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4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정치학자로서 볼 때, 이번 고등법원의 판결은 우리 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 핵심은 '선거'라는 민주주의의 요체를 둘러싼 선거권자와 피선거권자들의 다양한 정치적 행위를 어떻게 수준 높게 운용할 것인지에 대한 큰 사회적 합의와 기틀을 만들어가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감 선거 다시 치른다?…'거대한 비합리성'!
사실 조희연 교육감이 처음 기소되었을 때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당시 상대 후보의 영주권과 관련한 공방이 있었는지는 다들 기억을 잘 못해도, 그것이 공직선거법 상의 허위 사실 공표 죄로 처벌받아야 할 정도의 사안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찰의 기소는 다른 정치적 목적을 갖고 있는 표적 기소로 비판받았고, 그 부당성은 당연히 1심 재판 과정에서 정정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1심 판결은 검찰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조희연 교육감의 자격 상실로 어렵게 쌓아가고 있는 새로운 서울 교육이 흔들릴 위기도 걱정이지만, 무엇보다 주권자들이 행한 선거를 무위로 돌리고 다시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어이없는 사실, 이 '거대한 비합리성'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과연 선거법이 이러한 비합리성을 목표로 만들어졌겠는가? 공직선거법 제1조는 "'대한민국헌법'과 '지방자치법'에 의한 선거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와 민주적인 절차에 의하여 공정히 행하여지도록 하고, 선거와 관련한 부정을 방지함으로써 민주 정치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선거법은 유권자의 주권 실현을 도와주는 역할해야
선거법은 궁극적으로 민주 정치의 발전을 위한 것이다. 대의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유권자들의 신성한 주권이 가장 이상적으로 발현되도록 도와주기 위한 장치다. 선거에 있어 유권자의 주권 행사가 이상적으로 발현되도록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의 요건을 필요로 한다.
첫째, 유권자의 권리가 제약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둘째, 유권자의 주권 행사가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첫 번째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 언론 자유와 관련된다. 두 번째는 정보 접근성이 차단되어서는 안 되고, 선거 및 후보와 관련한 모든 정보는 모두에게 동등하고 공평하게, 그리고 최대한으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거는 결국 유권자의 주권 행사가 총합을 이루어 최선의 대행자를 선출하는 것, 그리하여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 공공선 실현을 목표로 한다. 유권자는 각자 다른 가치관과 이념, 양심에 따라서 선택하는 것이지만, 적어도 그 과정에 왜곡이 있어서는 안 된다. 선거 과정은 풍부한 정보 소통과 투명하고 열린 상호 작용의 장이 되어야 하며, 혹여 유권자가 제약되거나 왜곡된 정보, 기만과 허위에 의해 자신의 본심에 반하는 투표를 하게 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모든 것을 최상으로 보장하는 것이 바로 공직선거법의 존재 이유다.
공직선거법의 250조는 자신에게 유리하게, 또는 상대방에게 불리하게 할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말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규정이다. 법 적용의 광범위함과 모호성에 문제가 있는 이 규정을 헌법적 관점에서 재고할 여지는 없는지 면밀한 검토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지만, 일단 실정법을 존중할 때, 그러한 내용의 법을 만든 이유는 간단하다. 선거가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서 유권자의 본심과 일치하는 합당한 결론이 나오지 않을 것에 대한 우려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유권자들이 허위 정보에 속아서 자신의 본심과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면 주권의 심각한 훼손이 아닐 수 없다.
조희연 후보의 영주권 공방은 유권자의 본심을 왜곡하지 않았다
이 대목에서 조희연 교육감의 사례를 볼 필요가 있다. 검찰의 논리를 압축하면, '조희연 교육감이 상대 후보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해서 고의로 허위 사실임을 알면서(다시 말해 상대 후보에게 미국 영주권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 그 사실을 공표했고, 그에 따라 유권자들이 영향을 받아서 상대 후보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이어져 결국 선거 결과가 뒤바뀌게 되었다'라는 것이다.
비록 나는 '주관적 의도' 측면에서 조희연 교육감의 양심을 믿지만, 사람 내면을 내가 단정 지을 일은 아니다. 내가 단정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검찰 또한 법정에서 조 교육감이 그런 주관적 의도가 있었는지 반드시 입증 자료를 가지고 주장해야 한다. 그러나 적어도 '객관적 결과' 측면에서 볼 때, 과연 영주권 공방이 선거에 불공정한 영향을 미쳤는지, 허위 사실에 노출된 다수의 유권자가 자신의 본심과 다른 그릇된 선택을 한 것인지, 그래서 결과적으로 선거 결과가 심각하게 훼손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으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유권자들이 판단할 문제다.
