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경험과 기술, 능력과 지식을 갖고 있다'는 말은 지혜공유협동조합의 근간을 반영하고 있는 의미심장한 문구다. 지혜공유협동조합은 '왜 대부분의 강좌에는 유명 강사만 초청할까', '강의 장소는 꼭 실내여야 할까?', '각자 알고 있는 자기만의 기술과 정보를 나눌 수는 없을까?', '지역에서 서로 정을 나누는 공동체를 만들 수 없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불교환경단체 '에코붓다'와 '평화재단'을 비롯해 사회 여러 단체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유정길 이사장은 "1990년대 초 스페인의 협동조합 복합체인 '몬드라곤'을 알게 되면서부터 경제 활동의 대안으로 협동조합을 생각해왔다"고 한다. <녹색평론>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지역통화'에도 깊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
평생학습시대인 만큼 사회 곳곳에는 관에서 주도하는 교육기관부터 문화센터 같은 영리단체까지, 원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차고 넘친다. 그러나 지혜공유협동조합에는 이런 곳과 구별되는 특이한 점이 있다.
대부분의 강좌들은 이미 만들어진 커리큘럼을 찾아간다는 면에서 수동적이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도 명확한 편이다. 반면 지혜공유협동조합에서는 지식과 경험을 나누고자 하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경계 없이 상생하며 순환하는 관계를 이룬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탐색하는 삶의 목표부터 일상에서의 실용적인 정보까지 동시에 나눌 수 있는 협동조합이라고 볼 수 있다. 자기 삶에 필요한 것을 함께 고민할 이웃들이 가까이에 있다는 건 참 든든한 일일 듯싶다.
지혜를 나누는 방식
지혜공유협동조합에서는 '앎의 공유, 삶의 교류'란 슬로건으로 다양한 주제와 형식의 시민강좌를 열고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일상생활에 필요한 정보들이 많다. 특히 눈길을 끄는 '오만가지 강좌'는 고양·파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시민들이, 그야말로 오만가지 지혜와 경험을 나누는 학습 방식이다. 오만가지 강좌에서는 매달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십여 개 강좌가 번갈아 열리고 있다. 물김치 맛있게 만들기, 다이어트 성공 비결, 스마트폰 100% 활용하기, 내 손으로 간단하게 자동차 정비하기 등 내용도 다채롭다. 자신에겐 익숙한 지식이나 정보가 타인에게 중요한 배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서로 알고 있는 것을 기꺼이 공유한다.
대규모의 일방적 강의가 아니라 옹기종기 모여 커뮤니티 학습을 지향하다 보니, 열 명 남짓 모이는 월요 소피 책모임, 영어 원서 읽기, 달콤한 북살롱 등 소규모 모임도 활성화되어 있다. 소규모로 모이기 때문에 학습 공간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학교, 사무실, 북카페와 도서관 등 동네 곳곳이 훌륭한 강의실이 된다. 그 외에도 '전문 강좌' '만담 카페' 등이 있다.
출자금 3만 원을 내고 조합원이 되면, 누구나 지혜공유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네이버 밴드에서 매주 업그레이드되는 공지를 보고 관심 강좌를 신청할 수 있다. 지나치게 상업적이거나 종교·정치적 편향 등 공익에 어긋나는 목적만 아니면, 누구나 강좌를 제안할 수 있으며 5명 이상의 신청자가 있으면 개설된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주변 사람들의 요구를 수렴해 강좌를 제안하거나 강사를 섭외하는 일은 조합 운영위원이 맡고 있으며, 회당 5000원에서 1만 원 정도인 수강료 가운데 60퍼센트(%)는 강사료로, 나머지는 운영비로 쓰인다.
강사의 80% 이상이 일반 시민인데, 이들은 도시공간에서 이웃들과 지식을 공유한다는 취지에 맞추어 최소한의 실비만 받고 재능을 기꺼이 나누는 중이다. 8월 현재 오만가지 강좌에서는 가족과 함께 수제 막걸리 만들기, 아이 공부방 정리하기, 연꽃차 만들기, 토요 브런치 카페, 아트 테라피 등이 진행되고 있다.
강의가 끝난 강좌라도 5명 이상의 요청이 있으면, '앙코르' 강좌가 열린다는 것도 재밌는 발상이다. 조합은 5~10차례 정도 앙코르가 이어지면 해당 강좌 강사를 지역의 마이스터(생활 장인)로 지정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성인 강좌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배우는 일터와 삶터'나 '어린이 손뜨개 소품 만들기'처럼 지역에 사는 아이들을 위한 강좌도 열리고 있다. 말 그대로 마을이 학교인 셈이다.
