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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 가온이의 분노 "못난 정부, 제발 정상적인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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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 가온이의 분노 "못난 정부, 제발 정상적인 생각을!"

[온 가족 세계여행기] "네덜란드, 매력이 불쾌감으로 바뀌다"

옹색한 벨기에 여행을 짧은 일정으로 마치고 네덜란드로 출발했다.

풍차의 나라, 동화 속의 한 장면이 연상되는 곳. 한껏 부푼 기대감으로 암스테르담으로.
네덜란드로 들어오자마자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영화에서 보던 미래 사회처럼 도시 초입부터 서로 다른 특색을 가진 멋진 건물들과 개폐식 다리, 그리고 고속도로의 가드레일까지 모두가 예술작품처럼 멋지기만 하다. 달리는 자동차에서 사진을 찍어봤자 흐릿하게 나올 걸 알면서도 멋진 건물들을 향해 자꾸만 셔터를 누르고 본다.

▲암스테르담 거리. ⓒ가온가람이 가족

유럽 최고의 선진국을 보는 것처럼 세련된 도시 풍광과 특색 있게 반짝거리는 건물들, 지나가는 행인들까지 쿨하고 멋질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니 말이다. 잘 조성된 길과 공원, 깔끔하다 못해 세련된 도시의 전경. '네덜란드 역시 최고의 선진국이구나' 했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불쾌감으로 바뀌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항상 새로운 도시를 가면 숙소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즈넉하고 한적한 도시 근교에 캠핑장에 자리를 잡는다. 작은 방갈로가 여러 채 있는 한적한 곳. 조그마한 토끼들이 풀숲에서 뛰어다니고 숲의 향기 또한 참 좋다.

그런데 캠핑장 접수 창구에 있는 사람의 태도가 어째 좀 이상하다. 여기서 머물 수 있는지 물어보고 여러 가지 방갈로가 있어서 '이건 어떤 거냐? 저건 어떤 거냐?' 물어보는데 막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닌가. 동양인이라 무시하는 건가. 장기여행자의 행색이 다 그렇듯 초라해서 그런 건가. 여하튼 불쾌한 기분으로 돌아서는데, 다른 외국인 여행자가 들어온다. 이 사람에게도 소리를 막 지르면서 대답을 한다. '이 사람이 왜이래' 했지만 그냥 그렇게 예외적인 사람으로 치부했다.

▲ 암스테르담 안네의 집. ⓒ가온가람이 가족

다음날 동화속의 풍차마을로 간다. 잔세스칸스.

생각보다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다. 머릿속에 놀이공원의 화려한 풍차마을이 있어서일까? 물론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지만, 꾸미지 않은 조용한 마을이 마음에 든다. 가다보니 이 마을에 여러 채의 집도 있고 아이들도 뛰어노는 것을 보면 옛날부터 사람들이 살던 곳을 풍차마을로 지정한 듯하다.

▲ 풍차마을. ⓒ가온가람이 가족

기원을 찾아보니 네덜란드는 '바다보다 낮은 땅'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바다보다 땅이 낮기 때문에 비가 오거나 물이 고이면 물이 저절로 바다로 흘러가지 못하니까 물을 퍼내기 위해 풍차를 이용했던 듯하다. 18세기에는 무려 700여 개가 넘는 풍차가 있었으나 지금은 10개 남짓의 풍차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옛날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서 세계 문화 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록되어 있다.

이렇게 역사와 전통을 지닌 마을이라서 사람들의 자부심도 대단할 듯하다. 그래서일까? 강을 따라 풍차마을을 산책하는데, 주차불가 공간에 빨간색 작은 소형차를 누군가가 주차했나보다. 동네 주민인 할아버지가 우리를 부른다. 이 차가 너희 차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대답했는데도 믿질 않는다. 계속 우리를 주시하며 주차하면 안 되는 공간에 주차를 했다고 투덜댄다. 우리는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의 매표소 옆 주차장에 주차해 두었다.

