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김대중 죽이기>라는 책을 통해 일대 파란을 일으켰던 강준만 전북대학교 교수. 그는 이후 100권이 넘는 책을 쏟아낼 정도로 열정적으로 한국 사회와 '소통'해왔다. <지방 식민지 독립선언>, <싸가지 없는 진보>, <갑과 을의 나라>, <강남 좌파>, <개천에서 용 나는 안된다> 등 최근 낸 책 제목만 봐도 그의 문제 의식을 엿볼 수 있다.
강준만 교수가 '또' 책을 냈다.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인물과사상사 펴냄). 이 책에서 정당으로 쳐들어간 '청년'의 대표 주자이자, 기대되는 정치인으로 언급된 이가 바로 조성주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이다. 조 소장은 지난 7월 있었던 정의당 대표 선거에서 청년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진보정치 2세대'를 표방하고 나와 주목을 받았다.
두 사람이 지난 21일 강 교수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두 시간 넘게 진행된 대담 중 두 번째 기사는 한국의 학벌주의, 지역 차별, 인물 중심의 '빠 정치' 등에 대한 얘기다. (☞ 첫번째 대담 : "386은 '창업 공신', 이제는 물러나라") 프레시안 전홍기혜 편집국장이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하고 대담을 진행했으며, 이명선 기자가 정리했다.
학벌도 자본이다
전홍기혜 : 책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에서 "한국 사회의 제1차 이데올로기 전선은 좌우나 진보-보수가 아니라 학벌인 셈이다"(143쪽)라고 했다. 우리 사회의 허를 찌른 말이다. 지금 한국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딱 하나, '엘리트주의'다. 이념을 앞세운 양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싸우고 있지만, 알고 보면 '학벌 공동체'다. 이 구조는 한 번도 깨진 적이 없다. 386세대가 자녀에게 가장 물려주고 싶어 하는 자산 또한 '학벌'이다.
강준만 :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의 발행인인 김규항 씨가 한 말이 압권이다. "보수적인 부모는 자녀가 단지 일류대생이 되길 원하고, 진보적인 부모는 자녀가 의식 있는 일류대생이 되기를 바란다."(<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김규항·지승호 지음, 알마 펴냄. 299쪽) 학벌·학력의 차이는 특히 경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바로 임금 격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유럽의 일부 국가처럼 고등학교만 졸업한 벽돌공·배관공과 판검사 수입이 비슷하다면, 굳이 대학에 갈 이유가 뭐가 있나. 임금 격차부터 줄여줘야 한다.
지난해 말, 삼성이 2015년 임원들의 임금 동결을 발표했을 때 개인적으로 환호했다. '맞다. 노동자 평균 임금과 재벌 임원 간 격차가 너무 크다. 점차 줄이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겨레>는 지난 3월 "삼성전자가 올해 연봉 동결은 물론 승진 비율도 40%에서 30%로 축소하면서 임직원 사이에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며 임원들도 노동자인데, 자본이 왜 노동자의 임금을 (일방적으로) 동결하느냐라는 식으로 비판했다. 야권의 노동 전문 국회의원들은 또 어떤가. 모든 노동자에게 삼성전자 수준의 임금을 받게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재벌과 노동자 간 게임이 이렇게 진행되면 안 된다. 사회 전반의 임금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학벌 문제도 해결된다. 임금 격차는 놔둔 채 학벌 문제만 지적한다고, 우리 사회의 엘리트주의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박근혜 정부가 취업 절벽에 내몰린 청년들에게 눈높이를 낮춰 중소기업으로 취직하라고 한다. 하지만 희망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공정거래위원회마저 대기업을 상대로 한 패소율이 늘고 있다. 공정위 요직에 있던 사람들이 대형 로펌으로 가는데, 어떻게 이기겠는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인식 및 임금 격차가 어제오늘 일인가. 야권은 이런 문제를 이슈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치열한 건 '학벌 전쟁'이다. 진보-보수와 같은 이념 문제는 오히려 투쟁을 위한 장식품이다.
박원순, 단국대 아닌 서울대 출신 엘리트
조성주 : 연세대에 입학했지만, 중간에 그만뒀다. 졸업장 없는 중퇴생이다.
강준만 : 반갑다.(웃음)
조성주 : 누군가 농담 삼아 '그럼, 고졸이야?'라고 하니, 다른 사람이 이런 얘길 하더라. '한국에서 학벌은 졸업이 중요한 게 아니라 들어간 학교, 즉 입학이 중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조성주 씨도 이미 학벌 자본을 가지고 정치하는 거다.'(웃음)
강준만 :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누가 단국대 출신이라고 하나. 5개월밖에 다니지 않았지만, 서울대생이라고 한다.(웃음)
조성주 : 그렇다. 진보진영도 학벌에 대한 인식이 다르지 않다. 그 얘길 듣고, '아차' 싶었다. '학벌이 나에게도 자본이구나'라는 자각이 들었다.
