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이 13일 당무위원회를 열어 '김상곤 혁신위'가 내놓은 혁신안 일부를 가결시켰다. 이날 가결된 것은 사무총장제 폐지 등 혁신안 가운데 일부이고, 최고위원제 폐지나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 구성안 등은 9월께 처리될 예정이다. 공교롭게도 이 2가지 혁신안은 현 비당권파·비주류 측에서 반대하고 있는 것들이어서 연기 사유에 관심이 집중됐으나, 혁신위 측은 "원래 계획대로"라고 해명했다.
김영록 새정치연합 수석대변인은 이날 당무위 결과 브리핑에서 "4건의 당헌 개정안 발의가 의결되었고, 6건의 당규 개정안이 의결돼 확정됐다"고 밝혔다. 당헌 개정 발의안은 전체 66명의 당무위원 중 35명이 참석한 가운데 찬성 29, 반대 2, 기권 4의 결과로 통과됐다. 당헌 개정안이 이날 당무위에서 발의됨에 따라, 오는 20일 개최 예정인 당 중앙위원회가 이를 의결하면 당헌으로 확정되게 된다.
이날 발의된 당헌 개정안은 △사무총장제 폐지, △당무감사원 설립과 당원소환제 도입 등으로, 지난 8일 '김상곤 혁신위'의 2차 혁신안 발표에 포함됐던 내용들이다. 또 6건의 당규 개정안은 △당비 대납에 대한 일상적 감시체계 확립과 엄벌, △당비 대납 원천 방지, △권리당원 기준 강화, △지역대의원 상향식 선출제 도입, △선출직 전국대의원 규모 확대 등이다. 이는 지난 10일 발표된 3차 혁신안의 내용이다.
그러나 혁신안 의결이 주된 안건이 될 것으로 예상했던 이날 당무위에 예상 외의 '복병'이 등장, 혁신안 관련 논의 자체가 지연되는 일이 벌어졌다. 당연직 당무위원인 이용득 최고위원이 정청래 전 최고위원의 '공갈 막말'에 대한 당 윤리심판원 징계가 과하다며 재심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긴급 동의(動議)안을 제출했고, 이 안건이 재석 37에 찬성 19표로 가결된 것.
그러자 판사 출신인 박범계 의원과 당 윤리심판원 간사인 민홍철 의원 등이 강력히 항의한 끝에 퇴장했다. 항의 요지는, 공고된 안건인 혁신안을 놔두고 긴급동의안을 먼저 처리하는 것이 정당한 의사진행이냐는 문제 제기와, 윤리심판원 결정 사항을 당무위에서 뒤집는 것이 온당하냐는 지적 등이었다. 추미애 최고위원과, 민병두 민주정책연구원장도 이 안건 처리 직후 퇴장했다. 이에 따라 한때 의사정족수가 아슬아슬한 사태를 맞기도 했다. 재석 37명에서 최소 4명이 퇴장하면서 과반(66명 중 34명 이상)이 안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던 것. 이날 당무위를 연 이유였던 혁신안은 정작 처리되지 못할 뻔한 셈이다. 혁신안 가결시 재석 인원은 35명이었다.
설사 의사진행 규칙상 문제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새정치연합 스스로 '당의 미래가 걸렸다'고 강조해온 혁신안 논의보다 다분히 논란적인 정 전 최고위원 징계 재심안을 더 먼저 처리하는 모습은 다분히 상징적이기까지 하다는 평도 나온다.
최고위 폐지, 공직자평가위 구성 왜 연기?
한편 사무총장제 폐지와 함께 논란의 중심이었던 △최고위원제 폐지안이나, 내년 총선 공천을 앞두고 초미의 관심사였던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 구성안 등은 이날 처리 대상 안건에서 빠졌다.
이 2가지는 모두 2차 혁신안에 포함됐던 것들로, 비주류 측에서 불만을 제기해온 것들이다. 반면 이날 통과된 사무총장제 폐지는 최재성 사무총장이 임명된 지 한 달만에 물러나야 한다는 점에서 범주류 측에서 내심 불편해 하던 것이다.