왜 그 주민은 많은 관광객들 중에서 유독 우리를 지목하며 그 차의 주인인지를 물었을까?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생각해보니 몇 개월 장기여행을 하는 초라한 행색의 우리와 세련되고 고상한 네덜란드가 왠지 잘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 속에 우리를 넣어두고 지목하여 물어보고 투덜대는 태도는 상당히 무례해 보였다.

▲ 풍차마을 나막신박물관. ⓒ가온가람이 가족


그렇게 산책로를 따라 계속 걸어간다. 강가에서 헤엄치는 오리가족도 보고 염소에게 풀도 주며 오물거리고 먹는 염소 입이 신기하기만 하다. 이렇게 가람이와 한참 염소도 만져보고 풀도 뜯어주고 있는데 가온이가 거의 울 듯한 표정이다.

'왜 그래?' 했더니, 산책로의 작은 차도를 따라 걷고 있는데, 관광지라 사람들이 많이 차도로 지나다녀서 가온이도 차도를 따라 좀 걸었던 모양이다. 뒤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던 노부부가 경적을 울리자 가온이도 피한다고 피한 것이 할아버지와 같은 방향으로 피해서 할아버지가 급브레이크를 밟고 지나간 모양이다. 그런데 그 뒤를 따라오던 할머니가 가온이를 향해 "멍청이(stupid)" 하며 지나갔다는 것이다.

조금 이해가 안 됐다. 그곳이 차도라서 지나다니면 안 되지만 관광지라서 차도 거의 안 다녀서 너도나도 그곳을 그렇게 지나다니고 있었다. 가온이도 무신경하게 그곳을 걸은 것뿐이고, 아이(정확히는 청소년) 아니던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아이와 부딪힐 뻔 했으면 응당 '미안하다, 놀라지 않았냐?' 는 말이 먼저 나와야 할 것 같은데, 무시하는 투로 "멍청이(stupid)"라고 했다니 나원 참.

원래 사람들이 사는 동네이고, 차도가 있으니 이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이 그곳 사람들의 생활을 방해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입장료까지 받는 풍차 마을이라면 관광객들의 허술함은 너그럽게 이해해야 하는 것 아닌가. 더군다나 아이가 작은 차도를 따라 걷고 있다면 사람이 우선이니까 자전거가 조심해야 하는 것이 당연할 텐데 말이다.

우리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 처음의 그 멋지고 세련된 느낌에서 오만하고 무례한 느낌으로 바뀌는데 불과 하루가 안 됐다. 시작부터 연거푸 남을 무시하는 태도를 각각 다른 장소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겪고 나니 불쾌감만 쌓여갔다. 그 이후 시내를 돌아다닐 때도 우리가 먼저 거리감을 두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에게서 친숙함이나 친절함은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 풍차마을. ⓒ가온가람이 가족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게르만족의 피가 흐르는 독일과 네덜란드. 사람들의 신체도 건장하고 우람하다. 특히 여자들이 키가 크고 건강해 보인다. 비슷한 신체조건을 가진 독일과 네덜란드 사람들. 독일을 지나오면서 친절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는데, 네덜란드에 와서는 부딪치는 사람들마다 오만하고 무례하다니.

물론 여러 사람들 중에서 일부분이겠지만, 일종의 환상을 가졌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우리의 기대를 여지없이 깨버리며, 씁쓸한 감정을 남겼다. 친절보다는 거만함이 묻어나는 그들의 태도에 울컥하기도 하고 큰 애는 아직도 풍차마을 동네의 거친 태도를 성토하곤 한다.

▲ 풍차마을. ⓒ가온가람이 가족

세월호를 기억하며.

여행 중 동생에게 카톡이 왔다. 어제 꿈자리가 너무 뒤숭숭하다며 가족들이 괜찮은지 물었다.

나의 고향은 진도다. 우리는 식구들과 함께 어렸을 적에 항상 팽목으로 해수욕을 갔었다. 집에서 가까운 바다고 서해안이라서 매해 굴도 따고 모래 장난하고 바다에서 놀면서.

