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짜여진 각본이 잘 캐스팅 된 배우들에 의해 잘 연기되고 있는 듯합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두고 하는 말인데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미국 방문 중이던 지난달 31일 "좌파세력이 준동하며 미래를 책임질 어린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역사관을 심어주고 있다"며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당위성을 주장한 데 이어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지난 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교실에서부터 역사에 의해 국민이 분열되지 않도록 (역사를) 하나로 가르쳐야 한다"며 국정화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당정의 수장이 미리 짠 것처럼 합창을 한 것입니다.
당정 수뇌의 국정화 합창이 사인 교환에 따라 이뤄지는 콤비네이션 플레이임을 증명하는 직접적인 사례도 있습니다. <노컷뉴스>가 지난달 24일 보도한 내용인데요. 지난달 22일 열린 고위 당정청 회동에서 한국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의제로 다뤄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해 사전 배포한 자료집에는 포함시키지 않은 채 회동 현장에서 자료를 배포했다가 수거했다는 겁니다.
종합하면 늦어도 지난달 22일 고위 당정청 회동에서 국정화 전략을 짠 뒤 분담된 역할에 따라 조직적 치고빠지기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건데요. 당정청이 이렇게 기민하게 조직플레이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동기입니다. 김무성 대표는 아버지의 친일 행각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차기를 노리는 그로서는 두고두고 화근이 되는 것이기에 어떻게든 끊어내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아버지의 친일 전력과 독재 행각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가문과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는 힘이 센 대통령 재임기간에 어떻게든 씻어내야 합니다. 당정 수뇌의 이런 절박성이 전대미문의 당정청 의기투합을 낳은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시기입니다.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기 위해선 8월에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9월에 2015년 교육과정 개정안 고시가 이뤄지기 때문에 그 전인 8월에 정지작업을 끝내야 합니다. 마침 8월엔 광복절이 끼어있기 때문에 역사문제를 꺼내들기에 적기입니다. 이런 시기적 특수성이 당정청의 집중적인 언론플레이를 낳은 겁니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까 새롭게 다가오는 게 있습니다. 정부가 느닷없이 임시공휴일을 지정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입장을 돌변해 대대적인 광복절 특사를 준비하는 배경인데요. 이런 이벤트를 통해 한편으론 분위기를 띄우고 다른 한편으론 지지세를 강화하면 국정화 추진이 쉬워집니다. 한편으론 국민의 관심을 분산시켜 국정화 저지 여론 형성을 막을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론 지지층을 결집시켜 국정화 반대 주장에 맞대응을 할 수 있습니다.
설령, 만에 하나, 백번 양보해서 국정화를 성사시키지 못한다 해도 본전 이상은 뽑을 수 있습니다. 역사와 이념 문제로 국민을 갈라치기 하고 그 기반 위에서 지지층의 결속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느슨해진 지지기반을 다시 다질 수 있고, 김무성 대표는 헐렁해진 리더십을 다시 추스를 수 있습니다.
헌데 어쩌죠? 이런 전략, 계산, 목표는 어이없게도 한 사람에 의해 틀어질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박근혜 대통령의 친동생 근령 씨 때문에 다 된 밥에 재가 뿌려질지도 모릅니다.
당정청이 내세우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명분은 국민 단합을 위한 역사 바로세우기입니다. 좌파의 자학적 역사관을 극복하고 우리 민족의 능동성을 한껏 고취시키겠다는 겁니다. 좌파 공격을 통해 국정화 추진 동력을 극대화하려고 하는 겁니다. 하지만 박근령 씨가 당정청의 이런 전략에 분탕질을 하고 있습니다. 좌파의 자학적 역사관이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 친동생의 자기비하적 역사관이 문제라는 걸 온몸으로 시연하면서 국민을 비분강개의 한 대열로 뭉치게 하고 있습니다. 박근령 씨의 개인플레이가 당정청의 조직플레이를 허물고 있는 겁니다. ‘좌파가 문제다’라는 당정청의 구호에 ‘너나 잘하세요’라는 메아리를 보내고 있는 겁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최대 적은 당정청 뒤에서 총질하는 박근령 씨입니다.
이 기사는 8월 6일 <시사통> '이슈독털' 내용입니다. (☞바로 가기 : <시사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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