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박근혜, 밥만 먹고 똥은 싸지 말라 한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박근혜, 밥만 먹고 똥은 싸지 말라 한다"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단체 교섭 본질은 인사 경영권 '침해'

단체 교섭에서 단체는 누구와 누구를 말하는가 물으면 노동자와 고용자로 답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단체 교섭에서 말하는 단체는 노동자와 노동자가 집단으로 한데 묶이는 걸 뜻한다. 고용자(employer), 즉 대한민국 노동법 용어로 사용자는 교섭 단계에서 등장한다.

단체 행동을 보면 쉽게 이해된다. 단체 행동의 대표 방식인 파업은 노동자끼리 하지 사용자가 끼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와 이익을 이루려 무리 지어 움직이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3조는 노동자들이 단체로(collectively), 즉 떼를 지어 모이고 교섭하고 행동할 권리, 즉 노동 3권을 보장한다.

단체 교섭에선 교섭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단체다. 단체가 없으면 교섭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용자와 개별 노동자 사이의 교섭은 교섭이 아니라 사실상 일방 계약이다. 교섭을 위하여 노동자들이 떼거리로 모여야 한다는 원칙은 학술적 논리가 아니라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됐다.

기계와 공장, 고용자의 권력 독점

자본주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200~300년 전 공장 기계제가 처음 세상에 등장할 때, 노동자와 고용자 사이에 교섭은 일체 존재하지 않았음을 잘 알 것이다. 당시 공장은 모든 것을 고용자, 즉 자본가가 혼자서 결정하는 독재 체제였다. 요즘 말로 인사와 경영의 권리, 즉 인사 경영권을 독식했던 것이다.

기계보다 못한 노예의 삶을 인간의 삶으로 바꾸기 위해 노동자들이 단체로 나서 조직을 만든 게 노동조합이었다. 물론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노동조합은 불순분자와 불법 단체로 탄압받았다. 노동조합으로 단결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권리와 이익을 개선하기 위해 싸웠다. 때로는 총을 들고 자본가와 계급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1871년 일어난 파리 코뮌이 대표적이다. 단체 행동을 감행한 것이다.

그 결과, 20세기 들어 세계 곳곳에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조직을 통해 집단으로 교섭할 권리, 즉 단체 교섭권을 쟁취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의 참화와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의 충격 속에 1919년 출범한 국제노동기구(ILO)는 국제 노동법, 즉 국제 노동 기준을 통해 노동권을 지구적 상식(global common sense)으로 자리매김했다.

그 결과 하루 8시간 노동, 주1일 휴일, 유급 휴가, 노동 시간 단축, 산업 보건 안전, 모성 보호, 출산 휴가, 야간 노동 규제, 아동 노동 철폐, 강제 노동 금지, 정보 공개, 회사 정책 협의, 경영 참여, 이윤 공유, 노동 감독관, 사회적 대화 같은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이 각국에서 단체 협약과 법률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노동조합과 단체 교섭, 단체 행동의 역사는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자기 권리와 이익을 확대하는 과정인 동시에 자본가들의 권리와 이익이 축소되는 과정이었다. 또 군주정과 귀족정 같은 독재 체제가 지구상에서 패퇴하고 민주주의가 널리 퍼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공장 안의 민주주의와 공장 밖의 민주주의는 수레의 두 바퀴처럼 함께 움직였던 것이다.

노동 조건의 핵심은 인사 경영권

밥을 먹으면 똥을 싼다. 똥을 못 누면 나중엔 밥도 먹을 수 없고, 사람은 죽고 만다. 그런데 밥 먹는 건 좋은데 똥은 싸지 말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대한민국 정부가 하고 있다. 인사 경영권은 사용자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단체 교섭에서 다룰 수 없고, 이미 만들어진 단체 협약에 들어 있는 노동조합의 인사 경영권을 없애야 한다고 고용노동부가 주장하는 것이다.

밥이 없으면 똥이 없고 똥이 없으면 밥이 없듯, 이익을 누리려면 먼저 권리를 가져야 하고 권리를 확보해야 이익을 누릴 수 있음은 역사의 교훈이자 민주 사회의 상식이다. 특히 이익이 근본적으로 충돌하는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 즉 노사 관계에선 더욱 그러하다.

고용노동부는 노동 조건과 인사 경영 문제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처럼 떠벌린다. 하지만, 정신분열증에 걸린 사람이 아니라면 노동 조건은 인사 경영 문제의 핵심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인사 경영의 중심 문제인 채용과 해고는 노동자의 노동 조건과 그 가족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누구를 채용하고 누구를 해고할지에 대해 노동조합이 단체 교섭과 단체 협약을 통해 관여하는 것은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노동자에 대한 징계와 처벌 또한 마찬가지다. 사용자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이뤄지는 부당한 징계와 처벌을 막지 못한다면 해당 노동자의 노동 조건은 급격히 악화되고 그 가족의 삶은 자동으로 피폐해진다.

회사의 투자 정책은 어떤가. 사용자가 이윤 확대를 위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새로운 기계를 설치하거나, 해외 투자를 시행하면 노동자의 노동 조건은 저절로 변한다. 생산성 향상의 목적이 노동 조건 개선이 아니라 이윤 확대인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노동 조건 보호를 위해 투자 및 생산성 결정에 참여하겠다고 요구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자본가, 즉 사용자가 인사 경영권을 행사하면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이 자동적으로 영향 받는다. 따라서 노동조합이 단체 교섭을 통해 인사 경영 문제에 개입하고, 정당한 자기 권리를 단체 협약으로 보장받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다.

