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비보다 2배 많은 간병비
나는 서울의 한 종합 병원에서 작업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작업치료사는 재활 치료팀의 일원으로서 중추신경계(뇌, 척수 등) 장애로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치료한다. 작업치료사의 업무 범위는 일상생활 훈련, 인지 재활, 사회 복귀 훈련, 연하 곤란(삼킴 장애) 치료 등이다.
재활 치료라고 하면 보통 물리 치료와 운동 치료를 생각하는데 작업치료사의 역할도 그러하다. 작업치료사로 근무하면서 많은 환자의 다양한 상황을 마주하다 보니, 환자들이 겪는 고충을 자연스레 접하게 된다. 특히 장기 입원이 불가피한 중추신경계 환자들에겐 병원비보다 더 비싼 간병비는 환자들에게 크나큰 부담이다.
그럼에도 당사자들은 어쩔 수 없다며 수긍하고 받아들인다. 보통 중추신경계 환자는 완치되는 경우가 거의 없으므로, 이들이 남아있는 기능을 최대한 살려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다. 환자들은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 이상 병원 생활을 하곤 하는데, 이들이 내는 간병비는 병원비보다 2배 혹은 3배가량 많다.
예를 들어, ㄱ씨는 낙상 사고로 A대학 병원에서 경수 4~5번 완전 마비 진단을 받고 경추 수술을 받았다. 대학 병원에서 3주간 수술비와 입원료로 2000만 원 정도, 3주간 간병비로 210만 원을 지불하였다. 급성 환자의 수술비와 검사료가 워낙 비싼 탓에 간병비도 만만치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런데 A대학 병원이 ㄱ씨에게 더 이상 치료할 수 있는 게 없다며 타 병원으로 전원을 요구하였다. ㄱ씨는 몸이 다 낫지도 않았는데 무슨 소리냐며 병원을 상대로 언성을 높였지만, 어쩔 수 없이 재활 병원으로 옮겨갔다. 한 달 후, 재활 병원에서 치료비 포함 입원비로 120만 원이 나왔다. 그렇지만 어렵게 구한 간병인에게 지급해야 할 간병비는 월 260만 원이었다. 전체 병원비의 두 배가 훌쩍 넘는 금액이었다. 이렇게 ㄱ씨가 2년여 병원 생활을 한다면 간병비 액수만 6000만 원을 넘게 될 것이다.
왜 이렇게 간병비가 비쌀까? 일단 간병비는 국민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또한 한국간병인협회를 통해 활동하는 간병인들의 간병비는 하루 평균 6만~7만 원 선으로 정해져 있는 반면, 협회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간병인들은 자신이 부르는 게 값이 된다. 환자의 질병 정도에 따라 많게는 일당 11만 원 적게는 9만 원을 호가한다. 따라서 협회 등록 간병인 도움을 받을 경우에도 약 한 달 200만 원이 소요되고, 협회 미등록 간병인인 경우 한 달 260만~280만 원까지 이른다.
열악한 간병인 처우
그렇다고 간병 협회에 소속된 간병인들의 처우는 좋을까? 그렇지 않다. 24시간을 육체적 정신적 노동을 했음에도 간병협회 소속 간병인 분들은 그에 걸맞은 적합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협회와 병원들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간병비에서 협회비를 제외하면 간병인들이 직접 받는 금액은 굉장히 적다. 일당 6만~7만 원을 24시간 간병비라고 가정하였을 때, 실제 받는 금액은 약 160만 원에 불과하다. 시급으로 환산하면 2000원이 약간 넘는 수준으로 최저 임금에도 도달하지 않는다. 협회 미등록 간병인의 경우 간병비는 조금 높지만, 이 금액도 24시간 시급으로 환산하면 최저 임금에 못 미치기는 마찬가지다.
간병인들은 4대 보험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여 간병 도중 본인에게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도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간병인들의 식대도 만만치 않다. 환자가 부담을 할 것인지, 간병인이 개인 부담을 할 것인지에 대한 시비도 끊이지 않는다. 식사도 환자의 식사가 다 끝난 다음 시간을 쪼개 겨우 먹을 수 있어, 식사 시간 또한 보장 받기 어렵다.
