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반도 핵 문제를 세 시기로 구분한다. 한반도에서 '제1의 핵 시대'는 미국 핵 독점 시기다. 1950년 한국 전쟁부터 미국이 전술 핵무기를 한반도에서 철수한 1991년이 이 시기에 해당된다. 두 번째는 '핵 시대 1.5'이다. 북핵 의혹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1992년부터 6자 회담이 결렬된 2008년까지를 이 시기로 삼을 수 있다. 미국의 핵 독점이 유지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핵 개발에 나섰지만 외교적으로 해결 가능한 때였다. 세 번째 시기는 북한의 핵 보유가 명확해지고 되돌리기 힘들어진 시기다. 나는 이를 '한반도 제2의 핵 시대'로 규정한다.
다만 시기적으로 제2의 핵 시대를 명확히 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북한의 핵 보유 시점을 확실히 못 박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은 2005년 2월에 핵 보유를 선언했다. 그러나 그 해 6자 회담 9.19 공동 성명에서 비핵화를 약속했다. 9.19 공동 성명이 경수로 논란 및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로 사문화될 위기에 처하면서, 북한은 2006년 10월 최초의 핵실험을 강행했다.
그리고 6자 회담이 결렬된 이후인 2009년 4월과 2013년 2월에 핵실험을 강행해 핵 보유의 기술적인 문턱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집권 이듬해인 2012년에는 핵 보유를 개정 헌법 전문에 명시했고, 2013년에는 '핵 억제력법'을 제정하는 한편 '경제 건설과 핵 무력 건설 병진 노선'을 천명했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볼 때, 제2의 핵 시대는 2010년을 전후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제2의 핵 시대가 냉전과는 무관?
제2의 핵 시대라는 표현은 폴 브랙켄(Paul Bracken) 예일 대학교 교수가 최초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00년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을 통해, 아시아를 중심으로 제2의 핵 시대가 부상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무장, 모호성이 사라진 이스라엘의 핵 보유, 그리고 북핵 문제 등을 그 근거로 삼았다. 브랙켄은 이후 10여 년간의 연구를 집대성해 2013년에는 <제2의 핵 시대 : 전략, 위험, 그리고 새로운 권력 정치>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그는 책에서 제2의 핵 시대는 "냉전과 관계가 없다"고 진단한다. 제1의 핵 시대라고 부를 수 있는 냉전 시대와는 달리 제2의 시대에는 지역적 갈등이 핵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1998년부터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군비 경쟁은 이러한 분석에 비교적 잘 맞아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에선 다르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오히려 한반도의 제2의 핵 시대는 냉전과 깊은 관계가 있다. 북한의 핵무장은 북·미 간의 적대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냉전 체제의 산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과는 달리 북한이 자신의 "핵 억제력"은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는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물론 여기서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볼 수 있느냐의 문제가 제기된다. '기술적으로' 보면 북한은 핵 보유국이다. 북한은 이미 세 차례의 핵실험을 했고, 이를 운반할 수 있는 다양한 탄도미사일도 개발·보유하고 있다. 한미 양국 정부 기관도 북한이 10개 안팎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소형화에 성공했는지의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북한은 '국제법적으로' 핵보유국으로 간주될 수 없다.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선 이 조약 발효 이전에 핵실험에 성공한, 미국, 소련(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의 핵 보유만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색함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미 양국은 물론이고 북한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런데 한-미-일 세 나라는 북한의 핵 보유를 전제로 군사 전략을 짜고 있다. 북핵 사용 징후시 선제공격을 가한다는 '킬 체인', 북한의 핵미사일이 날아오면 요격하겠다는 미사일 방어 체계(MD)는 북한의 핵 보유를 전제하지 않고선 성립할 수 없는 전략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와 2014년 12월에 기습적으로 체결된 한-미-일 군사 정보 공유 약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미-일 세 나라는 정치·외교적으로는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지 않겠다면서 군사적으로는 핵 보유를 전제로 한 전략을 짜고 있는 셈이다.
