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수 교수의 북한 방문기를 연재합니다. 김 교수는 평안남도 덕천 출신으로 미국 버지니아주 노폭주립대학교에서 27년 간 교수로 재직하며 평화와 통일 운동에 몸담았던 국제평화운동가입니다.
남북 간 교류가 사실상 막혀있는 가운데 김 교수는 지난 4월 21일부터 28일까지 북한 어린이들을 지원하는 '코인 선교재단'(COIN Mission Foundation)의 폴 유 목사 부부와 함께 북한의 곳곳을 방문했습니다.
재미교포로 북한을 여러 번 드나들었던 김 교수는 북한은 스스로가 말하는 것처럼 "인민의 낙원"은 아니지만, 남쪽의 일부 사람들이 믿는 것과 같은 "생지옥"도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2015년 현재 북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본 총 7편의 김 교수 방북기를 통해 북한의 실제 모습을 이해하고, 나아가 남북이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김동수의 북한 방문기>
오늘은 '건군절'이라 한다. 건군절은 남에서 '국군의 날'과 같이 군대가 창설된 날이다. 원래 '조선인민군'은 1948년 2월 8일에 창건되었으나, 1978년부터는 "항일 빨치산 투쟁전통과 연결"한다는 명분하에 오래전 젊은 김일성 장군이 중국에서 항일 유격대를 창설했다는 1932년 4월 25일로 변경했다. 올해는83주년 건군절이다. 필자는 그 유명한 군 열병식을 직접 볼 수 있다고 기대했지만, 실망스럽게도 짝수 해에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전에 남쪽의 전쟁기념관과 비슷한 '조국해방전승기념관'을 관람했다. 북에서는 6.25사변 또는 한국전쟁을 '조국해방전쟁'이라 부른다. 그들은 전쟁은 미군과 남쪽 국방군의 북침으로 시작됐고 16개 외국군이 참전하였으나 중국의 도움을 받으며 끝까지 조국을 사수하여 미제의 지배에서 해방됐다며, 인민군의 승리로 선전한다.
한국전쟁의 기원이나 배후 그리고 종국적 책임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여러 이론이 있다. 그러나 전쟁의 첫 피해를 경험한 남쪽의 국민들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이 무력남침한 명확한 사실에 대해서 의심할 수 없다. 다만 "북진통일"을 항상 외치며 "아침은 개성에서,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는 등 허세를 부리던 당시의 무능하고 부패한 군 장성들, 그리고 한강교를 끊고 몰래 도주하면서 "서울 사수"를 방송하던 이승만 정권의 기막힌 사기극, 그러고도 환도 후 점령 괴뢰군에 부역했다는 죄명으로 많은 국민을 처형한 오만과 배신을 불신하고 증오하는 것이다.
엄청난 위용의 기념관 정문을 들어서면서 군복차림의 여성안내원 설명을 들었다. 좌우에 전투장면을 실감 나게 묘사한 열 개의 조각 군상이 늘어서 있고 그 뒤에 여러 전시관이 설치되어 있다. 우리는 오른쪽 반지하에 진열된 노획한 각종 미군 무기를 돌아봤다. 탱크, 헬리콥터, 포탄, 비행기, 그리고 그것을 노획하는 전투과정.
