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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몸'이 된 자주파, '성공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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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맨몸'이 된 자주파, '성공의 역설'?

[해설] 전국연합과 한총련, 그리고 민노당

'2.3 임시 당대회'로 인해 당내 평등파와 상당수 무정파 성향의 평당원들의 조직적 철수가 기정사실화됨으로 인해 이제 민주노동당은 사실상 자주파가 독자적으로 책임지게 됐다. 창당 이래 8년 정파연합의 역사가 사실상 종결된 것.

이에 대해선 '성공의 역설'이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자주파가 '특유의 정치력'을 발휘해 주도권을 쥐는 것을 넘어 패권적 성향을 드러냈고 결국은 의도했건 아니건 단일조직화를 도모함으로써 통일전선이라는 애초의 명분을 스스로 무너뜨린 격이다.

이는 1990년대 초 소비에트 연방 해체 이후 한국사회에서 반복된 현상이다. 전대협, 전노협 등 당시 진보적 대중단체를 총망라해 1991년 결성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이 그러했고 1993년 NL. PD 소속 총학생회를 모두 결집시켰던 한총련이 그러했다.

"민노당이 한총련, 전국연합 뒤를 이어야 하나"

이들 단체는 출범 때부터 자주파 세가 강했고 최종적으로 단일대오의 성격을 갖췄지만 민노당은 또 달랐다. 진보정당 운동을 주창해 온 활동가들을 핵심으로 민주노총의 결의가 바탕이 된 초기 민노당은 평등파 색채가 강했다.

민노당 초기에는 울산연합 등 자주파의 일부만 당에 참여했지만 2001년 전국연합이 '3년의 준비, 10년의 전망'이라는 이른바 9월 테제를 발표한 이후 자주파들은 민노당으로 결집하기 시작했다.

자주파의 조직적 결합으로 당의 외형은 확대됐지만 갈등은 그에 비례해서 커졌다. 이미 탈당한 조승수 전 의원은 "나도 그 분들을 들어오라고 권유했었다"면서 "대중정당에서 활동하면 달라질 줄 알았고 대중정당은 한 정파가 좌우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두 가지 다 착각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평등파 소속으로 탈당을 결심한 한 당직자는 이에 대해 "과거 민통련을 완전히 장악하더니 그것만으로 부족해 전민련이 생겼고 전민련을 장악하더니 전국연합이 생겼고 전국연합이 쪼그라드니까 한국진보연대를 만든 것이 자주파다"면서 "민주노동당도 같은 길을 걸을지 누가 알았겠냐"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물론 '실력으로 평가받은 것 아니냐'는 자주파의 입장은 이와 정반대다.

어쨌든 '2.3 당 대회'로 인해 민노당도 단일대오화 조짐이 강해지고 있지만 이는 자주파가 애초에 원했던 결과가 아니라는 점에서 '성공의 역설'이라는 평가에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떨어져 가보는 것도 어떨까 싶다"

자주파의 핵심적 인사들은 "우리도 이런 결과를 바랐던 것은 아니다"고 전했다. 김창현 전 사무총장은 "혁신안이라고 제출하면서 탈당파들이 주장했던 종북 척결 문제, 국가보안법에 대한 것을 내놓아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심상정 비대위를 불신임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 김창현 전 사무총장ⓒ프레시안

하지만 그는 '정파연합이 더 이상 가능하다고 보냐'는 질문에 대해 "'종북 척결'이라는 말이 나오면서 이런 식이면 같이 하지 말자는 이야기구나 싶었다"고 답했다.

그는 "신념의 문제를 공격하는 것만 아니면 충분히 같이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심회 문제 등에 대해 평등파는 "당신들의 신념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적 행위를 평가하는 것이다"는 입장이다. '신념'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김 전 총장은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금도라는 것이 있는데 그 금도가 무너진 것이고 국가보안법은 적용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라서 문제가 꼬인 것"이라고 말했다.

북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행위에 대한 평가'로 보는 쪽과 '신념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쪽이 동거하긴 힘들다. 또한 이는 당권파에 대한 책임 여부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다만 김 전 총장은 전날 자주파가 대선평가안조차 부결시킨 데 대해선 부정적 견해를 드러냈다. 김 전 총장은 "'참패'라고 표현해도 무리가 없고 주체의 문제가 컸다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그걸 굳이 뜯어 고쳐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면서 "현장 분위기가 과열된 것이 있는데 당권파들이 반성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심상정 혁신안 수용을 주장해온 것으로 알려졌고 온건 자주파로 평가받는 이정미 당대회 부의장은 "우리가 성숙이 덜 됐고 현실이 그대로 드러났는데 떨어져서 가보는 것도 어떨까 싶다"고 현실을 담담히 인정하면서도 "그렇지만 정파 소속이 아닌 일반 당원들과 국민들에게 고통을 전가시키는 것이라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 부의장은 "고민 중인데 남아있는 당원들을 잘 수습하는 것도 한 의무라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자주파가 혁신안을 부결시켰을 때는 현 상황을 예측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내가 그런 경고를 쭉 했지만 '설마 설마'하는 것이 있었다"면서 "이후 수습방안을 전혀 준비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대중 앞에 맨 몸으로 서게 된 자주파

당 대회에서 심상정 혁신안을 부결시키는 데에는 자주파와 함께 토로츠키주의자 분파인 '다함께'의 찰떡공조가 눈에 띄었지만 이제 '민주노동당'은 사실상 자주파가 책임지게 됐다. '다함께'의 대표적 인사인 김인식 민노당 대의원은 '다함께도 이제 당의 운영을 함께 책임지게 되냐'는 질문에 "나몰라라 할 순 없지만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심드렁한 태도를 취했다.

진보운동 내에서만 보자면 자주파는 특유의 헌신성과 대중친화력으로 어디에서도 다수파의 위치를 점했지만 '민족주의나 통일 운동을 벗어난 영역에서도 그만큼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이는 민노당의 지난 활동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하지만 평등파와 정파연합을 통한 역할분담이 종결된 상황에서 이제 자주파는 대중들 앞에서 완전히 맨 몸으로 서게 됐다. 민노당이 전국연합, 한총련의 전철을 밟게 될지 혹은 자주파의 새로운 전범을 창출할지 지켜볼 일이다.

또한 아무리 분당을 하더라도 평등파와 자주파가 좁은 대한민국의 진보지형에서 피할 길이 없고 좋든 싫든 연대해야 할 일이 많을 것이 뻔하다. 이런 면에서 볼 때는 "헤어지더라도 잘 헤어지고 상처를 덜 남겼으면 좋겠다"는 이정미 부의장의 말도 새겨들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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