 건너갈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정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박 대통령과 '조속한 시일 내에' 통일에 대해 논의하자고 말했을까요?
황재옥 :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내용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 외교부는 "중국은 조선 반도의 자주적, 평화적 통일을 지지한다"라고만 표현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조속한 시일 내에 평화통일을 논의하자고 했는데 중국이 면전에서 거부하지 않으니까 중국과 합의가 이뤄졌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외교부에 올라온 공식 문구는 박 대통령의 발언과 다른 의미입니다.
지금 북한과 중국 관계는 상당히 경직돼있습니다. 내년 정상회담을 점치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지만, 현재 상황을 봐서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중국이 조속히 평화통일에 대해 논의하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겠습니까?
중국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입장은 예전부터 동일합니다. 자주적이고 평화적 통일을 지지한다는 건데요. '자주적'이라는 말은 미국을 등에 업고 통일하지 말라는 겁니다. '평화적'이라는 말은 무력을 쓰지 말고 남북이 알아서 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무력을 쓰지 말라는 것은 통일의 기운이 무르익었을 때 비로소 통일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 전제로 깔려 있는 겁니다. 그만큼 통일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뜻으로, 박 대통령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맥락입니다.
8.25 합의 이후 박 대통령이 이른바 '통일 외교'에 꽂혀있는 것 같습니다. 흡수통일을 전제로 한 통일 외교인데요. 계속 이런 식이면 북한은 당국 회담을 받지 않을 겁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북한은 박근혜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통일 문제는 많이 거론하지 않았는데 이런 반응이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황재옥 : 박 대통령은 유엔 총회 연설에서 "북한이 과감하게 핵을 포기하고 개방과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와 힘을 모아 북한이 경제를 개발하고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건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과 다를 바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 남북관계는 전무한 실정이었습니다. 이어 집권한 박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꺼내 들며 이명박 정부와 차별화된 대북 정책을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에 북한도 나름의 기대가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번 유엔 총회에서 박 대통령이 '비핵·개방·3000'과 유사한 발언을 했으니, 북한 입장에서는 저런 정권과 만나서 뭐하냐는 생각을 하지 않겠습니까?
'비핵·개방·3000'은 북한이 비핵화를 먼저 달성해야만 국제사회와 손잡고 북한과 경제 협력을 추진하겠다는 정책입니다. 그전에는 남북 경협 확대도 없다는 겁니다. 박 대통령이 이런 입장을 밝혔으니, 북한에서는 우리한테 얻을 게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정세현 : 한편으로는 북한은 남한 정부가 개혁개방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대단히 민감합니다. 과거 장관급 회담에 대해서도 이 부분에 대한 논쟁이 많았습니다. 북한은 개혁개방은 '우리가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지, 남한이 유도·권고·강요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습니다.
심지어 지난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을 할 때도 이 문제가 거론된 적이 있습니다. 10월 3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회담이 있었는데, 수행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들어오면서 노 대통령은 "보따리 싸고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일정이 하루가 남은 상황이라 판을 깰 수도 있는 위험한 발언이었습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앞으로 개혁개방이라는 말도 쓰면 안 되는 거냐며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아마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쪽에서 개혁개방을 너무 강조한다, 기분 나쁘다 이런 불만을 제기한 것 같았습니다.
노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런 말도 못 쓰면서 어떻게 대북 정책을 할 수 있겠냐며, 살짝 좌절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물론 한편으로는 고도의 협상 전술일 수도 있습니다. 잘못하면 판이 깨질 수도 있으니 김정일 위원장이 좀 살살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김 위원장의 귀에 들어갈 수 있게 상황을 만든 것이죠. 실제로 그날 오후 회담은 상당히 잘됐다고 합니다.
이런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한은 남한 당국자들이 개혁개방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민감합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발언을 박 대통령이, 그것도 유엔 총회에가서 이야기했으니 북한은 엄청 기분 나쁠 겁니다.