그런데 동생이 꿈에 내가 진도 앞바다에서 너무나 서럽게 우는 꿈을 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안부를 물은 것이다. 우리 가족은 모두 괜찮다고 말한 다음 날, 바로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바로 진도 앞바다 팽목항에서.

우리는 여행 중 세월호에 대해 수없이 얘기했고, 수없이 울었고, 수없이 서러웠다.
한국에 가면 무엇이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국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 너무 빨리 잊어버리는 것일까? 불과 1년 조금 넘었는데 해결된 것은 없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들을 잊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그때의 충격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데 말이다.

- 다음은 가온이의 글이다.

그날은 여느 때와 같은 아침이었다. 물론 독일에서 맞이하는 아침.

내가 일어났을 때 엄마는 꽤나 심각한 얼굴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냥 평소와 같이 뭘 보고 있느냐고 물었고, 엄마는 지금 한국 진도 앞바다에서 고등학생들이 잔뜩 탄 배가 침몰하고 있다며 다급하게 말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사실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엄마의 말이 사실임을 안후에는 그들이 빨리 구조되기를 바랐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리고 다시 엄마로부터 전원 구출 됐다는 소리를 들은 나는 안도했지만. 결국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나는 그날 다른 도시로 이동할 때마다 인터넷으로 세월호에 대해 계속 검색했다. 아니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그러고 있었다. 내 또래의 언니 오빠들이 영문도 모른 채 바다 속에서 싸늘하게 식어가야만 했다는 글들이 여기저기 있었고, 그런 내용을 담은 가슴 아픈 영상들은 눈물을 쉴 새 없이 쏟게 만들었다. 엄마와 나는 그날 정말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렸다. 여행을 떠나와서 처음 듣게 된 한국 소식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정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즐겁고 행복한 수학여행의 첫 시작이 친구들의 죽음 또는 자신의 죽음이 돼 버린 단원고 언니 오빠들이 너무도 안타깝게 느껴졌다.

제삼자의 입장으로 보았을 때에도 너무 슬픈 일인데 그것을 직접 겪은 사람들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한창 꿈을 꾸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정부가 이해되지 않았다. 화가 났다. 충분히 구조할 시간과 여력이 있었는데도 거의 구조하지 못하고 죽게 만든 이 엄청난 사건은 명백히 못난 정부의 탓인데, 유가족의 요구도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 정부를 갈수록 불신하게 되었다.

또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유가족의 시위를 돈 몇 푼 더 받으려고 저런다며 글을 쓰는 무개념 누리꾼들을 보면서 어쩌면 저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왜 한국에선 이런 한심한 자들이 판을 치는지, 그동안 이런 암울한 사회 속에서 내가 지내왔다는 생각에, 가슴에 큰 구멍이 난 것 같았다.

이렇듯 전해들은 것 말고 내가 내 두 눈으로 두 귀로 보고 들은 것은 더 큰 충격을 주었다. 세월호 사건 후로는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면 몇몇 외국인들은 너도나도 세월호 이야기를 했다. "그 배의 이름이 뭔지는 모르지만 큰 배가 침몰한 사건 너희 나라 일이지?"라며 확인을 했고, 넌 혹시 그 배 안 탔냐, 어떻게 된 일이냐 등 많은 질문들을 했다.

또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만난 현지인들은 한국으로 돌아가지 마라, 위험하지 않느냐, 그냥 여기서 우리와 같이 살자, 너희 나라에선 배는 타지마라 등 걱정까지 해주었다. 이렇게나 많은 외국 사람들이 세월호에 대해 알고 있는지 꿈에도 몰랐다. 또 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너무너무 위험천만한 나라이고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기가 찰 정도였다.

이런 상황을 우리 정부도 알고 있을까? 알면서도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걸까? 이제 겨우 17살인 나는 단 한 번도 정부나 사회에 이렇게까지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다. 이명박 정부 때 부모님을 따라 촛불집회에 나간 적은 있으나 나 스스로 그 정부를 미칠 듯 증오하며 정부의 잘못을 탓하며 화를 낸 적이 없었는데 지금의 정부는 정말이지 싫다. 우리나라에 제발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가온가람이 가족 세계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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