당사자 스스로가 명문대 출신의 엘리트라는 것을 자각하느냐, 아니냐는 큰 차이다. 학벌 자본의 혜택을 보고 있다고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386세대 정치인 중 상당수는 SKY(서울대·고대·연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라는 점보다 민주화 운동을 했기 때문에 사회에서 대접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권자는 학벌에 따른 사회적·경제적 격차부터 인식한다. 선거공보물에 ○○고등학교-△△대학교 등 굳이 학력을 찾아 쓰는 것을 보면, 정치인들도 이를 모르는 바 아니다. 한국의 학벌 문제는 한국 학자가 한국적 분석을 하지 않는 한, 어떤 외국 이론을 가져와도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다. 엘리트가 필요하지만, 학벌 자본을 바탕으로 한 엘리트만 양산되는 것은 심각하다.
특히 강 교수가 "우리는 개천에서 더 많은 용이 나오는 것 진보로 생각할 뿐, 개천에 남을 절대 다수의 미꾸라지들에 대해선 아무런 생각이 없다"(149쪽)고 비판한 것에 공감한다. 사람들은 '용이 어디에서 나오나?'에만 초점을 맞춰 학벌에 매달린다. 다수의 미꾸라지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이 없다.
강준만 : 지방일수록 문제는 더 심각하다. 지역발전전략이자 인재육성전략이 '서울 명문대에 학생 많이 보내기'다. 인재에게 '서울로 가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지역대학 죽이기다. 서울 소재 대학을 못 가서 전북대학교에 왔다고 하면, 학교와 학생은 뭐가 되나.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서울로 간 엘리트들이 지역으로 돌아오는가 하는 점이다. 돌아오는 사람이 드물게 있긴 하다.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국회의원으로 선거에 출마하려는 사람들.(웃음) 지역 언론은 한술 더 떠 이런 사람들을 '우리'라며 조명한다. 나처럼 전라북도 연고 없이 30여 년을 살아도, '남'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학벌 중심의 엘리트주의, 한 번에 바로 잡을 수 없다. 50년 이상 응축된 모순이 어떻게 쉽게 바뀌겠는가. 방향이라도 제대로 잡아야 한다. 정치인들이 단 10년 만이라도 '바꾸자'고 얘기해야 한다. 학벌주의·지역주의 없애겠다는 공약이 매번 등장하지만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선거 때 봐라. '전북을 뒤집어엎겠다'며 '다 바꾸겠다'고 한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거짓말이라는 것을 안다. 속을 만큼 속아서 더는 안 믿는다. 그렇다면, 이제는 정직하게 말할 때가 됐다. '뻥'치는 정치 언어가 아닌, '정직'을 무기로 한 정치 언어가 나와야 한다.
한탕주의·빠 현상, '배신의 정치'를 부르다
조성주 : 진짜 어려운 문제다. 결과적으로 거짓이 되는 공약이 남발되는 이유는 정치 전반에 여전한 '한탕주의(한방주의)'가 있기 때문이다.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에서도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혁신, 아니 혁신을 한다는 인상을 유권자들에게 주려고 몸부림을 치는 이벤트 쇼를 벌이는 것"(104쪽)이라고 비판했다.
유권자들은 사회 양극화나 복지 문제가 '한방'에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보다는 '내가 살아갈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와 같은 비전을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정당은 인물이나 통치권력에 대한 증오를 쏟아내며, 한탕주의 전략만 짜고 있다. 대중들의 정치 혐오가 늘어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정당 간 차별화를 강조하며, 센 '한 방'을 압박한다. 노동개혁이 화두가 되자, '일자리 몇만 개 싸움'이 벌어졌다. 저쪽에서는 임금피크제, 이쪽에서는 노동시간 단축을 내세웠다. 하지만, 양쪽 모두 '한 방'에 기대 거짓말하는 격이다. 사회적 아젠다에 대한 전략 전술을 바꿔야 한다.
강준만 : 실질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정당 간 차별성을 보여줘야 한다. 특히 야권은 유권자가 절박하다고 느끼는 문제에 있어 '유능하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 이념이 아닌, 유능 우위를 당의 정체성으로 삼아야 한다.
조성주 : 정의당 심상정 대표의 경우, '진보진영에도 경제 문제에 유능한 여성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정치적 수사는 알리바이일 뿐이다.
전홍기혜 : 이번 책에서도 "(정치적) 빠들은 많은 사람을 단호히 배제하는 것에서 기쁨과 보람, 도덕적 우월감과 선민의식까지 누"린다며(38쪽), '빠' 현상을 경계했다. '한탕주의'와도 연관된 것이지만, 유능한 정치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빠' 현상이 정권 교체를 가져왔다. 이런 경향은 정치제도가 큰 틀에서 바뀌지 않는 한, 깨지기 어려울 것 같다.
