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5일 광복 70주년을 맞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라를 되찾은 지 70년이 되었는데도 나라 안팎은 여전히 화해와 평화를 찾을 수 없는 긴장과 갈등의 연속이다. 한중일 간 과거사 문제는 여전히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 내부 사정은 또 어떠한가. 목함지뢰 사건과 북한의 일방적인 표준시 변경으로 남북한 관계는 더욱 경색되어가고 있다. 전쟁을 일으킨 국가와 피해국 간의 화해를 통해 종전의 기쁨을 누리고 국가를 위해 희생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추모하는 평화의 날이 돼야하지만, 올해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항일전쟁에 대한 재조명
한국처럼 국공합작으로 일본과 싸워 국가를 지켜낸 중국도 대일 전승일을 기념한다. 다만 한국은 일본이 라디오를 통해 항복을 선언한 날, 즉 8월 15일을 국가를 되찾은 날로 기념하는 반면, 중국은 일본이 항복문서에 서명한 다음날인 9월 3일을 전승기념일로 지정하고 있다. 올해 항일전쟁 70주년을 맞이하는 중국은 조금은 특별한 기념식인 9.3 열병식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 각국 대표를 초청하여 진행되는 열병식에 항일전쟁에 참전했던 노병들과 그 자손들을 참가하도록 한 것이다. 이들의 열병식 참석은 단순히 참석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중국은 지난해 대일 전승일을 법정 국가기념일로 격상시켰다. 또한 항일전쟁에 참여하여 국가와 민족을 위해 피를 흘린 병사들의 공로를 인정하고 치하하기 위한 일련의 정책을 발표하였다. 지난 8월 11일 민정부(民政部), 재정부(财政部), 국가위생·계획생육위원회(国家卫生计划生育委员会)가 공동으로 항일전쟁 참전 노병사(老兵士) 위문 계획에 관한 통지(通知)를 각 급(级) 정부에 하달하였다.
통지의 내용은 크게 7가지 사항을 담고 있다. 본 통지는 △일회성 생활보조금 5000위안(한화 약 90만 원) 지급, △항일전쟁 참전 생존 노병에 대한 위문 방문, △생계가 어려운 노병사에 대한 구호, △편리하고 우수한 의료보건 서비스의 제공, △항일전쟁 참전 노병사의 열병식 참석, △항일전쟁 70주년 기념 훈장 수여, △항일 열사 및 영웅단체 명단 공개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사실 중국 각지에서 모여든 항일전쟁 병사들은 해방군의 그늘에 가려져 그들의 업적과 공로를 인정받지 못 했다. 특히 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간 재향(在乡) 병사의 경우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항일전쟁 70주년을 맞아 그들의 업적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는 중국정부가 과거에 비해 항일전쟁과 대일 전승일에 보다 큰 의미를 두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 및 영토분쟁 등으로 인한 갈등에서 비롯된 역사인식의 변화일 것이다.
중국, 노병에게 건네는 5000위안(元)의 의미
중국 정부가 발표한 통지에 눈여겨 볼만한 사항이 있다. 5000위안의 생계보조금이다. 중국이 항일전쟁 참전병사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2010년 항일전쟁 승리 기념 65주년에 생존해 있는 재향 항일전쟁 참전 병사에게 생계보조금 3000위안을 지급한 적이 있다. 65주년과 70주년의 차이는 보조금이 2000위안 많아진 것뿐만 아니라, 보조금 지급대상이 확대됐다는 점도 있다. 65주년 당시 보조금 지급대상은 1937년 7월 7일~1945년 9월 2일 기간에 입대한 병사 중, 생존해 있는 재향 항일참전 병사만 포함되었다. 하지만 올해 그 범위가 대폭 확대되었다.
보조금 지급대상은 총 4종류로 나뉜다. 우선 항일전쟁 시기 제대한 재향군인과 장애군인, 그리고 항일전쟁 시기 퇴역한 군인 간부 및 군적이 없는 노동자가 포함됐다. 다음으로 항일전쟁 시기 국민당(国民党)군대에 복역하다가 해방전쟁 중 무장혁명이 일어나자 해방군에 투항하고 제대한 재향군인 및 항일전쟁에 참전한 적이 있고 이후 농민으로 귀향한 국민당 항일전쟁 참전 병사도 추가로 포함됏다.
중국 정부가 군적이 없는 노동자를 포함시키면서, 꼭 군인이 아니어도 항일전쟁에 참전하여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이들의 공로를 폭넓게 인정한 것이다. 또한 국민당 항일전쟁 참전 병사가 보조금 지급대상에 포함된 것이 매우 이례적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항일전쟁에서 이들에 대한 공로를 인정하지 않던 중국 정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국공합작으로 이뤄낸 승리이니만큼 공산당 병사인지 국민당 병사인지 여하를 불문하고 그 공헌을 국가가 인정하고 기념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항일전쟁에 참전하였지만, 해방전쟁 전(全) 시기에 농민으로서 농사를 짓지 않았거나, 해방군에 투항하지 않고 계속 국민당 군대 소속을 유지한 국민당 병사는 여전히 보조금 지급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 민정부의 설명이다.
2010년 중국이 최초 보조금을 지급할 때만 해도 지급대상이 되던 노병들은 12만 3000명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은 그 지급대상을 확대하였는데도 불구하고 5만여 명 정도다. 생존해 있는 항일전쟁 참전 노병사들은 이미 아흔의 나이에 가까운 고령자들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그들의 젊음을 전쟁터에서 보내고도 국가로부터 변변한 대우도 받지 못했는데, 더 늦기 전에 국가가 이를 바로잡기 위해 나선 것이다.
한국,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
광복 70주년을 맞는 한국도 올해는 무언가 특별한 움직임이 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여성독립 운동가들에 대한 발굴이 시작된 것이다. 남성중심의 역사인식 속에 묻혀 빛을 보지 못했던 여성 순국선열들의 희생과 애민·애국정신이 후대에 알려지게 되어 다행스럽고 또 기쁘다.
하지만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속설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떠돌아다닌다. 이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이나 애국지사의 공로가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인정 못 받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을 국가가 인정해주지 않고, 후대가 그 정신을 이어받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국가가 위기에 빠졌을 때, 그 누가 독립운동가가 했던 것처럼 자신을 희생하여 나라를 구하려 하겠는가.
광복 70주년을 기념하여 사회의 혼란을 야기한 범죄자들의 죄를 사할 것인가가 아니라 고귀한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했지만, 그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많은 순국선열들을 한 명이라도 더 찾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윤성혜 교수는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법률연구소의 연구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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