이에 최근의 당내 상황과 맞물려 '비주류 측의 반발 때문에 일부 혁신안 의결이 늦어진 게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됐다. 실제로 전날 밤늦게까지 열린 최고위-혁신위 간의 비공개 간담회에서도 비주류에 속한 이종걸 원내대표가 '혁신위의 우선 과제는 '친노 패권' 청산이어야 하는데 여기에 손을 대지 않고 있다'는 취지로 목소리를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정치연합은 이날 아침 최고위원회의에서도 또 한 차례 파열음을 내며 진통을 겪었다. (☞관련 기사 : 새정치 최고위 또 난리)
소위 '비노' 그룹에서는 실제로 최고위 폐지와 공직자평가위 구성을 모두 '문재인 대표의 권한 강화'로 받아들이고 반발하고 있다. 한 비노계 중진 의원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공천인데, 이번 혁신안에 따르면 공천을 (사실상) 대표가 임명한 공직자평가위원장이 하게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임미애 혁신위 대변인은 이에 대해 "압력 때문이 아니다. 원래 계획이 이랬다"며 "최고위 폐지를 오늘 의결하면 '대안이 뭐냐'는 문제가 나오기 때문에 오늘 의결 안건으로 올리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 대변인은 "그래서 오늘은 '최고위원제를 폐지하고 새로운 민주적 대의체제로 전환한다는 당헌 전면개정안을 9월 중앙위에 올릴 수 있도록 준비한다'고 보고만 했다"면서, 공직자평가위 구성 역시 기존에 없던 새 조직을 신설하는 것인 만큼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준비할 필요성 때문에 이날 의결 안건으로 하지 않은 것이라고 부연했다.
혁신안 반발, 탈당·분당 거론 이어 "文 대표 물러나야" 주장까지…
그러나 이같은 혁신위의 공식 해명에도 불구하고, 공교롭게도 비노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2가지 혁신안에 대한 의결이 연기된 상황이어서 당분간 뒷말이 무성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문재인 대표는 전날 '중앙위원들께 드리는 글'을 발표해 "우리가 가보지 않았던 길에 대한 두려움도 크지만 그 혁신안들을 받아들여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다른 대안이 없다"고까지 강조한 반면, '비노' 측은 혁신안에 대한 거부감을 거두지 않고 있기 때문.
주승용 전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집단지도체제인 최고위 권한은 분산되고 사무총장직은 폐지하면서 당 대표의 권한만 그대로 유지되는 방안"이라고 혁신안을 비판하며 "당내의 충분한 의견 수렴과 토론 절차가 배제된 채 회의가 열리기 때문에 논란이 불가피할 것이다. 민주적 절차를 거쳐 전당대회에서 의결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도 이날 오전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주 최고위원의 제안에 동조한다고 밝히며 "(사무총장을 폐지하고) 5대 본부로 하더라도 결국 최종 결정자가 문 대표가 되고, 신설하려고 하는 공직자평가위 구성도 문 대표에게 선정권을 준다고 하면 대표에게 제왕적 권한을 줘서 마치 과거의 총재 체제로 회귀하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박 전 원내대표는 그러면서 "혁신위가 성공하면 (야권에) 작은 신당이 창당될 것이고, 만약 혁신위가 실패하면 상당히 큰 분당 사태가 오지 않을까 염려된다"며 자신의 신당 합류 가능성에 대해 "저는 어떤 경우에도 분열론자는 아니지만, 정치는 생물이기 때문에 저 자신을 포함해 모든 사람이 미래에 어디 가 있을까는 예측 불가능하다"고 하기도 했다.
박주선 의원도 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4.29 재보선 참패 원인인 '친노 계파' 청산 등 본질적 문제는 하나도 혁신의 대상으로 포함돼 있지 않고, 지엽·말단적인 것만 혁신이라고 하고 있으니 국민이 동의를 못 하고 있다"며 "사무총장 기능을 전부 분할해도 핵심 기능을 친노가 담당한다면 그게 무슨 혁신이냐"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그러면서 "친노 계파 청산에 대해서 전면적이고 획기적 조치를 단행해야 한다"며 "우선 문 대표가 사퇴해야 한다는 (것이) 혁신안으로 채택이 돼야 한다"고까지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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