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요동치고 있고 사방에는 어둠이 깔렸다. 척척한 숨결로 나는 어둠 속에서도 곁에 사람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음식물을 먹지 못한 지 오래되었는데 역시 배고픔은 익숙해지는 법이 없나 보다. 고향을 떠나야 했던 그날 이후 식량과 물은 늘 모자랐고 나는 늘 배가 고팠다. 나에겐 나라도, 집도 없다. 심지어 이번 탈출에 성공하지 못하면 미래도 없을 것이다. 이제 몇 시간만 더 버티면 된다. 그러면 자유의 땅을 밟을 수 있다.'
해마다 수천 명의 피난민이 목숨을 잃는 비극이 세계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내전, 박해, 빈곤 등을 피해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나선 난민의 규모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상황이다.
실패하면 죽음 성공해도 난민
지난 8월 5일 리비아 연안 지중해에서 약 700명의 난민을 싣고 가던 배가 전복됐다. 생존자는 367명. 나머지 탑승객들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거나 실종됐다. 올해 4월 17일 리비아 연안 지중해에서 난민선이 전복돼 800여 명이 숨진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발생한 대참사였다.
하지만 피난처를 찾아 나선 난민들에게 안전은 사치인 양, 사고 소식은 멈추지 않고 있다. 지중해 곳곳이 피난민들의 시신으로 쌓여가고 있는 것. 지난 8월 16일 리비아에서 이탈리아를 향하던 난민선도 과잉선적으로 침몰했다. 갑판 아래 화물칸에서 발생한 배기가스를 흡입한 난민 49명은 질식사한 상태였고 312명은 이탈리아 해안경비대에 의해 구조됐다.
유럽 밀입국을 위해 지중해에서 죽거나 실종된 난민은 2013년 600명에서 2014년 3500명 정도로 급증했고 올해 들어 이미 2440여 명이 숨졌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올해 지중해를 건넌 난민 수는 지금까지 25만 명. 지난 2014년 한 해 동안 지중해를 건넌 난민 수 21만9000명을 훌쩍 넘은 수치다.
유럽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난민 문제에 봉착했다. 유럽연합(EU) 국경관리청(Frontex)에 따르면, 지난 7월 한 달 동안 무려 10만7500명의 난민이 유럽으로 유입됐다. EU로 유입된 난민이 한 달 기준 10만 명을 넘어선 건 처음이다. EU 국경에서 발견된 전체 난민의 숫자는 올해 상반기 34만 명으로 집계됐는데 이 역시 지난해 전 기간을 통틀어 EU 국경에서 발견된 난민 28만 명보다 높은 수치다.
곤혹스러운 유럽연합
분쟁과 박해로 강제로 집을 떠나야만 했던 세계 강제이주민의 수는 6000만 명에 육박한다. 유엔난민기구(UNHCR)가 '세계연례동향보고서'를 통해 밝힌 2014년 말 세계 강제이주민 수는 5950만 명이다. 대한민국 인구를 뛰어넘는 숫자다. 전 세계 강제이주민 수는 매년 3800만 명 정도였지만 지난 2011년 4250만 명으로 4000만 명을 넘어선 이후 불과 3년 만에 40퍼센트(%)나 증가했다. 2014년 말 세계 강제이주민 수 5950만 명 가운데 망명신청자 180만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외국으로 이주해야 했던 난민이거나 또는 나라를 떠나진 않았지만 고향을 떠나야 했던 실향민이다.
2014년 기준 난민 발생국 순위는 1위 시리아 388만 명, 2위 아프가니스탄 259만 명, 3위 소말리아 111만 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강제이주민 수가 급증한 것을 2011년 말 발발한 시리아 내전에서 실향민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시리아 난민 외에도 아프리카의 북쪽 끝, 리비아에서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넘어가려는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난민도 있고, 미얀마에서 박해를 피해 탈출한 보트피플, 로힝야족 같은 경우도 있다.
유럽을 향하는 난민의 급증은 중동과 아프리카 등지의 내전에 기인하며 그리스, 이탈리아, 터키 등이 이들 난민들의 유입 통로가 되고 있다. 난민들은 최종적으로 서유럽이나 북유럽에 정착하기를 희망하면서 남유럽을 경유하고 있다.
지중해에서 난민 사망사고가 잇따르자,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의 난민들은 상대적으로 덜 위험한 에게해를 택하기도 한다. 터키를 통해 그리스로 들어가려는 것이다. 국제이주기구에 따르면, 올해 터키를 출발해 그리스에 도착한 난민은 13만5000명 정도로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입국한 난민 10만2000명을 뛰어넘었다.
에게해 남동부에 위치한 그리스의 코스(Kos)섬은 아름다운 휴양지로 잘 알려졌다. 하지만 인구 3만3000명이 사는 이 섬에 난민 7000여 명이 몰려 심각한 문제를 빚었다. 그리스 당국은 고심 끝에 코스섬에 있는 유람선에 시리아 난민 2500여 명이 머무를 수 있는 숙소를 만들었다. 유람선에 난민들의 임시 거처를 마련한 것이다. 서류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난민들은 이곳을 임시숙소로 이용한다.
유럽 국가 가운데 현재까지 난민을 가장 많이 받아들인 곳은 독일과 스웨덴이다. 독일은 올 한해 난민 신청자 숫자 45만 명을 예상했으나, 최근 예측치를 대폭 늘려 80만 명으로 수정했다. 이와 관련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8월 16일 "난민 문제가 그리스 경제 위기보다 유럽연합에 더 큰 도전"이라며 "난민 이슈는 앞으로 유럽 국가들이 정말 공동행동을 취할 수 있을지 여부를 보여줄 중요한 유럽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쿠르디의 사진' 한 장이 전 세계에 인간애를 부활시키며, 유럽 사회도 난민 문제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장 클로드 융커 EU집행위원장은 현지시간으로 지난 9일 "난민 위기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며 EU회원국에게 난민 16만 명에 대한 분산 수용을 제의했다. 관련 논의는 오는 14일 EU 법무·내무장관의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럽 내 5만여 개의 가콜릭 교구가 난민 가족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구체적인 행동을 촉구했다.)
유럽연합, 대책을 결단하라!
유엔과 EU 국경관리청은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폭력을 피해 유럽으로 쏟아지고 있는 난민들을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했다. 유엔난민기구도 "부유한 유럽연합이 많은 수의 난민이 직면한 참담한 상황에 대해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EU는 유럽으로 들어온 난민을 회원국별로 골고루 나눠 수용하는 쿼터제 방안을 내놨다가 회원국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철회했다. 결과적으로는 난민들의 유입 경로가 되고 있는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책임을 전가해 놓은 셈이다.
영국과 프랑스 정부는 도버해협을 사이에 두고 영국과 제일 가까운 프랑스 칼레(Calais)로 몰려들고 있는 난민 문제로 갈등을 빚어왔다. 하지만 영국이 프랑스에 2000만 파운드(약 272억 원) 상당의 금액 지원의사를 밝히는 등 조만간 난민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방안 및 밀입국 브로커에 대한 대처방안이 논의될 예정이다.
1951년 채택된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Conven-tion relating to the Status of Refugees)'에 따르면, 난민도 자신의 국적국 밖에서 보호받을 권리가 있지만 나라 없는 사람들이 마주한 현실은 여전히 참담하다. 중동과 아프리카의 내전이 계속되고 EU의 과감한 결단이 없는 이상 난민 문제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바로 가기 : <함께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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