이런 상황들은 간병비에 대한 정부 정책이 제대로 갖추어져있지 있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간병인은 근로기준법을 적용 받지 못하는 특수근무자로서 간병인협회와의 근로 계약 기준도 애매모호하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경력과 실력을 갖춘 간병인들은 간병인협회를 벗어나 프리랜서로 활동하길 원하기도 한다. 이 경우 간병인협회 소속으로 눈치를 보며 일했던 것과는 다르기에 간병인과 환자의 관계가 갑을 관계 혹은 동등한 관계로 변모한다. 이 역시 결과적으로 간병비 인상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간병비 개선, 다음 정부로 넘어가
이런 상태를 그대로 방치하는 건 곤란하다. 환자와 간병인 모두 공생하는 관계를 만들려면 간병비가 국민건강보험 제도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간병비 문제는 2012년 대선에서 이슈화되었다. 박근혜 후보는 4대 중증 질환(희귀 난치성 질환, 뇌혈관 질환, 심혈관 질환, 암)의 3대 비급여(선택 진료비, 상급 병실료, 간병비)를 모두 국가가 부담하는 것을 공약으로 내세워 자신의 복지 정책을 왼쪽으로 끌어 왔다. 과거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복지 정책을 오른쪽으로 끌고 갔던 것과 대비된다.
결국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렇다면 2년여가 흐른 지금, 3대 비급여 항목의 공약이 어느 정도 지켜지고 있을까?
첫째, 선택 진료 제도. 이는 원래 명칭이 '특진 제도'였으나 '지정 진료' 로 바뀌었고 2000년부터 '선택 진료 제도' 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처음 도입은 국·공립 병원 의료진의 상대적 저임금 보전을 위해 실시하였으나, 점차 민간 대형 병원으로 확대되었고 의료비 지출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전에는 선택 진료비가 진료 항목별로 진료비의 20~100% 선에서 부과되었는데, 지난해 8월부터 15~60%로 제한되었다. 올해 9월부터는 선택 진료 의사의 숫자도 줄어든다. 현재 병원별로 전체 의사의 80%까지를 선택 진료 의사로 둘 수 있었는데, 이 비율은 올해 67%로, 내년에는 33%까지 낮아질 예정이다. 이러면 2012년보다 환자의 진료비 부담이 35% 경감될 것으로 기대된다.
둘째, 상급 병실료. 상급 병실은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병실로서 각 병원마다 수입 확충을 위해서 요긴하게 활용됐다. 1일당 많게는 100만 원 단위가 되기도 하며 적게는 몇만 원에 이르기까지 금액은 다양하다. 보통 병원들이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는 6인실이 가득 차 있다는 이유로 상급 병실 입원을 유도하곤 한다. 사실 웬만한 사람들은 병원의 돈벌이용 술수라는 걸 다 알고 있는 내용이다. 다행히 작년 9월부터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병실 기준이 기존 6인실에서 4인실로 확대되었다. 올해 9월부터는 전체 병실의 50%만 확보하면 되었던 일반 병실의 비율이 70%로 강화된다. 이전에 대형 병원에 입원할 경우 울며 겨자 먹기로 1, 2인실을 거쳐야 했던 관행이 조금이나마 깨어지기를 기대한다.
셋째. 간병비. 박근혜 대통령은 작년(2014년) 2월 시민단체, 야권의 요구에 밀려 "3대 비급여에 대한 개선 대책"을 내놓았다. 그런데 여기서도 간병비 대책은 미미한 수준에 그렸다. 간병을 팀 간호 체계인 포괄 간호 서비스 형태로 흡수하겠다는 개선 방향은 바람직하지만, 본격 시행은 2018년 이후로 미뤄 사실상 다음 정부로 넘기고 있다.
간병비, 국민건강보험으로 포괄돼야
올해 6월 원유철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간병비에 대한 보험 적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 당시 메르스 확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혔던 '간병 문화'에 대한 적극적 대응 방침으로 간병비를 국민건강보험에 포함시키려 한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메르스 여세가 잠잠해지면서 간병비의 국민건강보험 포함에 대해 더 이상 언급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부터 서울의료원을 비롯한 공공 병원을 필두로 병원들마다 국가 시책인 '포괄 간호 서비스(보호자 없는 병원)'를 적용하려는 움직임들이 생겼다. 이것은 간병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져주기도 하지만, 그만큼 많은 간호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현재 중소 병원에선 부족한 간호 인력 때문에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적절히 제공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부족한 상황에서 '포괄 간호 서비스를' 시행한다는 것은 역부족이다. 조속히 간호 인력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했던 간병비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공론화하는 노력도 역시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환자분은 간병비 문제로 등골이 휘고 있다. 신체의 아픔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간병비 문제는 국민건강보험 제도 안으로 포괄해 국가가, 우리 사회가 꼭 함께 해결해야 한다.
(이준수 작업치료사는 경희대학교 공공대학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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