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영화의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필자)
영화 <암살>을 보면 눈물 나는 장면이 몇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안옥윤(전지현 분)이 간도 참변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이다. 영화 속 허구 인물인 가와구치를 암살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바로 간도 참변의 책임자였기 때문이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크게 패한 일제가 만주에 살고 있는 조선 민간인을 잔혹하게 학살한 이 사건을 피해자인 안옥윤은 담담하게 회고한다. 그런데 여성 한국 광복군이었던 지복영의 회고록 <민들레의 비상>(민족문제연구소 펴냄)을 읽으면서 이 부분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아무 대책도 없이 그 둘레에 살고 있던 우리 동포들, 그저 농사나 짓고 살아가던 죄 없는 교포들이 무참하게 일본군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이다. 총 맞아 죽고 칼 맞아 죽고 불타서 죽고, 남자 여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수천 명이 학살을 당했다. 이러고 보니 일반 교포들은 물론이요 남북 만주에 흩어져서 제각기 활동하던 군사 단체들은 모두 속속 북쪽에 있는 밀산(密山)으로 모여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하고 노서아(러시아)로 넘어가게 되었다. (60~70쪽)
최근에 <암살>을 본 탓인지 이 부분에서 유독 눈시울이 붉어졌다. 영화로 국한하면 안옥윤이 독립군이 되고 가와구치를 암살해야할 필연적인 이유가 생긴 것이지만, 당시 조선인들의 삶으로 범위를 넓히면 그들이 만주를 떠나야 했던 사연, 신흥무관학교도 문을 닫아야 했던 사연이 이 짧은 문단에 포함되어 있다. 그토록 일제의 학살은 잔혹했다. 거의 3700여 명이 학살당하고 마을은 초토화되었으니.
나는 지금 일본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대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민간인을 보복의 수단으로 삼아 학살한 이 엄청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암살>에서 경성으로 작전을 수행하러 떠나기 전, 대원들이 약산 김원봉에게 묻는다. 혹 임무를 수행하면서 어쩔 수 없이 민간인을 죽여도 되느냐고? 약산은 단호하게 말한다. 어떤 경우라도 민간인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영화의 도덕적인 제스처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절대 어겨서는 안 되는 명제 가운데 하나가 전쟁 중 민간인 학살을 금지한 것이다. 일제는 알고도 일부러 저질렀다.
이런 사실을 접하면서 두려움이 일었다. 그렇게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곳에서 어떻게 조선인들이 살아갈 수 있었을까? 대한의 독립을 위해 떠난 수많은 이들은 그곳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라는 의문도 필연적으로 든다. 일제 헌병과 군인, 만주 마적, 중국 밀정, 조선 밀정, 만보산 사건 이후 중국 병사들…. 하루하루 생사의 경계에 서 있었을 그들을 생각하면 까마득해질 뿐이다.
<민들레의 비상>을 읽으면서 조금이나마 그들의 실상을 알 수 있었다. 책에서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단어는 생활이다. 아니 생존이다. 한국광복군총사령관인 지청천 장군의 딸, 지복영은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다섯 살에 서울을 떠나 아버지가 있는 만주로 갔다. 그러나 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느라 집을 돌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서울의 어머니가 작고했다는 잘못된 소식을 듣고 이미 만주에서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던 터라 더더욱 그러했다. 이제부터 지복영은 어머니, 오빠, 언니와 함께 온갖 궂은일을 하며 살아간다. 회고록의 많은 부분도 계속해서 터전을 옮기며 살아가야 하는 생활고이다. 먹고 살아야 하지만, 그것이 너무도 힘든 시절의 이야기. 인간이 먹어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괴롭게 절감하는 여러 에피소드들.
아버지를 믿고 왔던 타지로 왔지만 정작 그곳에서 다시 아버지 없이 생활하는 게 얼마나 힘든 삶인가? 그러나 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라 더 큰 아버지인 조국을 찾기 위해 자신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중으로 존재하지 않는 아버지를 그리며 딸(과 그 가족)이 살아가는 모습이 참으로 진솔하고 구체적이지만, 읽는 이는 가슴 아프다. 깊은 산골이라 약 한 첩 쓰지 못하고 병에 걸려 고통 받는 이야기, 그렇게 어린 자식을 보내는 이야기, 자식을 보낸 뒤 본인도 정신병에 시달리는 이야기 등등이 애잔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녹아있다.
사실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그곳은 먹고살기에 좋은 곳은 아니다. 중국인 지주들이 소작인으로 조선인을 부리지만, 가을걷이가 끝나 이것저것 떼면 내년 농사지을 종자밖에 남지 않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나마 먹고살기 위해 넘어온 가족이라면 가장이 있지만 지복영의 집은 그렇지 않았다. 밥 굶는 것을 밥먹듯하는 생활의 연속. 그런 생활 속에서 치안도 전혀 확보되지 않아 고통스러운 현실이 그들이 맞아들인 현실이었다. 마적, 토벌대, 밀정 등등 목숨을 노리는 이들이 우굴거리는 그곳에서 수시로 목숨을 건지려 몸을 숨기며 살아야 하는 생활.
지복영은 기본적인 의식주 생활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기회만 되면 학교에 다니고 책을 읽고 중국어를 배웠다. 무엇보다 뚜렷한 목적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강단이라고 해야 하나? 그녀는 누구보다 강한 집념을 지니고 있었다. 쉽게 타협하고 않는 자세. 혼자 공부해 중국 학교에 다니고 여성의 몸으로 적정 탐지 및 광복군 초모공작(招募工作)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면 그녀의 집념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알 수 있다. 그토록 강한 집념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이 현실에서는 고통스럽지만 내적으로는 대단히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목숨에 연연하지 않는 자세. 나는 지복영의 그런 의지와 자세를 보면서 경성에서 암살을 수행하는 안옥윤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무엇이 그녀를 저토록 강한 전사로 만들었을까, 라는 고민이 지복영의 회고록을 읽으면서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해서 <암살>을 재미있게 본 이들에게 <민들레의 비상>을 권한다. 영화가 영화적 재미를 살리려 독립군의 삶을 다소 추상적으로 그렸다면 책은 철저하게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생활에 토대를 두고 있다. 더구나 책은 회고록 형식으로 되어 있어 어렵지 않게 술술 읽힌다. 물론 술술 읽힌다고 해서 내용이 가볍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어느 순간은 책장을 넘기지 못한 채 가만히 지켜봐야 하는, 마음을 찌르는 대목이 있다. 그럴 때에는 조용히 책을 덮고 만주와 중국에서 고난을 겪었을 그분들의 삶에 대해 생각하며 잠시 하늘을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책 속에 있는, 독립운동을 했던 여러 인물들의 이름과 큰 사건에 대해서는 여사의 큰 아들 이준식 박사가 각주를 달아놓았기 때문에 읽기가 한결 수월하다.
(강성률 영화평론가는 광운대학교 문화산업학부 교수이기도 합니다.)
지복영1919년 4월 일제강점기 항일무장투쟁의 거목이던 지청천 장군의 막내딸로 서울에서 태어났다.1940년 9월 한국광복군이 창설될 때 여군으로 입대했다. 처음에는 광복군 총사령부 정훈처에서 기관지 <광복>을 편집하는 일을 하다가 1942년 4월부터 안휘성 부양에서 광복군을 모집하는 활동을 벌였다.광복군 총사령부 비서를 거쳐 해방 직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했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2007년 4월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었다. 2012년 5월 국가보훈처가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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