강준만 : 우리 정치는 인물 중심주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정치 참여에 뜻을 가진 청년이라면 인물 중심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인물은 '정치적 도구'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노무현 전 대통령도 도구였다. 두 사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봐라. 기저에는 '한 번 지지했으면 끝까지 가야 한다'라는 정서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벗어나면, '배신자'라고 낙인찍는다. 하지만 배신은 노무현 대통령이 한 것 아닌가? 대선 공약과 취임 후 입장이 달라졌는데, 누가 배신자란 말인가.
우리는 '배신'의 정의도 대통령 위주로 규정한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 입장에서 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유 의원을 배신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배신도 서열순이다"(9쪽).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아랫사람은 무조건 윗사람을 받들어야 한다. 정치 지도자는 공동체를 구현하기 위한 도구다. 인물보다 이슈가 우선 되어야 한다.
조성주 : '빠'는 사실 정치인에게 행복한 일이다. 그런데 '빠' 또는 팬클럽에 힘입어 정치인으로 성공한 사람은 있지만, 그 사람을 지지했던 이들의 삶은 어떻게 됐나. 여전히 비정규직이다. 영세 자영업자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정치인 개인의 성공이, 곧 집단의 성공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그 사람의 정치적 비전이 실현될 때 '우리들의 성공'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개인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 이상 이하도 아니다.
'빠' 현상은 정치가 의인화(擬人化)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의 특성상 불가피하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공유하는 정치적 비전, 즉 '정치 지도자와 내가 사회를 같이 운영해 나간다'는 인식이다. 따라서 집단을 호명해줘야 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수백 년에 걸쳐 내려온 인종 차별의 역사에서 전체 인구의 13%밖에 안 되는 미국 흑인을 호명한 경우다. '빠' 현상이 단순한 열정에만 그친다면, 결과적으로 '증오의 칼날'만 들이대는 기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강준만 : 한때 '빠질'을 한 사람으로, 작동 원리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바람직한 면도 있다. 그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치가 의인화되는 과정에서 '빠'로 매몰되는 것과 그 사람의 인간성을 바탕으로 한 정책을 지지하는 것은 다르다. "이론적으론 '이슈의 의인화'도 얼마든지 가능하기에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슈를 잘 구현해줄 특정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을 열성적으로 지지할 수 있다."(8쪽)
그동안 우리의 '빠' 문화는 내부적으로 전혀 견제되지 않았다. 또 외부적으로는 모욕하기에 바빴다. 그러다 보니, 안과 밖이 소통이 안 된다. 오늘날 '빠'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소통이다. 교수들 사이에서도 정치 이야기를 자주 하지 않는다. 주관적인 인물평이 앞서다 보니, 서로 불편해진다. 하지만, 대학입시, 빈부격차, 재벌문제, 남북문제, 청년실업 등은 누구의 아이디어가 좋다며 소통한다.
여야의 계파 싸움도, 수면 아래에는 '빠'가 있다. 타협을 죄악시하는 문화가 깔려 있는데, 혁신위원회 등 문제를 수면 위로 올린다고 한들 해결할 도리가 있겠는가. '빠' 현상, 곧 정치의 의인화는 불가피한 면과 바람직한 면이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내가 바라는 세상은 결국 사람을 통해서 바꾸는 것이니, 결국 나의 열망과 비전을 어떤 사람에게 바치는 것이 정치 참여의 전부가 된다. 이는 한국인 특유의 '관계의 윤리로 인해 정치를 연예인 팬클럽의 활동 수준으로 전락시킨다."(31~32쪽)
조성주 : 우리나라 정당의 뿌리가 약해서 생기는 현상이기도 하다. 거기에 SNS와 미디어가 불을 지르고 있다.
강준만 : 미약한 정도가 아니라, 전무하다고 봐야 한다. 전북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장악한 지역이지만, 정당원이라고 하면 다르게 본다. 일종의 '빠'로 인식하는 것이다. '청년들이 정당으로 쳐들어가야 한다'는 얘기도, 오랜 병폐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방향이라도 바꿔야 한다는 바람이 담겨 있다.
2008년 "당시 촛불 집회 예찬론과 '운동이냐 정당이냐'는 기준에 반기를 들고 정당의 중요성을 역설했던 박상훈(후마니타스 대표)은 "증오에 가까운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65쪽). 거리로 나가는 게 지속될 수 없는 일인데도, 진보 논객 대부분이 총출동해 광장 민주주의를 미화했다. 뭔가 될 것처럼…. 지식인들도 자신이 열정을 다해 주장했던 바가 현재 어떻게 되었는지 성찰해야 한다.
'이명박근혜'로 이어지면서 결국 어떻게 됐나. 거리 정치가 아닌, 정당 정치로 바꿔야 한다고 다시 얘기하고 있다. 광우병 촛불 집회 당시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들, 알고 보면 80년대 운동권이다. 여전히 제자리다. 못 벗어나고 있다.
* [강준만-조성주 대담] 3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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