제1의 핵 시대 : 미국의 핵 독점 체제
"1950년대부터 오바마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반복적으로 북한에 대해 핵무기 사용을 고려해왔고, 계획해왔으며, 위협해왔다"
북한의 프로파간다나 종북 좌파의 주장처럼 들리겠지만, 미국의 <에이피> 통신이 한국 전쟁 60년을 맞이한 2010년에 비밀 해제된 미국 문서를 분석해 내린 결론이다. 실제로 한국 전쟁의 발발, 전개, 정전 협정의 체결, 그리고 정전 체제는 핵무기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졸저 <핵의 세계사>에서 자세히 밝힌 바 있다. 그 개략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
한국 전쟁의 발발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미국과 소련의 핵에 대한 맹신이었다. 핵 독점을 자신했던 미국은 공산 진영이 절대로 한국을 침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봤다. 공산 진영이 핵 보복을 감수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는 주한 미군 대폭 감축과 애치슨 선언의 중요한 배경이었다. 1949년 8월에 최초 핵실험에 성공한 소련도 한국 전쟁에 미국이 개입하지 못할 것이라고 더더욱 확신했다. 미국이 핵전쟁을 감수하지 못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 전쟁은 트루먼과 스탈린의 핵의 위력에 맹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했다.
한국 전쟁의 확전 역시 미국의 핵무기에 대한 과신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중국이 절대로 개입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 미국은 38선을 넘어 북진을 감행했다. 신생국 중국이 핵 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미국은 정전 협정을 타결시킨 힘도 핵의 위력에서 찾는다. 공산 진영이 정전에 소극적이었다가 미국의 핵 공격 위협을 받고선 굴복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역사 기록은 공산 진영, 특히 소련이 정전협상에 적극적으로 바뀐 이유는 미국의 핵 위협이 아니라 스탈린의 사망에 있었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 전쟁 휴전 직후 대량 보복 전략을 공식화했다. 동맹국들에 핵무기를 대거 배치해 공산 진영의 재래식 공격을 억제하고 억제 실패 시 핵 보복을 가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중동, 유럽에 전술핵을 대거 배치했다. 또한 한반도 위기 때마다 미국은 대북 핵 무력시위를 벌이곤 했다. 그리고 1976년부터는 대규모의 핵 공격 훈련이 포함된 '팀 스피리트'를 연례적으로 실시했다.
핵 시대 1.5 : 북핵의 등장
1991년 이전까지 한반도 정전 체제를 미국의 핵 독점 시기로 규정한다면, 그 이후에는 두 가지 차원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나는 한반도의 비핵화 바람이었다. 미국은 1991년 들어 한국에 배치한 전술핵을 철수키로 했고, 남북한 사이에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되었다. 특히 92년 1월에 한미 양국이 팀 스피리트 훈련을 중단키로 발표하고, 북한이 이에 호응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기로 했다.
또 하나는 북한의 핵 개발이었다. 1991년부터 포착된 북한의 핵 개발 징후는 팀 스피리트 훈련 중단을 비롯한 여러 가지 상호 위협 감소 조치로 해결되는 듯 했다. 그러나 1992년 10월 한미 양국이 팀 스피리트 재개 방침을 밝히고, 이듬해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면서 본격적인 위기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다행히 1994년 10월에 북-미 간에 제네바 합의가 타결되었다.
주목할 점은 제네바 합의 이후에도 미국의 대북 핵 위협은 계속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빌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에게 소극적 안전보장, 즉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미국 본토에서 북한을 가정한 모의 핵 공격 훈련을 계속했다. 설상가상으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핵 선제 공격 대상에 북한을 올려놓았다. 오바마 행정부 역시 2010년 발표한 <핵 태세 검토 보고서(NPR)>를 통해 소극적 안전 보장 대상에서 북한을 제외시켰다.