노동자의 경영 참여와 공동 결정권 보장하는 선진국들

독일의 노동조합들은 종업원평의회(works council)에 보장된 공동 결정권으로 인사 경영 문제에 개입한다. 사실 기업별 단위노조 역할을 하는 종업원평의회는 노동자 징계, 종업원 행동을 감시하는 카메라나 성과를 측정하는 도구의 설치, 신규 채용, 직업 훈련, 환경 정책을 사용자와 공동으로 결정한다.

사용자가 새로운 기술과 기계를 도입하길 원하면 종업원평의회에 정보를 제공하고 그 도입 여부를 협의해야 한다. 또 종업원평의회는 개별 노동자의 임명, 평가, 배치 전환, 해고 문제에 관여할 수 있다. 심지어는 회사의 투자 정책을 결정하고 이사회의 임면권(任免權)을 가진 감독회(supervisory board)의 절반을 노동자 대표가 차지한다.

노동조합 대표의 이사회 참여

노동조합과 종업원평의회의 이원(二元) 구조를 가진 독일과 달리 스웨덴은 회사 안에서의 노동자 대표성이 노동조합으로 일원화되어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노동조합이 인사 경영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은 단체 협약을 넘어 법으로 보장된다. 공동 결정법에 따라 사용자는 회사 상황 및 투자 정책과 관련하여 노동조합이 요구하는 정보를 성실히 제공해야 한다. 종업원의 고용 안정 관련 정보는 두말할 나위 없다.

조직 편제, 인사 제도, 기술 변화, 기계 도입, 작업 방식, 직제 및 작업 조직의 변경, 인사 정책, 감독자의 임면, 종업원의 숙련과 기술, 구조 조정, 채용 및 해고 방식, 신규 투자, 연구 개발, 마케팅, 물품 구매 정책은 단체 교섭의 대상이다. 심지어 노동조합은 비정규직 도입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노동조합 대표가 회사 이사회에 노동자 이사로 참여하여 회사 정책을 결정하는데 관여하는 것은 기본이다.

노동조합의 경영 참여가 취약한 그리스

외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리스는 법제도적으로 사용자의 인사 경영권이 폭넓게 인정되고 노동조합의 권한이 취약한 나라에 속한다. 독일처럼 정보권·협의권·참여권을 인정받는 종업원평의회가 법제화되어 있으나, 실제 종업원평의회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노동조합이 존재하지 않는 기업에선 종업원평의회가 전무하다. 더군다나 법에서 보장하는 권리도 독일이나 스웨덴에 크게 못 미친다. 한마디로 노동조합의 인사 경영권 참여가 형편없고, 일부 공기업을 제외하면 노동자 이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유럽의 민간 기업에서 노동조합 대표나 노동자 대표를 통한 경영 참여, 즉 노동자 이사제를 폭넓게 시행하는 나라로는 오스트리아,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을 꼽을 수 있다. 반대로 노동자 이사제가 없거나 부실한 나라로는 그리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루마니아, 불가리아를 꼽는다.

경제가 어려운 나라들은 대부분 노동조합 혹은 종업원 대표의 인사 경영권 참여를 부정하고 있는 반면, 경제 여건이 좋은 나라들은 노동자들이 단체로 회사의 인사 경영 문제에 참여하는 권리를 법률과 단체 협약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똥이 밥에서 오는지 모르는 고용노동부

고용노동부는 ‘매출액 상위 30개 대기업 단체 협약 실태 분석’ 자료를 내고 인사‧경영권에 대한 노조 동의 조항이 있는 곳이 절반에 이른다며, 법에 위배되거나 과도하게 인사·경영권을 제한하는 단체 협약에 대해 시정 명령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헌법과 법령집 어디를 뒤져봐도 사용자가 인사 경영권을 가진다는 조항은 없다. 입만 열면 법치(rule of law)를 되뇌는 대한민국 정부가 법령집 어디에도 없는 사용자의 인사 경영권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면서, 노동조합은 단체 교섭을 통해 인사 경영 문제에 관여할 수 없다고 우기는 작태는 국제 추세에 역행하는 후진국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민주 시민 의식이 결여된 관료들은 이익과 권리를 분리시키고, 이익은 교섭할 수 있으나 권리는 그럴 수 없다는 17세기나 18세기에 횡행했던 왕정복고(王政復古) 궤변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똥이 밥에서 비롯되듯 이익 쟁취는 권리 확보에서 시작된다. 권리의 바퀴가 무너지면 이익의 바퀴는 제자리를 맴돌다 퇴행할 뿐이다.

이것은 이론이나 학설이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 열강들이 20세기 초 세계 대전의 참화와 공산 혁명의 혼돈에서 건져낸 교훈이다. 그 결과, ILO는 결사의 자유, 단결권, 단체 교섭권을 핵심으로 하는 국제 노동법을 제정했고, 이것은 모든 유엔 회원국이 실현해야 할 의무가 됐다.

북한 인민들의 인권까지 챙기려 드는 대한민국 정부는 자국민 인권의 핵심인 노동권을 짓밟는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 노동권의 핵심은 단체 교섭권이고, 단체 교섭의 핵심은 노동조합의 인사 경영권 참여다.

똥이 싫다고 밥 안 먹으면 사람 죽듯, 노동조합의 인사 경영 권한 싫다고 이를 부정하면 국민 경제가 불안해 지고 사회 혼란이 온다. 세계사의 교훈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