■ 지혜공유협동조합의 교육사업
오만가지 강좌 : 다양한 주제와 형식으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는 강좌. 예) 집안 정리법 / 규방공예 배우기 / 꽃차 만들기 / 반찬 만들기 / 손뜨개 소품 만들기 / 비행기 기장, 승무원이 되고 싶어요 / 큰소리 영어 / 민화 그리기전문 강좌 : 이슈, 의제 등을 중심으로 개설하는 주제 강좌와 기획 강좌. 예) 르네상스 예술이야기 / 미술로 종교를 읽다 / 고전 읽으며 수다떨기 / 사진찍기
만담 카페 : 만 가지 주제를 대화 형식으로 나누며 지혜를 공감하는 프로그램. 주제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이야기 장. 예) 월요 소피 책읽기 모임 / 명작 원서 읽기 / 달콤한 북살롱 / 꿈 모으는 책나라 / 여시야독 '수트라' 읽기 / 연극단 / 합창단 / 내 마음을 치유하는 아트테라피
커뮤니티 공간 네트워크 사업 : 여러 커뮤니티 공간들을 발굴하는 플랫폼 역할. 예) 수다스토리 / 한양문고 / 파일럿클럽하우스 / 골든티 등 다양한 공간을 학습공간으로 / 오늘은 쉬어야지
지혜공유협동조합 카페 http://cafe.naver.com/learningcoop
지역사회가 배움의 장이 될 수 있도록
영리보다는 공공성을 추구하는 조합이다 보니, 어려운 점도 있다. 지혜공유협동조합은 관을 포함해 일체의 외부 지원을 받지 않고 운영된다. 유정길 이사장은 "외부 지원에 길들면 지원기관과의 관계에서 당당해지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자립할 수도 없다. 초기에는 힘들겠지만 돈이 없어야 자생력이 생긴다"며 자립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운영철학 때문에 살림살이는 늘 빠듯하지만 강좌만 들으러 왔던 수강생이 선뜻 조합원으로 가입할 때의 뿌듯함은 말할 수가 없다고.
주체적으로 배움의 연대를 이어가는 사례도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사무국 입장에선 힘이 나는 청신호다. 2013년 12월 시작된 '명작 원서 읽기' 소모임의 경우는 열 명 정원에 대기자가 있을 정도로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고, 작년 5월 시작된 '달콤한 북살롱'이라는 독서 모임도 조합원들 사이에서 만족도가 꽤 높은 편이다. 2년 넘도록 함께 지식을 탐구하면서 공동체의 끈끈함도 느낄 수 있으니, 즐거움이 크단다.
고양·파주 지역에는 지혜공유협동조합 말고도 일산에서 '바보주막'을 운영 중인 '마중물고파협동조합'과 '영화나눔협동조합(cinecoop)' 등이 잇따라 생겨나고 있어서 이들 단체와 배움의 연대를 확장해가고 있다. 재작년부터 이 단체들과 합동설명회를 열기도 했는데, 앞으로 본격적으로 함께 협력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지역에서 통용되는 대안화폐를 만들어 대안적인 경제운동도 함께 일으켜보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지혜공유협동조합은 지역통화의 변형된 형태인 배움 품앗이의 일종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염두에 두고 있는 사업이 '지역공간의 공유'다. 경제 불황 속에 지역 곳곳에서 각자 힘들어하고 있는 공간들이 적지 않은데, 공유 공간의 개념을 도입해 이용도가 저조한 공간과 그 공간이 필요한 사람을 연결하는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중이다.
이웃과 담쌓고 사는 대도시의 떠돌이 문화를 '학습'을 매개로 서로 어울리는 붙박이 공동체 문화로 변화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지역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학습장이 되면 좋겠다는 지혜공유협동조합의 꿈은 '삶의 어느 곳에서나 배움이 일어난다'는 교육철학으로 마을학교를 지향해오던 대안교육운동과도 한길에서 만난다.
그러고 보니,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공유한다고 이름 붙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지식 공유를 넘어 가까운 이웃을 '지혜로운 스승'으로 알아보는 혜안을 갖게 되는 것도 조합원으로 활동하는 큰 묘미가 아닐까? 새로운 배움의 장을 열어가는 지혜공유협동조합, 함께 가는 길 위에서 더 좋은 동무들을 만나게 되길 바라 마지않는다.
*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민들레>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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