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세 모자 성폭행 사건'의 실체가 얼추 윤곽을 드러냈다. 사건의 전말은 처음 제기 된 '가족 간 성폭행' 주장 못지않게 놀라웠다. 자신과 두 아들이 성폭행 피해자임을 호소한 엄마 이모(44) 씨가 과거 무속인 김모 씨에게 세뇌당해 거짓 촌극을 하기에 이른 것.
지난 방송에서 이 사건이 거짓일 가능성을 예고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1일 방송에선 세 모자가 왜 거짓 폭로극에 나섰는지를 밝혔다. 진실이 밝혀질 경우 세 모자가 받을 타격은 엄청날 텐데도 수 개월간, 그리고 이렇게 공개적으로 폭로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관련 기사 : 재산 노린 조작극? 미궁 빠진 '세 모자 성폭행 사건')
"세 모자 세뇌한 수법? 주변을 적으로 돌리기"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이 물음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과거 무속인 김 모씨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만났다. 인터뷰에 응한 한 부부는 이 씨의 현재 상황과 자신들이 김 씨에게 세뇌당한 과정이 매우 흡사하다고 했다.
이들이 설명하는 김 씨의 수법이란, 피해자 주변을 모두 적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한 번 자신의 조언에 확신을 갖게 된 사람들에게 그들의 가족, 동료 등 주변 사람들을 험담하며 떼어놓은 뒤, 믿을 사람이 자신뿐임을 강조했던 것.
한 때 김 씨의 추종자로 수억 원에 달하는 돈을 갖다 바쳤던 부부는 그땐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후회했다. 그러면서 "이 씨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자신이 성폭행을 당했다고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 씨가 지목한 성폭행 가해자이자 그의 남편인 허 씨는 과거 자신 역시 김 씨를 따른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병원 치료로 고쳐지지 않는 병을 앓던 이 씨가 김 씨를 만난 이후 깨끗하게 낫자, 목사 신분이었던 허 씨마저도 김 씨의 영험함을 믿게 된 것. 이후 허 씨 부부는 "친정 식구가 너희 돈을 욕심 내니 상대를 끊으라", "부동산을 다 현금화하라"는 김 씨 얘기를 그대로 따랐다. 김 씨에 대한 믿음이 강고했던 이 씨는 부동산 거래 장소에 김 씨와 동행하기도 했다.
김 씨 조언대로 수십 억 원어치의 부동산을 다 팔았지만 점점 형편이 나빠졌다. 반면 김 씨의 기도원은 점차 규모가 커졌다. 허 씨는 이같은 사실을 전하며, 김 씨가 노리는 것은 자신이 준 위자료 등을 포함한 이 씨의 돈일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나중에 이혼 소송을 하면서 등본을 떼어 보니, 모르는 사이 집 두 채가 김 씨에게 넘어가 있었다"고도 했다.
"들었다", "그렇게 안다"가 전부인 진술
허 씨는 과거 착했던 이 씨가 김 씨를 만나고부터 이상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와 이혼하게 된 것 역시 김 씨가 이 씨를 부추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언젠가부터 아내가 자신에게 전화해 "다 들어서 안다고, 내가 다른 여자 만나는 걸 누가 말했다더라"고 했다. 그는 "그게 누구겠냐"라며 반문했다. 김 씨라는 얘기다.
이 씨는 항상 "들어서 안다"고 말해왔다고 했다. 실제로 세 모자는 제작진에게 "들었다", "그렇게 알고 있다"는 식의 답변을 수시로 했다. 남편이 납치를 시도하는 바람에 자주 이사를 다닌다는 얘기에 제작진이 '납치할 거란 건 어떻게 알았느냐'고 반문하자, 이 씨는 "저는 그렇게 들었다"고 했다.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자신을 상대로 찍었다는 성관계 동영상의 존재 역시 "내가 어떻게 확인하느냐"며, "내가 보지 않아 모르는 것뿐"이라고 했다. 그의 아들 역시 "아빠가 비비탄으로 (김 씨를) 쏴 죽일 거라고, 종종 들어서 알고 있다"고 했다. '남편과 시댁 식구 등이 혼음, 성매매를 강요했다'던 세 모자의 폭로가 거짓임일 공산이 크다는 걸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폭로 내용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은, 제작진이 사건 가해자로 지목된 30여 명의 신원을 파악하는 과정에서도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가족들을 제외하고, 이 씨 모자에게 고소당한 이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김 씨와 금전적인 문제로 다툼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모두 이 씨는 모르고 김 씨는 알되, 김 씨와는 과거 사이가 좋지 않았음을 밝혔다.
