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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일도 없는데 가슴이 답답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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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일도 없는데 가슴이 답답하다고요?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나만의 소소한 즐거움이 필요하다

"요즘 뭐 스트레스받는 일이 많으세요? 몸에 불필요한 긴장 반응이 많으세요~"
"신경 쓸 일 아무것도 없어. 이제 내 한 몸 건사만 하면 되는데 뭘, 아무 문제도 없어."

진료를 하다 보면 환자께서 호소하는 증상의 패턴들이나 몸에 나타난 사인들은 모두 '나 지금 만사가 불편하니 건드리지 마'라고 말하고 있는데, 입으로는 '노 프로블럼'이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질문을 좀 달리해야 합니다.

"그럼, 요즘 즐겁고 재미난 일은 있으세요?"
"없어, 눈 떠서 할 일 하다 보면 하루가 가는 거지. 다들 그러고 살지 뭐 특별한 게 있나."

이런 분들에게 겉으로 드러난 증상은 저마다 다르지만, 공통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찡그리지는 않았지만 뭔가 불만이 풍기는 무표정한 얼굴, 약속한 날에 치료를 받으러 오지만 변함없는 생활습관, 기혈의 흐름이 정체되고 막혀 있는 맥과 혀의 모양 그리고 탄력을 잃고 뻣뻣해진 근육의 상태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뭔가 외부와 담을 쌓고 답답한 공간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이지요.

한의학에서 울증(鬱症)이라고 표현하는 병증이 있습니다. '鬱'자는 머리를 풀어헤친 사람이 술이 들어있는 술독을 안고 숲 속에 고꾸라져 모습이라고 풀이하는데, 가슴의 답답함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글자이지요. 울증은 이처럼 속에서 뭔가 꽉 막혀서 소통이 잘 안 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기의 흐름이 막히면 체액이 정체되어 습기가 생기고, 이것을 소통시키기 위해 우리 몸이 애를 쓰는 과정에서 열이 발생합니다.

이 단계에서 해결이 되지 않으면 열이 체액을 졸여서(잼을 만들듯이) 담(痰)이 생기고, 이 담이 혈액의 흐름을 막는 상태가 오래되면 적취라고 불리는 유형의 덩어리가 몸속에 생긴다고 봅니다. 그래서 증상의 시발점이 되는 기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것을 울증을 치료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기의 흐름을 막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감정(七情, 칠정)의 부조화입니다. 따라서 치료를 통해 기를 소통시키고 화를 내리고 담을 삭이면서 환자가 가지고 있는 감정의 불균형을 함께 해결해야 울증의 치료가 잘 됩니다.

앞서 말한 환자들의 경우 대부분 분노와 우울 그리고 지나치게 많은 생각과 걱정이 마음에 습관처럼 자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때론 본인 스스로 인식을 못 하는 경우도 있지요. 이러한 감정이 화라는 형태로 외부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때론 숯불처럼 속은 계속 타들어 가면서 점차로 몸과 마음의 활력을 좀 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분께는 기본적인 치료를 하는 한편, 본인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찾아보시라고 말합니다. 남들이 알아주고 멋있다고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아주 개인적인,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찾아보라고 합니다.

▲즐거움을 얻는 일을 찾는다면 작은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연합뉴스

예를 들어 저에게는 손을 꼼지락 꼼지락 움직여서 별 쓸모없는 것들을 만들거나 텃밭에 쪼그리고 앉아 일하는 것이 개인적 즐거움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은 날 모아둔 동전들을 깨끗이 씻어서 햇볕에 말리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다고 하지요. 이처럼 뭔가 생산적일 필요도 없고 그냥 내가 해서 즐거운(물론 남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되겠지요), 남모르는 소소한 일을 해보라고 권합니다.

물론 이렇게 한다고 그 순간부터 막혀 있던 경락이 뚫리고 가슴에 쌓여 있던 답답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주 작은 숨통을 트이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작은 변화들이 지속하고 쌓이다 보면 내가 느끼고 남들이 알아볼 정도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나를 가두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답답한 숲에도 작은 오솔길이 나 있고 맑은 샘물도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겠지요.

헤럴드 도즈는 '사람을 죽이는 건 인생의 빠른 속도가 아니라 권태다. 보람이 없다는 생각이 사람을 병들게 한다'고 했습니다. 매일이 그날 같다는 느낌은 마음을 식게 하고 기의 흐름을 떨어뜨려 몸을 더 빨리 늙게 하고 병들게 합니다. 소소한 내면의 즐거움이 이러한 권태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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