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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대통령 "갑자기 하면 놀랄까봐 거부권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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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盧대통령 "갑자기 하면 놀랄까봐 거부권 예고"

긴급 기자회견서 정부조직개편안 거부권 강력 시사

노무현 대통령이 28일 오후 3시 30분 긴급히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개편안을 맹비난했다.
  
  노 대통령은 원고지 30매 분량의 기자회견문을 통해 정부조직개편안의 내용은 물론 진행 절차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이미 인수위의 여러 행태나 정책에 대해 공개적 비판을 수차례 가했던 노 대통령은 지난 주 국무회의에서부터 정부조직개편안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도 "이런식이면 거부권 행사를 검토할 수 있다"고 예고했다.
  
  사실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그 강도가 더 세졌을 뿐 이전의 그것과 별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다만 노 대통령은 통폐합 대상 부서와 위원회 하나하나를 적시해 가며 그 존속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실상 '하나도 손대지 말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임기를 한달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긴급 기자회견의 형식으로 차기 정부를 비판하고 나선 이유가 관심사다. 이날 노 대통령은 손학규 대표와 대통합민주신당을 겨냥하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 앞서 기자들을 만난 이재정 통일부 장관도 "통일부 폐지는 남북통일을 지향하는 헌법 4조에 위배된다"면서 "국회에 가서 장관으로서 부처 존속의 당위성에 대한 나의 소신을 밝힐 것이다. 나는 현재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여기에(통일부 존속)에 매달리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신구 권력의 갈등이 극에 달하는 모양새다.
  
  "대부처 하면 잘 살고 소부처 하면 못 사냐"
  
  
노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조직개편의 내용에 관하여 인수위에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다"면서 "정부 조직 개편의 논거가 무엇이냐? 우리 정부가 큰 정부냐? 크다면 세계에서 몇 번째나 큰 정부이냐? 공무원 수, 재정규모, 복지의 크기, 각기 세계에서 몇 번째나 큰 정부인지 말할 수 있냐?"고 따져 물었다.
  
  그는 "대부처 하는 나라가 잘사는 나라이고 소부처 하는 나라는 못사는 나라인가? 인수위는 그렇게 알고 있냐? "고 공세적 질문을 이어갔다.
  
  여성가족부,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 등을 적시해 가며 통폐합 방침을 비판한 노 대통령은 통일부에 대해서는 "지키자고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지켜지겠지요"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또한 노 대통령은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의 기획재정부 통합에 대해 "그동안 사회부처 예산이 계속 증액되어온 것은 예산 기능이 경제부처로부터 독립해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이제 예산 기능이 경제 부처로 통합되면 예산구조도 다시 변화할 것이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예산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라고 비판했다.
  
  "'맡겨달라'는 이야기 못 믿겠다"
  
  이같이 내용적 문제를 지적한 노 대통령은 "절차 문제에 관해 좀 물어보고 싶다"며 화제를 돌렸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에서 수년에 걸쳐 공들여 다듬은 정부조직에 대해 인수위 출범 20일 만에 개편안을 확정하고, 이를 불과 1∼2주 만에 국회에서 처리하자고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국민들이 선거로 대통령을 뽑아 주었으니 이런 문제는 물어 볼 것 없이 백지로 밀어주어야 하는 것이냐"고 인수위를 비판했다.
  
  노 대통령은 "인수위가 부처 공무원들에게 현 정권이 한 정책의 평가를 요구하고, 새 정부의 정책을 입안하여 보고하라고 지시 명령하는 바람에 현직 대통령은 이미 식물 대통령이 되어 버렸다"며 인수위의 행태를 비판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부처 통폐합이 단지 일반적인 정책의 문제라면 떠나는 대통령이 굳이 나설 것 없이 국회에서 결정해 주는 대로 서명 공포할 수도 있을 것이나 참여정부의 철학과 가치를 허물고 부수는 것이라면 여기 서명하는 것은 그동안 참여정부가 한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바꾸는 일에 동참하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법안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가치를 모두 부정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넘어왔을 때, 그때 재의를 요구한다면 새 정부는 아무 준비도 없이 낭패를 보게 될 것이다"면서 "국회에서 통과된 법만 믿고 새 정부 구성을 준비했다가 뒤통수를 맞았다고 저에게 온갖 비난을 다 퍼부을 것이다. 그래서 미리 예고를 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 국회가 하는 것을 보고 말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국회에 맡겨 둘 일이지 대통령이 왜 미리 나서느냐고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었다"며 대통합민주신당의 손학규 대표를 겨냥하기도 했다.
  
  그는 "진보의 가치와 정책을 실현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알고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작은 정부론에 주눅이 들어 있는 것인지 여론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무작정 믿고 기다릴 수만은 없는 것 아니겠냐"며 이같이 말했다.
  
  "딱 잘라 말은 못하겠다"
  
  당초 이날 기자회견에 대해선 노 대통령이 수용할 있는 '마지노 선'이 제시되지 않겠냐는 관측도 나왔었지만 실 내용은 이와 달랐다.
  
  노 대통령이 거의 모든 개편 방안을 수용할 수 없다고 강조한 바람에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이 만약에 양한 절충안을 도출해도 소용이 없어지는 것.
  
  하지만 노 대통령은 '어느 정도면 수용하고 어느 정도면 거부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선 "저도 딱 잘라 말씀드릴 수 없다"면서 "깊이 들여다보면 대개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고만 답했다.
  
  '국회에서 논의중인데 거부권을 언급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대해 노 대통령은 "갑자기 하면 놀랄까봐 예고하려고 한다"면서 "거부권 행사를 미리 언급해 국회심의에 영향을 미치고 그래서 실제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 정치 아니냐"고 답했다.
  
  거부권 행사 여부를 둘러싼 모호성 자체가 전략적 목표라는 이야기다. 한편 노 대통령은 '대선 결과가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을 어느정도 반영한 것 아니겠냐'는 질문에 "선거에서 이기면 백지위임 받는 것이냐"면서 "지난 5년간 저는 뭐 백지위임 받아서 했냐"고 맞받아쳤다.
  
  이날 노 대통령은 "철학과 양심에 반하는 법안에는 서명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다음 정부의 정책은 다음 정부에서 실행하며 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인수위 측의 정부조직개편안 자체를 반대한다는 논리적 주장과 '나는 도장 못찍으니까 하고 싶으면 내가 물러난 다음에 하라'는 속내가 혼재된 45분 간의 기자회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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