가장 큰 관심이 갔던 노획물은 1968년 나포된 미국 간첩선 '푸에블로'(Pueblo)호다. 이 비밀 '민간인 선박'이 원산 근해에서 첩보행위를 계속하다 북 해군의 치밀한 작전으로 나포된 것이다. 우리는 그 배에 승선해 여러 첩보 장비와 선원 유품들을 둘러봤다. 그리고 후일 원산에서 대한해협을 통과해 서해 대동강으로 유입된 이 배의 이동 경로 자체가 또 하나의 신기한 작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전쟁의 영광과 비극
새로 개조된 전시관은 80여 개의 전시실과 자료실이 구비돼 있었는데, 우리의 제한된 시간과 상반된 관심 때문에 대략 스쳐 지나고 마지막으로 별도로 설치된 전경화관을 봤다. 이 전시장은 15m 길이의 전지모형과 그 뒤 9m 높이의 화면에 360도 회전하는 입체 동영상을 통해 '대전해방작전'을 연출했다. 마치 대전 전투와 승리를 바로 산언덕에서 경험하듯 장렬한 전투를 보는 것이다. 실감나는 만큼 한편 우리 마음도 착잡하고 비통하다. 아마도 이 전투에서 딘 (William F. Dean) 미군소장(24사단장, 전 주한미군정청 장관)이 실종되고 후에 포로로 잡혔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전쟁은 아무리 미화하고 정당화해도 인류의 비극이다. 한국전쟁은 남북에 엄청난 인명피해와 시설파괴를 가져왔다. 북의 전쟁피해는 훨씬 더 가혹한 것이었다. 특히 전쟁 말기 평양은 매일 융단폭격으로 더 이상 공격목표가 없을 정도로 완전 파괴를 당했다. 기록에 의하면 미군은 당시 평양 시민 전체보다 더 많은 42만 8000개의 폭탄을 투하했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8700여 개의 공장과 기업소, 1600개의 병원과 정휴양소, 60만 호의 가옥, 5000개의 학교 등 대부분의 시설이 파괴되고 불태워졌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 언론은 북이 100년 이내에 다시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다. 누구의 승리이든 이 전쟁은 남에서 190만, 북에서 332만, 미군 13만 7000, 중국 '자원군' 37만 명의 사상자를 낸,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최대의 비극이다.
낙랑농장으로 가는 길
오후에는 기다리던 낙랑농장을 방문했다. 평양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 도중에 도로가 돌로 깔려서 우리 일행이 탄 밴 차가 쉬이 가지 못했다. 이 농장은 유 목사 기관이 지원해 온 돼지 축산농장인데 관리책임자 리광호 동지와 다른 일꾼들이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 줬다.
우리는 정자에서 돼지순대와 들쭉 주스를 즐기며 사회주의 경제의 실물을 바라봤다. 어디에도 가격경쟁, 이윤확대, 도산위기, 독점지배, 노사갈등 등의 그림자가 없다. 축사마다 재미있는 이름이 붙어 있다 - '신념화, 량심화, 도덕화, 생활화'. 큰 규모는 아니지만 이 농장의 앞길이 서서히 발전하리라 믿으며 돼지, 닭, 개, 그리고 사람들의 작별 인사를 받고 다시 돌길을 따라 돌아왔다.
집단 춤과 집단주의
시내에 들어와서 우리는 경쾌한 음악이 울려 나오는 곳으로 향했다. 평양대극장 앞 광장에 400~500명 정도의 젊은이들이 스무 쌍씩 각기 큰 원을 그리며 음악에 맞추어 흥겹게 집단 춤 (포크 댄스)을 추고 있지 않은가! 알고 봤더니 구역에 따라 건군절을 축하하는 행사라고 한다.
남자들은 흰 셔츠에 넥타이 차림이지만 여자들의 전통 옷은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북의 젊은이들은 모두 악기, 춤, 합창, 토론 등에 뛰어나다고 하지만 이들의 집단 춤 솜씨가 모두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이들이 누구일까? 강제 동원된 사람들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즐겁고 신명 나는 춤판이다. 생각해 보면 이 젊은이들은 등록금, 취업, 경쟁, 육아 등의 염려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아닌가?
어떤 북한학자들은 북의 인민들은 대개 보기보다는 자유롭고 생각보다는 행복하다고 진단한다. 북은 밖에서 전체주의 체제로 알려져 있다. 개인의 자유가 상당히 제약되고 모든 생활과 활동이 통제받는 사회이다.
북에서는 이를 집단주의라 한다. 인류역사를 통틀어 보면 대부분의 시대와 지역에서 인간사회는 대가족, 부족, 산업협동체, 신앙공동체, 소왕국 등 집단주의 형식으로 생존해 왔다. 기독교 초대교회도 유물상통의 신앙공동체였다.
따라서 집단주의는 그 자체 새로운 것도 아니고 사악한 것도 아니다. 더욱이나 공동의 생존위협이 항상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집단주의가 불가피한,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공동생존권이다. 물론 집단체제에서 항상 제기되는 윤리문제는 고귀한 존재인 인간 개체의 존엄과 자유가 어느 수준에서 보호·보장받는가 하는 현실적 갈등문제이다. 만일 그 존엄성과 자유의지가 강압적 방법으로 전반적으로 말살된다면 북한의 사회주의 이상도 비인간적 허구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개인의 자유나 가치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자유는 전체사회에 피해를 주고 자신에게 방종과 타락을 가져온다. 진정한 자유는 보편적이면서도 고차원의 가치와 신념, 이를테면 민족 전체의 자주성, 긍지, 복리 등에 승복하는 일종의 자기극복이 아닐까?