엄마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에… "할머니 만족시켜야"
그렇다면, 세 모자는 왜 맹목적으로 김 씨의 말을 믿는 것일까. 왜 김 씨를 위해 이같은 허무맹랑한 일에 나선 것일까.
범죄 심리 전문가인 표창원 박사는 "이 씨 본인이 겪었던 부부 간 불화, 시댁과의 갈등을 누구도 어루만져 주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끌어안아주고 답을 주었으니 그 사람의 절대성을 믿게 된다"며 "세뇌 효과 발생해 광신적 행동을 보이게 되고 믿지 못할 행동들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 씨와 함께 폭로에 열을 올리는 아들들의 행동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박지선 숙명여자대학교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아이들은 엄마가 행복하기를 정말로 바란다"며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엄마가 행복하려면 할머니가 만족을 해야 엄마가 행복해하므로 (자신들이) 만족시킬 대상이 할머니란 걸 인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두 아들은 '할머니', 즉 김 씨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여러 번 드러냈다. 둘째 아들은 노트에 '나 잘했어?', '할머니가 행복해하실까'와 같은 문구를 적었다. 그런가 하면, 첫째 아들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라며, 그 가족의 범주에 어머니, 동생과 아울러 '이모 할머니'를 포함했다. 어머니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결국 자신과 가족 모두를 파괴의 길로 향하게 하는 셈이다.
표 박사는 그러나 "엄청난 거짓말이 가져올 파급력이 얼마나 큰지 인식하지 못 하는 것 같다"며 "둘째 아들의 경우 경기 내지는 게임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 씨, 두 아들 더 위기로 내몰 수도… 아동 학대"
전문가들은 아직 10대인 두 아이들이 어머니와 함께 직접 폭로에 나서는 상황 자체가 '아동 학대'라고 지적했다.
김태경 백석대학교 보건복지대학원 특수심리치료 교수는 "사실을 인정받는 데 몰두한 이 씨가 아이들을 어떤 위기로 내몰지 예측하기 힘들다"며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더 상처받고 손상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 씨의 친정 가족은 이 점을 우려, 결국 아동 학대 혐의로 동생인 이 씨를 고소했다. 두 아이는 전문가의 감정 결과 학대가 인정됐으며, 현재 이 씨와 강제 분리된 채로 지내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도 이 씨는 끝까지 자신이 김 씨에게서 피해를 본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이 김 씨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방송 말미엔, 이 씨가 그간 연락이 안 된다고 했던 김 씨가 직접 이 씨와 함께 방송국을 찾아와 제작진에게 항의하며 "나도 피해자"라고 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경악… 혼란 드려 죄송" 세 모자 지지 카페 폐쇄
사건의 전말이 차차 모습을 드러내자, 그간 세 모자의 사연을 안타까워했던 대중들이 황당함과 허탈감을 토로했다. 지난 방송 이후, 세 모자를 옹호하는 이들이 만든 온라인 카페도 자진 폐쇄됐다. 카페 운영진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며 "지난 한 달 동안 혼란을 겪은 수많은 네티즌께 죄송하다. 경찰과 병원 관계자, 방송 제작진 등에게 본의 아니게 업무를 방해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표 박사는 자신의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카페 운영진의 결정을 지지한다"며 "거짓이 나쁘지 속은 것이 나쁜 건 아닙니다.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는 더 더욱 존중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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