지금이라도 모두가 동의하는 공적인 여론 조사로 알아보자, 정말 선거에 악영향을 미쳤는지.
만약 선거 당시 조희연 후보가 음험하게 제기한 영주권 의혹 때문에 대다수의 유권자들이 이를 사실로 믿고 상대 후보 대신 조희연 후보를 선택했다는 검찰의 주장이 사실로 판명이 났다면, 이는 유권자들이 이의 제기를 해야 할 사안이다. 유권자들이 허위와 기만에 의해 자신의 주권이 훼손되었으므로 이 선거 결과를 인정할 수 없으며 다시 선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나는 선거 이후에 언론에 게재된 교육감 선거 분석 결과를 다시 찬찬히 확인해보았다. 정말이지 한 군데도 선거에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영주권 의혹 공방을 거론한 곳이 없었다. 주로 보수 후보의 분열, 진보 후보의 단일화, 캔디고 편지, 세월호 사건과 앵그리 맘, 조희연 후보 아들 편지 등을 꼽고 있었다. 물론 언론의 보도라는 것이 100% 객관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확보할 수 있는 선에서는 가장 객관적으로 유권자의 일반적인 표심을 말해주는 자료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한번 공개적으로 묻고 싶다. 누구든 나서서 확인해보자. 아니 '공적 여론 조사'와 같은 것을 한번 해보자.
조희연 후보의 행위가 법적으로 허용될 수 없는지 여부는 법적 판단의 영역이지만, 법적 판단이 인간 보편의 상식 및 합리적 이성과 배치된다면 진지하게 재고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조희연 후보가 '악의적으로' 허위 사실임을 알고도 허위 사실을 사실처럼 말한 것일까? 여러 정황상 그럴 리 없다고 보이지만, 적어도 의혹 제기의 동기, 방법, 결과 세 측면 중, 방법과 결과의 기준에서 볼 때 '공직선거법' 250조 2항의 허위 사실 공표 죄에 해당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조희연 당시 후보는 공개적이고 정중하게 "영주권 의혹이 있으니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이것을 250조 2항의 입법 취지에 따른 문제적 표현으로 바꾼다면 "영주권이 있으니 사퇴하라"이다. 당시의 기자 회견문과 공개 답신을 보면 전체 취지와 문맥이 해명 요구라는 점 역시 다수가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유권자들에게 낱낱이 드러난 공개적인 공방…최종 판단은 유권자의 몫
유권자들은 당시 투명하고 공개적인 후보 간 공방과 최종 결론까지 다 지켜보았다. 그것은 마치, 유권자가 TV 토론회를 보고 나서 후보에 대한 평가와 판단을 하는 과정과 같다. 말도 안 되는 허위 주장을 하거나 비방, 모함을 하는 것이 드러난다면 유권자는 당연히 그 후보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릴 것이다. 조희연 후보의 경우에도, 당시에는 비록 충분히 할 만한 의혹 해명 요구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기에, 만약 유권자들이 그러한 의혹 해명 요구 행위 자체가 불필요했다고 판단한다면 조희연 후보에게 마이너스 점수를 주었을 것이다.
유권자들은 정보가 차단되었던 것도 아니고, 선거 과정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후보 적격 검증 과정을 지켜보고 자신의 신성한 주권을 행사했다. 이것을 사법적으로 되돌린다는 것은, 과감하게 말해본다면 '유권자의 동의'가 필요한 일이다. 따라서 사법적 판단은 그러한 제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유권자의 동의를 암묵적으로 내재화하여 이뤄지는 것이어야 한다.
선거법은 국민의 정치적 행위를 도와주는 장치가 되어야 하지, 오히려 제약하고 방해하는 기능을 한다면 그와 같은 모순적 일도 없을 것이다. 선거의 불공정성을 막기 위해, 즉, 악의를 갖고, 악의적인 내용을, 악의적인 방법으로 허위 사실을 공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선거법 250조가 오히려 유권자의 주권을 침해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바로 '부조리'이다. 본말이 전도된 채, 선거를 위한 선거법이 아니라 선거법을 위한 선거법, 정치적 자유와 자율성 대신 통제와 규율성만을 강조하는 선거법이 되고 만다.
출발점으로서 법 자체에 한계가 있다면 법을 다시 논할 일이다. 그러나 법의 적용이 법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그것이 검찰의 기소와 법원의 판결 과정이다. 궁극의 사법 정의란 결국 사회정의, 인간의 보편적 가치에 수렴되어야 하는 것이고, 이것은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지켜내는 것이다. 항소심은 이 점을 보다 더 현명하게 고려할 것이라 믿는다.
(송주명 교수는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상임공동의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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