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장악' 시도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수식하는 말이었다. 그 방식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낙하산 사장을 투하시켜 언론사 내부 갈등을 일으킴으로써 정권에 비판적인 기자들을 만신창이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제 '언론 장악'이라는 수식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붙여야 할 것 같다. 보수 집권 7년 반의 피로를 호소하는 기자들과 달리, 그들은 왕성하다. KBS, MBC에 뉴라이트, 극우 성향의 인사들을 수장으로 만들었고, 이제 포털 사이트의 뉴스 운영을 걸고넘어진다. 야당이 지리멸렬한 와중에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총선·대선 프로젝트를 착착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네이버 평정'의 추억, 다시 되살리기?
새누리당 이장우 원내대변인은 지난 3일 당 최고위원회의 비공개회의에서 포털에 노출된 뉴스 콘텐츠에 편향성이 있다는 내용의 보고가 있었다고 전했다. 이날 당 최고위에 보고된 것은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최형우 교수 등 연구진이 낸 '포털 모바일뉴스(네이버·다음) 메인 화면 빅데이터 분석 보고서'였다.
이 원내대변인은 "(비공개회의에서) 그동안 조사한 연구 보고서를 공식적으로 (보고)했는데, 일부 편향성이 드러났다고 해서 이 문제에 대해 국감에서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며 "전체적으로 굉장히 그동안 네이버나 다음에 게재되는 이런 여러 가지가(기사들이) 편향성이 있다는 객관적 자료"라고 설명했다. 어디가 더 편향적이었느냐'는 질문에 이 원내대변인은 "다음이 더 심하다"고까지 말했다.
모바일 포털 메인 화면에 노출된 기사를 대상으로 분석했다는 이 보고서를 들여다봤다. (☞관련기사 : 새누리, "네이버·다음 편향" 보고서 보니…) "중립적 기사의 수가 많기는 하지만, 긍정적 콘텐츠보다는 부정적 콘텐츠의 수가 더 많으며 표현하는 방식 역시 이슈를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의 콘텐츠가 더 많음"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특히 사회 정치 경제 국제 북한 분야의 부정적 콘텐츠 비율이 높으며 모든 카테고리 내 부정적 콘텐츠의 다수가 정부와 청와대 관련 콘텐츠임"이라고 돼 있다. 편향적인 이유 중 하나가 "당 대표에 대한 언급의 경우 네이버, 다음 모두에서 김무성 대표보다는 문재인 대표가 더 많이 언급"된다는 것이었다.
이같은 편향을 시정하기 위해 포털 사이트 뉴스 선택 및 노출 기준 마련에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포털의 "자율성"을 강화한다면서, 자율성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을 한다니, 모순 화법도 이런 모순 화법이 없다. 궤변이다. 궤변을 앞세워 인터넷 여론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의지가 해석되는데도, 새누리당은 이를 거리낌 없이 공개, 여론몰이에 나섰다.
공영방송 이사장의 화려한 이력들
방송 쪽에서는 희한한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 먼저 문화방송(MBC). '부림사건' 수사로 유명한 공안검사 출신 고영주 씨가 지난달 21일 임시이사회에서 이사장에 선출됐다. 고 이사장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13년 1월 "문재인 후보는 공산주의자"라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고 이사장은 또 지난 2011년 12월 한 강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적이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대통령이 됐다고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했다. (☞관련기사 : MBC 고영주 이사장, "노무현=이적" 발언도)
고 이사장은 방문진 감사를 맡고 있던 2012년 9월 7일 방문진 이사회에서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3년 방영된 <PD수첩> '16년간의 의혹, KAL 폭파범 김현희의 진실' 편의 공정성 문제를 지적하고, MBC 특별대담 '마유미의 삶, 김현희의 고백' 편을 방송하도록 개입한 의혹을 받았었다. 방문진은 MBC 경영에만 관여할 수 있을 뿐, 방송 프로그램 편성 등에 관여할 수 없다. 이런 석연 치않은 의혹이 있는 인사가 방문진 이사장이 된 것 자체로 불필요한 '불공정 방송' 시비를 낳을 수 있다.
방문진은 여당이 6명의 이사를, 야당이 3명의 이사를 추천할 수 있게 돼 있다. 보수 성향의 인사들이 들어오는 것은 불가피하나, 고 이사장의 경우는 그 도를 지나쳤다. 야당 대표를 '공산주의자'라 칭하는 인사가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한국방송(KBS). KBS이사회는 지난 2일 임시 이사회를 개최하고 야당 측 추천 이사들이 퇴장한 가운데 이인호 이사장 연임을 의결했다. 이 이사장은 대표적인 '뉴라이트' 인사로 꼽힌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후인 지난 2013년 3월 청와대 원로 초청 오찬에서 이 이사장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민족문제연구소의 역사 다큐 <백년전쟁>을 두고 "국가 안보 차원에서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었다.
이 이사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명한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를 적극 엄호하는 등 '친정부' 행보를 노골적으로 보여왔다. KBS가 지난해 6월 "일본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식의 발언이 담긴 문 전 후보자의 강연 동영상을 특종 보도한 데 대해 불쾌한 심경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문창극) 강연을 보고 감동받았다"며 "(강연 내용에 대해) 반민족이라고 하면 제정신이 아니고 마녀사냥이다. 비이성적이고 양심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
양대 공영방송의 이사장 수준이 이 정도다. 정치권과 언론계를 오랫동안 지켜봐 왔던 한 중견 언론인의 말이다.
"과거에는 언론계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숨기려 하고, 되도록이면 중립적으로 보려는 시각을 가지려고 많이 노력했다. 그럼에도 문제가 불거지더라.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이렇게 대놓고 해먹을 수 있을까 놀라고 있을 뿐이다. '염치(廉恥)'가 사라졌다. 철판(鐵板)이 깔렸다."
공영방송은 '평정'됐나?…여기에 든든한 지원군, 종합편성채널
공영방송과 포털이 '장악' 대상으로 여겨진다면, 종합편성채널은 여권의 든든한 지원 세력이다. 이명박 정부는 종합편성채널을 낳았다. 대표적인 보수 언론 세 곳인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에 방송을 허가해줬다. 이렇게 탄생한 TV조선, 채널A는 경영난에 시달리며 제작비가 싼 시사프로를 대거 편성, 역량이 검증되지 않은 인사들에 '정치평론가'라는 타이틀을 붙여주고 노골적인 편파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전직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 몸담았던 인사가 정치 평론을 하고, 여당 당적을 가진 인사들이 대거 출연해 객관성을 가장한 논평을 쏟아낸다. 무리한 '종북 몰이'는 기본이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까지 여과 없이 내보낸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2012년 대선 당시 종편에서 종횡무진 활약했던 '정치 평론가'였다는 사실은 놀랍지도 않다.
언론 환경은 이제 '기울어진 운동장' 수준이 아니다. '뒤집어진 운동장'이다. 민주화에 무임승차한 언론은 합법적인 방식(이라고 주장하는 방식)으로 정치에 개입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준 것은, 다시 말하지만 이명박 정부다. 박근혜 정부는 그 열매를 수확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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