북한, 장거리 로켓 언제 쏘나
프레시안 : 8.25 합의 이후 한반도 분위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이 노동당 창건 70주년인 10월 10일 전에 장거리 로켓을 발사할 것이라는 관측이 곳곳에서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10일 전에 발사하는 것은 어려워졌는데요. 중국이 공산당 서열 5위의 고위 인사인 류윈산(劉雲山) 상무위원을 북한에 보내겠다고 결정한 것이 주요한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일단 중국은 현지시간으로 지난 9월 25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군사적 행동을 막기 위해 강한 경고를 날렸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뒤로는 북한을 달랬을 겁니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는 '북핵 불용'이라는 표현을 빼고 '한반도 비핵화'만 넣었습니다. 미-중 정상회담 이후 가진 기자회견 때와는 다소 다른 입장입니다. 중국은 자기들이 이렇게 기록으로 남겼다면서 북한에 "너희들 체면 봐준 거니까 핵 이나 미사일 실험 하지 마"라고 이야기했을 겁니다.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는 절대로 북한의 비핵화와 동의어가 아닙니다. 중국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한반도 주변에서 주한미군 함정에 싣고 다니는 핵무기도 한반도 내로 들어오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북한 핵 문제에 대해 미-중이 합의한 것 같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프레시안 : 중국이 류윈산 상무위원 파견을 통해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를 사실상 지연 내지 무산시킨 셈인데요. 8.25 합의 이후 대화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도록 중국이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정세현 : 그렇긴 하지만 중국이 이렇게 움직이는 것은 한국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중국이 북한의 도발이나 위협을 자제시켜주는 건설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중국은 아시아 질서를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미국에 책잡힐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의도가 더 큽니다. 그동안 미국이 중국을 압박해 들어오는 구실로 북한 문제가 계속 활용됐기 때문입니다.
아시아에는 남사군도 문제도 있습니다. 중국이 암초 위에 비행장을 만들고 있는데, 여기에 레이더 기지까지 설치하면 인도양으로 가는 길목에서 미국 비행기나 선박의 움직임을 소상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이 남사군도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중국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이 자기들을 압박할 수 있는 구실을 줄여가기 위한 차원에서 북한의 행동을 자제시키는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그럼 북한은 장거리 로켓 발사를 포기한 건가요?
정세현 :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에 북한이 급하게 하지 않은 데는 중국의 체면을 생각하는 측면도 있었을 겁니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과 오바마가 만나 북한에 군사적 도발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는데도 불구하고 보름 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로켓을 쏜다는 것은 중국의 입장을 너무 곤란하게 하는 것 아닙니까?
북한이 중국에 "한-미 정상회담에 이 정도 이야기가 나왔는데도 가만히 있어야 하느냐"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한-미 정상회담에서 강경한 대북 발언이 나오면 분명히 쏠 겁니다. 또 이후 후속조치로 한-미-일 3각 동맹이 강화된다면 북한이 여기에 대한 견제구를 던지는 차원에서 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이 미국을 6자회담 테이블로 끌고 나올 때
프레시안 : 한-미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까요?
정세현 : 북핵 문제의 전기를 마련해보자는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쉽지 않지만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수정해 달라고 유도해야 합니다. 북한의 선행동에서 미국의 선행동으로, 중국 역할론에서 한국 역할론으로 북핵의 해결 방법을 바꿔야 합니다.
물론 남북 당국회담이 당국회담 성사되고 다음번 만날 날짜까지 잡은 상태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면 북핵 문제 해결에 시동을 걸어보자는 이야기를 미국에 하기가 훨씬 수월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없다고 해서 미국에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에 우리가 남북 당국회담을 복원에서 동북아 상황을 안정적으로 끌고가는 일익을 담당할테니, 미국도 전향적인 자세를 가져달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특히 북한 리수용 외무상의 유엔 총회 연설을 흘려듣지 말라고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골적으로 이야기 못 해서 그렇지, 그 안에 미국과 만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리수용 외무상은 당시 연설에서 평화협정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런데 이건 비핵화의 다른 표현입니다. 지난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미국은 북한 비핵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북-미 수교와 평화협정을 이야기했습니다. 즉, 북한이 평화협정 이야기를 꺼낸 것은 자신들도 비핵화의 용의가 있고 협상이 준비됐다는 메시지를 보낸 겁니다.
북한이 노골적으로 대화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것은, 미국이 받아주지 않을 경우 북한 입장에서 협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살짝 운을 띄우는 식으로 말한 겁니다. 협상이 준비됐다는 이면의 메시지를 읽어야 합니다.