오늘날 유행하는 북핵 문제에 대한 진단은 "애초부터 북한의 목표는 핵무장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북 정책 실패를 감추는 데에는 효과적일지 모르지만, 정확한 북핵 인식과 새로운 접근을 모색하는 데에는 역효과만 내는 진단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국의 MD에 대한 집착과 한국의 흡수통일 망상이 북핵을 해결할 수 있는 여러 차례의 기회를 유실시켰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한반도, 제2의 핵 시대로
안타깝게도 한 때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북핵은 어느덧 가래, 아니 불도저로도 막기 힘든 문제가 되어버렸다. 이로 인해 한반도는 제2의 핵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그 핵심적인 특징은 '미핵 대 북핵'의 충돌이다. 이를 너무나도 잘 보여준 장면이 있다. 2013년 상반기 위기 국면이 바로 그것이다.
2012년 12월부터 '북한의 은하 3호 발사→유엔 안보리 결의안 2087호 채택→북한의 3차 핵실험→유엔 안보리의 결의안 2094호 채택'으로 이어진 한반도 위기 국면은 급기야 미국과 북한의 핵전쟁 위협으로까지 치달았다. 북한이 한미군사훈련 '키 리졸브' 개시일에 정전 협정 백지화를 선언하자, 미국은 B-52 핵 전폭기를 통해 공개적인 무력시위에 나섰다. 그러자 북한은 "전략폭격기가 조선반도에 다시 출격한다면 적대 세력들은 강력한 군사적 대응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라며 핵전쟁 위협을 가했다.
미국은 북한의 경고를 비웃기라도 하듯 B-52를 다시 출격시켰고, 북한은 전략로켓군을 비롯한 모든 군대가 1호 전투 근무 태세에 돌입했다고 위협했다. 하지만 미국은 B-2 핵 전폭기 2대를 또다시 출격시켜 군산 훈련장에 훈련탄 8개를 투하했다. 그러자 김정은 위원장은 심야에 최고 사령부 회의를 소집해 미국 본토와 하와이, 괌 등을 타격할 수 있다는 전략 미사일 발사 대기 상태를 공개했다. 미국은 F-22 전투기와 핵잠수함, 그리고 이지스함과 X-밴드 레이더를 동북아로 급파했고, 북한은 미국 핵 타격 작전을 최종 비준했고 이를 백악관에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적어도 군사 태세와 언술적으로는 핵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던 것이다.
물론 미국과 북한의 핵 시위는 핵전쟁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미국이 공개적으로 핵 시위를 한 데에는 북한의 위협 못지않게 한국의 핵무장 여론을 억제하고자 하는 의도도 깔려 있었다. 북한 역시 위기 지수를 한껏 끌어올려 평화 협상 테이블에 한국과 미국을 불러내려고 했었다. 북한이 위기 국면이 지나간 2013년 6월 들어 평화 협상을 제안한 것은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미국의 아이젠하워가 핵 위기를 고조시켜 정전 협정을 체결하려고 했던 것과 유사한 '핵 강압 외교'였던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 불바다' 위협은 미국에게 초대장이 될 수 없었다. 오히려 미국 내에선 대북 혐오감이 더욱 증폭되었다. 그 결과 대화와 협상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극심한 군비 경쟁과 대결 국면이 똬리를 틀어왔다.
결국 한반도는 제2의 핵 시대를 맞이해 더욱 위험하고 불안한 상황으로 진입하고 있다. 정전 체제의 불안정성은 가중되고 있는 반면에 평화 체제의 전망은 어두워지고 있다. 특히 한반도 정전 체제에서는 미-소 냉전 체제에서 작동했던 '공포의 균형', 즉 전략적 안정도 기대하기 어렵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미국과 북한 사이의 핵 전력 차이는 500배 이상 난다. 정전 체제를 '안락한 소파'로 간주해왔던 미국과 '가시 방석'으로 여기는 북한 사이에 전략적 안정을 이룬다는 것도 난망한 일이다. 이로 인해 한반도 제2의 핵 시대의 잠재적인 최대 피해자는 한국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앞선 글에서 '통일이 북핵 해결의 방법'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과 인식을 강력히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김정은은 절대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고, 이 얘기는 박 대통령도 수없이 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예측 앞에서 겸손해져야 한다. 김정은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인가의 여부는 현시점에서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문제이다. 특히 정책 결정자가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에 기대어 정책을 펴면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믿는 '막연한 바람(wishful thinking)'보다도 더 위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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