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뜻대로 하소서
국가정보원이 지난 24일, 임모 과장이 삭제한 파일을 100% 복구했다고 하죠? 관련 내용을 오늘 열리는 국회 정보위에 보고한다고 하고요.
하지만 보고 범위가 벌써부터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삭제 파일의 원본과 복구본 모두 제출할 것과 RCS 로그 파일 전체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는 반면 국정원의 입이 되고 있는 새누리당 의원들은 국정원이 파일 복구 결과를 국회 정보위에 보고할 것이지만 원본 파일을 통째로 국회로 가져올 가능성은 없다고 선을 긋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파일 복구 결과 내국인 사찰을 의심할 내용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논란의 가지가 여려 갈래로 뻗쳐있는데다가 그 내용이 워낙 전문적이어서 헷갈리기 십상이지만 사실 해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르면 됩니다. 국정원 스스로 표명했던 약속을 그대로 따르면 논란을 쉽게 해소할 수 있습니다.
임 과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하루 전, 임 과장이 유서를 통해 파일 삭제 사실을 밝히기 하루 전, 국정원은 '입장문'을 통해 국회 정보위원들에게 '사용 기록'을 보여줄 예정이며, 이 기록을 보면 국정원이 민간인 사찰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명백해진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 '입장문'을 기준 삼으면 됩니다. 이 '입장문'에서 표명했던 약속을 그대로 실천하면 됩니다.
국정원의 '입장문'은 파일 삭제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발표된 것이므로 파일 삭제 이전 상태, 즉 원본 상태 그대로의 '사용 기록'을 국회 정보위원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임 과장의 삭제로 원본에 손상이 갔던 점을 감안하면 당연히 삭제 이전과 이후를 비교 분석할 수 있도록 모든 자료를 내놔야 합니다.
국정원이 '사용 기록'을 공개하기로 했던 이유가 국회 정보위원들로 하여금 민간인 사찰 여부를 판단케 하는 데 있었으므로 판단을 도울 수 있는 근거 자료는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충분히 내놓아야 합니다.
이게 '입장문'에 담겼던 국정원의 약속을 실천하는 방법입니다. 이게 신의성실의 원칙에 부합하는 행동입니다.
국정원이나 새누리당 의원들은 국가 안보를 위한 기밀 유지 운운하며 제한적 공개를 주장하던데 이건 어불성설입니다. 국회 정보위원들이 보안 의식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이 국정원이 제출한 '사용 기록'을 미주알고주알 공개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일방적 주장일 뿐입니다. 하지만 현행 법률에 따르면 국회 정보위원들의 국정원 보고 내용 공개는 엄격히 제한돼 있습니다. 공개는 여야 간사의 합의가 있는 경우로 제한되고, 이 틀을 벗어난 공개는 처벌받도록 돼 있습니다.
국정원이 법이 정한 이 틀에 따라 국회 정보위에 보고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국회 정보위원들의 몫으로 넘기고 자신들은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그리고 '입장문'에서 밝힌 취지에 맞게 신의성실의 원칙을 다 하면 됩니다. 일어나지도 않은 가정 상황을 들어 법률이 정한 권한과 책임을 무시하는 건 국가 기관이 보일 태도가 아닙니다.
이렇게 보면 '사용 기록' 공개 범위의 초점을 삭제 파일에 맞춰 논란과 공방을 유발하는 것은 음험한 기도입니다. 진실 규명의 대도에 자갈을 깔아 샛길로 이끌려는 교란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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