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왜 자신들의 과거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그 배경에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 있다. 이른바 '샌프란시스코' 체제로 불리는 전후 질서에서 일본은 자신들의 전쟁 범죄에 대한 일종의 '면죄부'를 받았다.
일본에게 이같은 면죄부를 준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자국과 함께 중국과 소련에 대응할 수 있는 하위 협력자가 필요했고, 그 파트너로 일본을 선택했다. 결국 일본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을 통해 전쟁 범죄에 대한 아무런 책임 추궁을 받지 않은 채 주권을 회복했다. 또 미국과 양자 안보조약을 맺으면서 무장도 시작했다.
따라서 현재의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유지된다면 일본이 과거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에 동아시아역사시민네트워크와 독립유공자유족회, 평화통일시민연대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체제의 극복과 동아시아 평화'를 주제로 한 워크숍을 열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재인식'을 주제로 발표에 나선 서울대학교 박태균 국제대학원 교수는 "중국이 부상하고 있고 이에 대응해 미·일 동맹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동아시아 지역에 강대국의 논리와 질서가 더 오랫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박 교수는 이러한 동북아 정세 속에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이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사이에서 중재자 또는 균형자로서 동북아 내의 "독자적 세력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는 집단적자위권 행사와 평화헌법 해석 변경을 골자로 한 이른바 '정상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미국과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중국과는 과거사 문제로 갈등을 보이고 있다. 일본이 동북아에서 균형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박 교수는 그래서 시민사회의 힘이 중요하다고 내다봤다. 그는 "시민사회가 사회적 공감대를 바꾸어 가야 한다"면서 "주도권과 대결, 갈등을 앞세운 강대국의 논리에 맞서 홀로서기에 기초한 협조와 공생의 방안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현재 일본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고 진단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한동안 중단됐던 원전이 올해 다시 가동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성찰하는 힘이 떨어진 일본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이다. 그는 "일본이 전후에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이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이후 그 길이 차단된 부분이 있다"면서 일본이 한국과 함께 역내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 차원에서 일본 시민사회와 공감대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70년 전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출범했을 당시와 마찬가지로 현재에도 사실상 미국·일본과 중국·북한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이 손을 잡는 것이 이 체제를 극복하는 길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한동대학교 김준형 교수는 "남북관계 개선, 그리고 이를 통해 남한이 진영을 뛰어넘는 중국,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추진함으로써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극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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