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재벌가 2~3세, 총수, 대표 등을 불러서 오찬을 하기로 했다. 전국 '17개 시도 플러스(+) 2개소'의 창조경제혁신센터 발족식을 마친 데 대한 축하연 성격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박근혜 대통령이 공을 들여 추진한 것으로, 각 센터마다 하나의 대기업이 후원을 하는 형식이다.(☞관련기사 : 朴 대통령, 이재용 등 재벌 총수와 24일 오찬)
그런데 공교롭다. 박 대통령은 오는 '8.15'에 특별사면권 행사를 공언한 상태다. 새누리당은 경제인 사면을 박 대통령 면전에서 건의했다. 그런 가운데 모처럼만에 마련된 박 대통령과 재벌 대표단의 자리다. 자연스럽게 관심은 '사면 교감'이 있을지 여부에 쏠린다. 연일 경제를 강조하고는 있으나, 뚜렷한 업적이 없는 박 대통령에게, 대기업의 투자 확대는 절실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나 새누리당이 한사코 부인하고 있는 재벌과의 암묵적 '바터' 가능성에 언론이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경제인 사면 '청신호' 전망, 과연 이게 올바른 현상일까? 박 대통령은, '경제인 사면' 군불을 떼고 있는 정치권과 재계보다, 진짜 '민심'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
염치 없는 재계, 최태원 사면 요구…朴 대통령은 자신의 말을 뒤집을 것인가?
사면 대상은 언론에서 공공연하게 거론된다. SK 최태원 회장, 최재원 수석부회장, 한화 김승연 회장과 LIG 구본상 전 수석부회장이다. 이들이 사면 심사 대상에 오른 것은 기정사실처럼 언급된다. 아무도 사면 심사 대상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데도 말이다. 재계는 '언론플레이'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급기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회장은 22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40회 대한상의 제주포럼' 관련 기자 간담회에서 "최태원, 김승연 회장에게 기회를 주시길 간곡하게 소청드린다"고 했다.
'염치 실종'이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특별사면권을 행사하는데, 일개 경제단체 수장이 최태원과 김승연 두 명을 콕 찍어 대통령에게 사면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박용만 회장. 그는 두산 회장이다. 사면이 인간을 '착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은 그도 알 만한 위치에 있다. 두산의 전 회장이자 그의 형인 박용성 씨는 뇌물공여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현재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그런데 과거 박용성 씨는 노무현 정부에서 한 차례 사면을 받았던 이력이 있다. 회삿돈을 빼돌렸다가 실형을 선고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면됐던 그가, 또 다시 불법 행위로 재판대에 선 것이다.
박용만 회장이 사면을 '소청'한 인물 중 하나는 최근 언론에서도 '사면 1순위'로 꼽고 있는 최태원 회장인데, 최 회장이야말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인물이다. 그는 죄를 짓고 사면을 받은 후에 다시 죄를 지어 감옥에 들어간 경우다.
최 회장은 지난 2003년 1조5000억 원대의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됐다. 2008년 대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판결을 받았는데, 형 확정 몇 달 뒤에 이명박 정부는 8.15특사로 그에게 '특별히' 자유를 부여해줬다. 그리고 나서 최 회장이 저지른 것이 회사돈 수백억 원을 빼돌려 선물·옵션에 투자한 일이다. 그는 2013년 또 다시 실형을 받고 법정구속돼, 현재까지 2년 반을 복역중이다. 이런 사람이 또 사면을 받아야 한다는 게 박용만 회장의 주장인가? 보통 사람은 두 번의 죄를 지으면 사면은 커녕 가중처벌을 받는다.
재계가 '최태원 구하기'에 나서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특히 박 대통령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전 새누리당 의원)이 노무현 정권에서 두 번 사면을 받은 것을 두고 "성완종 씨에 대한 연이은 사면은 국민도 납득하기 어렵고 법치의 훼손과(법치의 훼손을 불러 일으키고) 궁극적으로 나라 경제도 어지럽히면서 결국 오늘날 같이 있어서는 안 될 일(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일어나는 계기를 만들어주게 되었다"고 직접 말하지 않았던가.
박 대통령의 논리로 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면이 최 회장이 저지른 '불법 행위'의 원인이다. 물론 사면이 범죄의 원인이 됐다는 인과관계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노무현 정권의 사면을 정치 공세로 이용하기 위한 '수사'에 불과했다고밖에 해석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연이은 사면은 국민도 납득하기 어렵고 법치의 훼손"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한 자신의 발언에 책임을 져야 할 의무가 있다. 따지고 보면 최태원 회장은 '새누리당 정권'에서 한차례 사면을 받은 적이 있다. 같은 새누리당 정권에서 한 기업인이 두 차례 사면되는 것도 상당히 이례적인 일 아닌가?
최 회장이 사면될지, 아니면 다른 경제인이 사면될지, 경제인 사면이 아예 없을지 여부는 현재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만약 박 대통령이 최 회장을 사면할 경우, 이것이 박 대통령 스스로 자신의 말을 뒤집은 행위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의 평소 강조하는 '원칙'과 '소신'을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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