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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전파자는 피해자, 진짜 가해자는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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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전파자는 피해자, 진짜 가해자는 박근혜!"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슈퍼 전파자 생각

언제부턴가 메르스 환자들을 죄수도 아닌데 번호를 붙여 부르기 시작했다. 방역 당국이 붙인 것을 언론이 그대로 따라 하면서 1번 환자, 2번 환자, 14번 환자, 175번 환자 따위로 부르는 것이 굳어졌다. 일찍이 없었던 현상이다. 지금까지 결핵 환자든, 에이즈 환자든, 신종 플루 환자든 이렇게 번호로 부르지 않았다.

메르스 최다 발생국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이렇게 부르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과거 신분이 노출되면 사회적 낙인이 메르스보다 훨씬 더 심각했던 에이즈가 국내에 처음 발생해 확산되기 시작했을 때도 김 아무개, 조 아무개 등으로 방역 당국이 표기했고 그 성씨 또한 실제와는 다른 것이었다. 나중에는 아예 성씨조차 표기하지 않고 그냥 몇 명 발생했다는 정도로 이야기했다.

이렇게 사람에게 번호를 매기는 것이 바람직한지 뒤늦게나마 성찰할 필요가 있다. 번호를 매겼으니 익명이 보장됐다고 생각하고 14번 환자는 몸이 거구니, 100킬로그램이 넘는 건장한 체격이니, 나이가 몇이니 등으로 가족이나 주변에서 그가 누군지 알 수 있도록 신상 정보를 공개하기도 한다.

그런 우려는 결국 14번 환자가 본인이 슈퍼 전파자란 사실을 알게 만듦으로써 현실이 되었다. 이를 안 그는 매우 괴로워했다고 한다. 다행히 메르스의 손아귀에서 용케 벗어났지만 지금도 마음의 고통을 당하고 있을지 모른다. 메르스 치료에 이어 이젠 정신 심리 치료를 해야 할 판이다.

슈퍼 전파자에 대해 일부 언론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들은 결코 가해자가 아니다. 가해자란 표현부터가 그를 평생 고통에 시달리게 만든다. 메르스를 포함해 모든 감염병 환자는 다른 사람에게서 병을 옮은 피해자다. 설혹 그가 타인에게 병원체를 옮긴다 하더라도 알고서 고의로 전파 행위를 하지 않는 이상 그들을 비난하면 안 된다.

슈퍼 전파자의 원조는 장티푸스 메리

슈퍼 전파 사건(super-spreading event)이 생긴 것은 물론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감염병이 지구상에서 발생한 뒤 인구 밀집 형태의 주거를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줄곧 이루어져 왔다. 감염병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슈퍼 전파자는 일명 '장티푸스 메리(typhoid Mary)'로 불렸던 메리 말론이다.

아일랜드 이민자인 그녀는 1906년 뉴욕 근교의 한 부유한 가정에 요리사로 취직해 가족 전체를 장티푸스에 감염시키는 등 1902년부터 1909년까지 모두 51명에게 장티푸스를 옮겼다. 처음에는 장티푸스균을 일부러 음식물에 집어넣어 숨지게 한 혐의로 체포됐으나 역학 조사 결과 메리는 장티푸스 무증상 보균자로 밝혀졌다.

뉴욕 당국은 메리를 격리했으나 시민들이 인권 유린이라며 석방을 요구하는 등 사회적으로 파장이 커지자 결국 경찰은 메리에게 평생 음식을 만들지 않을 것과 의무적으로 한 달에 3번 보건 당국에 근황을 보고하라는 조건 아래 격리 수용소에서 내보냈다. 그 뒤 뉴욕에서는 장티푸스가 대유행했다.

메리는 그 뒤 다시 브라운 부인이라는 가명으로 맨해튼의 한 병원에 요리사로 취직했다가 5년 뒤인 1915년 들통이 났다. 그 결과 25명의 의사, 간호사, 직원이 장티푸스에 감염됐고 2명이 사망했다. 뉴욕 장티푸스 대유행 당시 메리 말론이 머물렀던 식당과 공공 기관에서 장티푸스 균이 퍼진 것으로 조사됐다.

