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천 씨와 <프레시안>의 인연은 어쩌면 제가 어렵사리 공채 1기 기자로 뽑히지 않았다면 없었을 것입니다. 무슨 뜬금 없는 소리냐구요? 제가 2001년 9월 24일 <프레시안> 창간호에 쓴 기사가 '홍석천과 하리수의 같은 점과 다른 점'입니다. (☞관련 기사 : 홍석천과 하리수의 같은 점과 다른 점)
홍석천 씨는 지금은 <냉장고를 부탁해>, <마이 리틀 텔레비전> 등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셰프이자 성공한 사업가로 상종가를 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커밍아웃' 직후 공중파 방송에서 축출된 상태였습니다. 2001년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에서 열린 제2회 '퀴어 문화제'(무지개 2001, 성소수자 문화 축제)를 취재하면서 가죽 조끼를 입고 멋지게 춤추는 홍 씨를 보고 감탄하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홍익대 인근을 도는 거리 퍼레이드 참석 인원은 100여 명에 불과했고, 사진을 찍는 것도 자칫 '아웃팅'(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성소수자임을 제3자가 주변에 알리는 것)이 될까봐 매우 조심스러웠습니다.
그 후 15년이 흘렀습니다. 대중들의 반응에 매우 민감한 방송계에서 홍석천 씨가 다시 '잘 나가고 있다'는 것은 성소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과 반감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는 지난 28일 제16회 퀴어 문화제가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것으로도 확인됩니다. 그나마 '퀴어 문화'를 이해해줄 법한 이들이 많이 모이는 홍익대 부근에서 100여 명의 참석자들이 모여 은밀(?)하게 진행할 수 밖에 없었던 행사가 15년 만에 3만여 명의 참석자,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 등 외국 대사 등과 함께 하는 떠들썩한 축제다운 축제로 성장했습니다.
이날 '동성애 반대' 주장을 하며 맞불 집회를 연 보수 기독교도 등 9000여 명의 '불청객'을 보면서, 오히려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호모포비아)가 더 커진 게 아니냐고 반문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이 역시 홍석천 씨와 연관된 취재 후일담입니다.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2007년 기자는 홍 씨를 다시 한번 지근거리에서 만났습니다. 당시 민주노동당 당내 경선에 출마한 노회찬 의원이 홍 씨가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성소수자와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관련 기사 : '붉은 3반' 노회찬 의원이 이태원으로 간 까닭) 한나라당 대선주자였던 이명박 씨가 "인간은 남녀가 결합해서 사는 것이 정상"이라는 동성애 비하 발언을 하고도 대통령이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여전히 방송 출연은 사실상 '금지' 상태였던 홍 씨는 이 자리에서 노 의원에게 "성소수자들의 의견을 들어보겠다는 의지와 열정이 고맙다"며 사의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정작 제가 충격을 받은 일은 행사가 끝난 뒤 있었던 뒤풀이 자리에서였습니다. 아무개 기자가 "성소수자를 직접 본 것은 처음"이라면서 기자라는 직업적 차원을 넘어선 과도한 '궁금증'을 표출하더군요.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가시화되지 않았던 이유는 그만큼 이 문제가 철저히 숨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퀴어 퍼레이드가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진행됐다는 사실은 성소수자의 존재와 문제가 가시화되기 시작했다는 의미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갈 길은 멉니다. 때마침 지난 26일 미국에서는 연방대법원이 동성 결혼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에 대해 "미국의 승리"라면서 "모든 미국인이 평등하게 대우받을 때 우리는 더욱 자유로울 수 있다"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우리는 인종, 종교, 국적, 성별, 성적 지향 등과 무관하게 모든 이들의 인권을 옹호한다"며 환영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은 '조용'합니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만이 아니라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까지도 논평을 내지 않았습니다. 하긴 이 두 당은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 지역, 용모 등 신체 조건, 혼인 여부, 종교, 성적 지향, 학력 등을 이유로 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차별을 금지'하려는 '차별금지법'을 사실상 반대한 당이기도 합니다.
이런 현실을 볼 때, 우리 사회 모든 이들의 '평등'을 위해, 홍석천 씨를 포함한 '평범하지만 비범한 이들의 작은 발걸음'에 보조 맞춰온 <프레시안>이 가야할 길은 여전히 멀고 험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좌절하지만은 않습니다. 우리 사회 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홍대에 모였던 용기 있는 100여 명이 15년 후 서울시청에 모인 3만 명의 동조자를 만들어냈던 것처럼, 지금 <프레시안>을 응원하는 2500여 명의 조합원이 15년 후 어떤 미래를 만들어낼지 모를 일이니까요. 다시 한번 오바마 대통령 말을 인용하자면, "때로는 오늘처럼, 느리지만 꾸준히 정의와 함께 노력한 결과는 마치 번개처럼 올 때도 있습니다."
지난 6월 한달 동안 <프레시안>의 조합원으로 새롭게 가입한 400여 명의 조합원들에게, 그리고 이 한달의 작은 기적을 가능하게 해준 직원 조합원들을 포함한 모든 조합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