공동으로 진리를 추구하여 구도생활을 하는 승려나 다른 공동체 성직자들을 보라! 그들은 육체적으로 혹심한 제약과 집단규율에 얽매이지만 그들의 영혼은 늘 자유롭고 그들의 심령은 평화롭다고 한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사회주의 윤리가 어느 수준 실현된다면 집단주의에 사는 북의 인민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한 공동의 목표와 높은 가치를 위해서 스스로 희생하면서도 행복하다고 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밖에서는 이해하지 못할 수준의 일심단결과 집단적 자발성이 지속되는 것이 아닐까?
북에서는 거의 모든 인민이 반대하지만 강압적으로만 통치된다는 확신, 그리고 그 강제성이 균열되면 전 체제가 즉시 붕괴될 것이라는 기대는 북한 내부 현실을 무시하는 낙관론일 것이다. 자본주의, 개인주의, 물질주의 사회에서는 북의 인민들이 누리는 사회주의의 보편적 생존권, 비물질적 보상, 평등, 신념과 낙관주의, 협동적 인간관계 등의 가치와 매력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개인의 자유와 관련하여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인권유린과 탄압이 가장 심한 국가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모든 형태의 반대와 항거가 탄압을 받게 되어 있는 체제라 하겠다. 그 극단적인 예로 소위 정치범 수용소의 잔인한 인권유린의 사례는 탈북자의 증언으로 자주 보도 내지 과장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일심단결'의 대열에서 이탈하는 소수자의 권리는 무자비하게 유린해도 되는 것일까? 다양성과 소수자에 대한 관용을 중요시하는 민주사회에서는 이런 탄압이 용납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인권개념과 인권실태의 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자본주의 서방세계의 편견과 위선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유엔의 '세계인권선언문'이나 인권에 관한 국제조약에 따르면 인권이란 시민적 권리와 정치적 표현·행동의 자유뿐 아니라 사람이 모두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조건의 보장 등 적극적이고 집단적인 권리를 포함하고 있다. 즉 자기 결정권리, 평등 원리, 생존을 위한 모든 조건의 불가분성을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인권문제도 이러한 공정하고 폭넓은 맥락에서 이해되고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민족 자존심
저녁에는 해외동포원호회 김경식 부국장과 리기남 참사의 방문을 받았다. 이 부서는 해외에 있는 동포들과 연락, 협력, 영접하는 기관으로서 과거 미국 동포들의 정치성 교류와 가족 방문으로 많은 접촉이 있었다. 필자는 비록 초면이지만 과거 연관 때문에 이들과 비교적 친밀하고 우호적인 대화를 나눴다.
저녁을 같이 하며 부국장은 조국과 해외동포들의 역할에 대해 그의 생각을 말했다.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자존심입니다. 우리는 어느 나라와도 친선을 원합니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도 우리 자존심을 잃는 일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 말은 북의 간부들이면 다 하는 말이고 남쪽 사람들, 특히 정치인들은 절대 하지 않는 또는 하지 못하는 말일 것이다.
보호해 준다는 명목으로 외국 군대가 70여 년 주둔하고, 전쟁 시 군의 작전권마저 행사하지 못하는 나라, 대부분의 한미관계에서 비굴하고 창피할 정도로 굴종적인 나라, 외국 기업과 금융과 문화가 온 나라에서 판을 치고 대부분 국민들 위에 군림하는 나라, 그러면서 어떻게 민족 긍지와 자존심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북은 위태롭다고 느낄 정도로 남과 대조적이다. 그들에 의하면 수령과 당(조선로동당)과 군이 함께 뭉친, 전체 인민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는 주체사상은 북의 민족제일주의 정책이라고 한다. 세계 최대강국인 미국에 대항하는 위태로운 용단에서, 그리고 과거 자신들을 지원해 준 동맹국인 중국과 소련(지금의 러시아)에 대한 도도한 주체적 대응에서 이런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오래전 한 미 국무성 관리의 발언이 떠오른다. "북조선은 밉지만 '우리의 존경할만한 적' (our respectful foe)이고 남한은 곱지만 '우리가 무시하는 동맹' (our despising ally)이다" 이제는 별로 이상히 느끼지 못할 정도로 우리의 민족 자존심이 마비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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