수많은 사람들을 장티푸스균에 감염시킨 메리 말론은 결국 뉴욕 브러더 섬에 있는 병원 수용소(사진)에 격리됐고 23년 간 그곳에서 쓸쓸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1938년 69세로 죽는 날까지 장티푸스 보균자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은 균만 지닌 채 아프지 않았으니 무증상 보균 현상을 잘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영국의 포크스톤 출신의 N씨는 1901년부터 1915년까지 무려 200명에게 장티푸스를 전파했으나 보건 당국의 요청으로 음식 서비스업에 종사하지 않기로 하고 격리를 당하지 않았다. 메리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장티푸스를 옮겼지만 메리와 같은 유명세를 얻지 못해 역사에 익명으로 남은 것이다.

슈퍼 전파, 사스 대유행 계기로 본격 관심

슈퍼 전파자(super-spreader)란 이름은 2003년 사스 유행 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2003년 2월 21일 홍콩 메트로호텔 911호실(미국의 응급 구조 전화번호가 911이다)에 투숙한 한 손님이 심각한 고열과 기침에 시달리고 있었다.

중국 광둥성에서 사스 환자를 치료한 적이 있는 의사인 그는 가족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홍콩에 와 이 호텔에서 투숙했다. 그는 단 하룻밤을 묵었을 뿐인데 같은 층의 투숙객 등 최소 16명을 감염시켰고 그 16명이 다시 아시아, 유럽, 미국 등 32개국으로 돌아가 수천 명의 감염자를 양산했다.

그가 걸린 병은 나중에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로 드러났다. 석 달이 지난 후에야 역학 조사관들은 메트로호텔 911호실 근처 카펫에서 사스 바이러스 유전자를 찾아냈다. 문제의 슈퍼 전파자가 기침이나 재채기, 혹은 토하는 과정에서 남겼을 가능성이 높은 흔적이었다. 911호실 의사는 현재 지구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뇌리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슈퍼 전파자'로 기록됐다.

이보다 더 큰 규모의 슈퍼 전파 사건은 중국과 홍콩에서 사스가 대유행을 할 당시 '아모이가든'이라는 홍콩의 한 아파트에서 설사에 시달리던 한 명의 감염자가 같은 단지 내 주민 321명을 감염시켜 그중 42명이 사망한 일이다. 감염의 진원지는 그가 홀로 사용하던 화장실이었으며 화장실 환기 시스템과 배관, 창문 등을 통해 바이러스가 퍼진 것으로 추정됐다.

이들 사스 슈퍼 전파자들도 우리 메르스 슈퍼 전파자들처럼 자신들이 신종 감염병을 퍼트리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다고 보아야 한다.

박근혜 정부, 슈퍼 전파에 무신경

슈퍼 전파자는 증상을 보일 수도 있고 무증상일 수도 있다. 2003년 사스 유행 때 중국의 역학자는 적어도 8명 이상에게 사스를 전파한 사람을 슈퍼 전파자로 규정했다. 우리나라도 이번 메르스 사태 때 이를 그대로 적용해왔다. 이 기준에 따르면 80여 명에게 메르스를 전파한 14번 환자를 비롯해 모두 4명이며 슈퍼전파 사건에 의해 80% 이상의 메르스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슈퍼 전파는 외견상으로는 슈퍼 전파자들에 의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낮은 집단 면역, 병원 내 감염, 병원체의 독력, 병원체 양, 오진, 공기 흐름 역학, 면역 억제, 다른 병원체와의 혼합 감염 등과 같은 여러 요인에 의해 일어난다. 이는 다시 말해 그 사회의 낮은 보건의료 수준과 허술한 방역 체계 등에 의해 주로 슈퍼 전파 행위가 일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사스를 겪은 뒤 우리 사회에서는 감염병을 조기에 차단하고 그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슈퍼전파를 막는데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나도 신종 플루 유행 때 이를 강조하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이에 너무나 무신경했다. 메르스 통계와 역학 조사 결과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슈퍼 전파를 막지 못한 결과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하는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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