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과 마주 앉아서 6자회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도 좋은 환경이 됐습니다. 류윈산 상무위원 방북으로 북한의 로켓 발사가 사실상 중단됐기 때문에 한-미 양국 정상이 대북 제재를 강화하거나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을 사전에 억제하기 위해 긴밀히 협조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오히려 뜬금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오히려 6자회담에 대해 미국이 진전된 자세로 나오라고 설득하고 유도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봐야 합니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미국 측에서 생각하는 한-미 정상회담의 가장 주요한 논의 주제는 무엇일까요?
황재옥 : 우선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그동안 미국이 사드에 공을 들인 게 많습니다. 원래 이번 정상회담이 지난 6월 계획돼있었는데 당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문에 미뤄진 것 아닙니까? 미국은 이번 회담에서 보다 분명하고 노골적으로 사드 배치 문제를 꺼내 들 것입니다.
미국은 11월 초에 한-중-일 정상회담이 예정돼있는데 그 때 한-일 정상회담도 열어서 한-일 관계를 잘 풀어달라, 미-일 동맹은 튼튼한데 한-일 관계가 나쁘니까 한-미 동맹이 힘을 못 쓰고 있지 않느냐 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면서 한-미-일 3각 편대로 중국을 압박해 들어가는 그림을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당장 발표는 하지 않더라도 일단 사드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마무리를 짓자는 식으로 접근할 수도 있습니다. 일단 어느 정도 합의만 해두고 다음 정권에서 사드 배치 절차를 하나씩 밟아가는 계획을 세우는 겁니다.
여기에 박 대통령이 말려 들어가면 향후 상황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는 사드 배치에 대해서는 미국의 요청도, 미국과 협의도 없었고 결정된 것도 없었다는 이른바 '3NO' 전략을 구사하면서 시간을 끌었는데요. 이번에는 한-미 동맹 강화는 수사학적인 표현으로 끝내고, 사드 배치는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측면을 강조해서 정확하게 마무리를 짓고 오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전격 체결됐습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되지 않을까요?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TPP에 참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이야기했는데요.
정세현 :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애매모호하게 가는 것이 좋습니다. TPP가 경제적으로 중국을 포위하는 것인데 우리가 여기에 들어가버리면 사드 배치 못지않게 중국에 타격이 됩니다. 사드는 안보·군사적 측면, TPP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중국을 압박하는 건데, 여기에 우리가 참여하면 우리 국익은 어떻게 될까요?
물론 서둘러 가입해야 한다는 국내 여론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전경련은 사드를 배치하면 중국으로부터 받게 될 경제적 보복 때문에 배치 반대 입장을 보였습니다. TPP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보복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지난 6월 중국의 증시가 곤두박질치면서 세계 경제에서 중국의 위상이 떨어지고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2008년 미국의 금융 위기 이후 지난 7~8년 동안 중국이 세계 경제를 끌고 왔지만 이제는 미국이 다시 부흥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인데요. 이렇게 되면 중국으로부터 받는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TPP에 가입해야 한다는 경제계의 요구가 더 커지지 않을까요?
정세현 : 물론 중국 경제가 가라앉고 상대적으로 미국이 이득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이런 현상이 일시적일 수 있습니다. 중국은 여러 가지 불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경제 성장이 6%를 넘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성장 동력이 별로 없습니다. 무기 산업 말고 어떤 동력이 있습니까?
TPP에 들어가서 기대할 수 있는 혜택이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것만 보고 쫓아가다가 중국을 섭섭하게 해서 받을 수 있는 불이익이 혜택보다 먼저 올 수도 있습니다. 큰 틀의 전략을 세워놓고 상황에 맞춰 전술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중국의 입장도 지원했다가 미국 입장도 거들어주는 식으로 가야지, 지금 당장 급하게 TPP 가입을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프레시안 : 한편으로는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상당히 당당했고 시진핑 주석은 다소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양국의 경제적 위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데요.
정세현 : 저는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무승부라고 봅니다. 아무것도 합의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후변화 문제 관련해서 2017년 기후변화협약에 중국도 참여하겠다고 하는데, 사실 이건 미국도 참여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기후변화와 관련해서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오고 갔을 뿐입니다.
오히려 이 부분보다는 남사군도 문제를 거론했을 때 중국이 강하게 반발한 대목이 주목됩니다. 중국이 작심하고 남사군도 문제에 간섭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양국이 전혀 접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미-중이 대립하는 모습을 여전히 보여준 것인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우리의 고민이 더 커진 상황입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